과거의 어느 자신과 작별한(그래서 새로운 사람이 된) 그가, 과거의 자신에게 중요했던 사람을 만나러 가는 이야기.
여기서 새로운 그라고 표현한 이유는, 현재의 그는 과거와 달리 그의 성정체성에 대한 확실한 인지(게이라는 인지)가 이루어졌기 때문이고, 그가 하고싶은 일에 대한 확실한 변화 상황(작가로 등단해 책을 발간)을 맞이하였기 때문이다. 그와 그녀가 시간을 보내는 것을 지켜보며 흥미로웠던 부분은 한 시절의 그에게는 중요한 인물인 그녀였던 만큼, 그녀에게 자신이 찾은 자신다움을 '고백'함으로써 과거의 자신과 확실히 '작별'하고자 한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현재의 자신의 모습이 정말 자신다운 모습이라고 확신한다 하더라도, 오랜만에 그녀를 만나 자신을 고백하는 것은 마치 숙제같이 느껴졌을 것이다. 그래서 고백이 쉽지 않다.
그는 그녀와 함께 과거의 추억 속 장소들을 가서 과거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다움과 나답지 않은 모습의 구별이 모호해짐을 느끼고 그 모호한 영역을 자유로이 배회하게 된다. 과거 그녀와의 추억 속 시간들 속에서의 자신이 다시금 생생히 느껴지면서 현재와 과거, 나다움과 나답지 않은 모습, 나의 진정한 모습과 그것을 찾지 못했던 때의 내 모습의 구별이 모호해진다.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이전과는 다른 진짜 자신의 모습을 확실히 구현해가고 있다고 믿었기에 무의식중에 과거의 방황하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구별하고자 애쓰게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와 가까웠던 사이였던만큼 편하게 얘기를 나누며 그 순간을 편히 즐기게 된다. 그러면서, 앞서 말한 것들을 구별하려 애쓸 필요는 없겠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 사람이 남긴 추억의 무늬는 그것 자체로 생생히 새겨진 것이므로. 그것을 구별할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하는 결론인 것 같다. 그가 그것을 구별하지 않는다고 하여 그의 '나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므로.
나도 오랜만에 과거에 친했었던 사람들을 만나게 되며 비슷한 혼란스러움을 느껴본 적이 있었다. 예전에 가까웠던 사람들이라고해도 지금 다 가깝지 않다. 오히려 그 멀어진 시간동안 생긴 오해나 무심함 등의 이유로 생긴 균열이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이 되어 예전과 같은 친밀감은 느끼기 어려워진 경우도 있었다.예전에 꽤 가까웠던 사이에서 그런 균열이 생겨버리면 예전에 그리 가깝지 않았던 사람과의 관계보다 오히려 더 큰 균열이 생겨버리는 것 같다. 마치 예전에 주었던 마음과 시간 자체가 허무하게도 다 우지끈 부서지는 것과 같이.
하지만, 반대로 서로 어떤 형태로든 교감했다면 그 후로 훌쩍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만나 시간을 보내다보면 그 때의 친밀감이나 그 속에서 형성됐었던 상대와 나 사이에 흐르던 온기, 대화의 흐름.. 같은 것들이 신기할만큼 빠르게 다시 찾아오며 익숙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설렘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
서로 연락하지 않았던 시간동안 분명 나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음에도 변한 나와 그때의 나 자신의 구별이 모호해져버린다. 많은 시간이 지났다 하더라도 도타운 교감을 쌓아본 사람과의 관계와 그 사람이 남긴 그 시절의 시간은, 마음에 그만큼의 깊은 무늬를 새기나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완전히 새로이 만나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도, 지금의 모습과 매우 다른 과거의 나의 모습과 현재의 내 모습 모두와 어울리는, 아니 그 모든 모습을 포용하는 관계가 생기기도 한다. (반대로 상대의 과거와 현재 모두를 나 또한 포용하며 그 모두를 애정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관계.)
그렇기에 과거의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인연 속 좋았던 시간들에 너무나 큰 의미를 부여하며 집착할 필요도, 새로운 인연에 지레 너무 겁먹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많이 떠도는 이야기지만, 남을 사람은 남고, 새로이 만나게 될 사람도 인연이라면 인연이 된다는 것이 이런 의미이지 않을까 싶다. 나 자신에게 정말로 새로운 변화가 생겼다고 하더라도, 그것까지 모두 애정을 갖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듯이, 그리고 현재의 복잡미묘한 나 자신을 오롯히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생겨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