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은 삶을 위한 필요요소들 중 현실적인 부분 -나의 집, 가정, 돈, 직장에서의 성취, 사회적인 지위 및 시선 - 들을 위하여 살아간다.
그리고 힘들게 이뤄낸 이것들을 지켜내기 위하여 사람들은
나만이 가지고 있는 취향이나 생각을 애써 떨쳐내며,
자신에게 순수하고 깊은 기쁨을 주었던 것- 좋아했던 것, 좋아하는 것 - 들은 본래 없었던 것처럼 잊어버리며,
자신이 생각할 때 아니다 싶은 여러 사회적 관습 속에서 그 '아니다 싶은', 불합리한 것들과 그에 대한 감정들을 억누르며,
나의 사회적 지위나 위치를 지키기 위해서 상대에 대한 예의는 가볍게 무시하며,
자신의 인생에 찾아온 상실감과 고통에 대해서도 마음껏 아파하지 못하고 숨죽여 울며,
살아간다.
그렇게 살아가는 미소의 주변인들을 통해 영화는 묻는다.
누가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인가?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인간답게 사는 것이 본인의 주관을 가지고 인생의 여러 부분들을 선택하고 그 선택에 따른 책임을 지며 때때로 본인의 행복을 누리며 사는 것이라면, 그리고 다른 이들의 선택을 존중해주고 최소한의 예의를 베풀며 사는 것이라면, 최소한 그러한 측면에서는 미소가 가장 인간답게 느껴졌다.
처음엔 자신의 취향인 위스키, 담배를 위하여 결국 집을 포기해버리는 미소가 비정상처럼 보였다.
아직 철이 없다, 비현실적이다고 말하는 주변 사람들의 말이 백번 이해가 됐다. 그러나 미소를 지켜볼수록 한편으로는 미소가 누구보다 강해 보였다. 미소는 가끔은 좌절스럽더라도 자신의 인생의 모습을 선택함에 있어 '자신다움'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미소는 그 선택에 책임을 지기 위하여 하는 일들, 예를 들어 가정부 일을 하는 것에도 부끄러움이 없었다. 팍팍한 업무가 끝이 나면 자신이 좋아하는 위스키 한잔, 담배 몇개피로 스스로의 고단함에 확실하게 보상해주며 아이같이 좋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소는 다른 이들의 삶에 어떠한 판단도 하지 않고, 그들의 선택을 그저 응원했다. 다른 이들에게는 그러한 응원을 받지 못했지만.
그런데 미소의 주변인들은, 자신의 집, 가정, 돈, 사회적인 지위 등을 각각 놓치지 않았음에도 각각 그것들에 노예가 되어 살고 있었다. 한 친구는 자신의 가정에서 자신의 최소한의 빛깔이나 자유를 잊어버린 채 자신을 종 부리듯이 하는 가족들을 보필하기 위해서만 살아가고 있었고,
한 친구는 대기업을 다니고 있었으나 철저히 그 대기업의 종속된 부품처럼 살아가며 친구에게 점심시간 한 켠, 하룻밤정도도 내어줄 여유가 없었으며(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이익을 주지 못한다는 판단하에)
몇몇 친구는 자신의 가족들의 취향과 욕구에만 휘둘리며 살고 있었고,
한 친구는 이별의 상실감에 밤마다 외로움과 고통에 사무쳐 술이 없으면 맨정신에 살지 못지 못하면서도 대출금을 갚기 위하여 회사에서는 간신히 맨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나 자신의 모습을 봤다.
나도 어떤 시점이나 상황에서는 저들처럼 살아간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미소를 부러워하거나 신기해하거나, 결국은 비웃을때. 나또한 미소처럼 현실적인 부분을 내려놓고 자신이 하고싶어 하는 일을 선택한 사람들을 보며 그랬던 것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이것은 누구에게나 선택과 그선택에 책임이 따르는 것이지만, 미소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자신다움을 포기하지않고 꿋꿋히 살아가는 삶 또한 있다는 것. 주변 누구로부터든 '철이 없다' 라는 얘기를 듣는 미소지만, 사실은 가장 중요한 것을 지키며 살아가는 단단한 어른이 아닌가, 싶다.
머리가 백발이 되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할때 아이처럼 해사하게 웃는, '소공녀' 미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