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혐오하게 될 박창수에게 - 이기호
40대의 그녀, 김숙희의 삶에는 세 명의 남자가 등장한다. 현재 같이 살고있는 박창수, 그녀의 과거 속 사람들 - 전 남편, 그리고 바람을 피웠었던 정대리 -.
1. 전남편, 그녀가 스스로 부끄러워질 기회조차 박탈시킨 사람.
그녀는 과거 전남편이 있었다. 전남편은 그녀보다 나이가 훨씬 많으며, 가난하더라도 아주 끈질긴 생활능력을 갖추었었다. 김숙희가 전남편을 향해 마음이 기울게 된 계기를 주목해보자. 그는 햄버거 집에서 파는 버거 중에서도 항상 가장 싼 데리버거를 주문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김숙희가 매일 먹어야 하는 걸레맛의 데리버거. 매일 데리버거를 주문하고야 마는 그의 현실에 안쓰러움을 느껴서였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삶 또한 퍽퍽함에도, 그를 위해 무언가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관계가 발전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그와의 관계속 “수치스러움" 때문에 자신의 삶을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내몰게 된다. 그녀가 수치스러움을 느꼈던 계기는 언제 발생했는가. 어린 김숙희가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과의 결혼을 말했을 때 그녀의 엄마가 어떤 질문도, 걱정도, 설득도 없이 그저 축하해주었을 때이다. 그리고 그녀의 전남편이 가족의 현재의 삶과 미래의 계획에 대하여 본인이 암묵적으로 결정내린 뒤 그녀에게 ‘부드럽게’ 통보했던 시간 가운데이다. 그는 김숙희를 아내로 맞이했음에도 가족의 일에 대해 그녀와 함께 고민하고 상의하며 결정하지 않았다. 그녀를 그런 역할을 수행하는 주체로서 아예 배제시켜버렸다.
물론 그녀의 남편이 정한 일들은 가족을 위하고 그녀를 위한 것들이었다. 사려깊은 그는 그녀를 생각하여 그녀의 삶에 여러가지를 제안하였고 실제로 그녀의 삶이 현실적으로 나아지긴 했다. 그리고 그녀의 엄마 또한, 현실적으로 본인이 딸에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생각하에 그녀의 울타리로서의 결혼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하지만, 둘 다 그녀가 마땅히 고민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 고민할 기회를 주지 않았고 그녀가 삶에 주체적으로 대응할 수 없게끔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삶 내내 수치를 느끼며 "무기력"에 빠진다. 그녀가 술에 취해 남편에게 말했다. '오빠 때문에 부끄러워진다. 나 때문에 부끄러워지는 게 아니고... 부끄러운 건 원래 나 때문에 생겨야하는 게 아닌가'. 우리는 보통 스스로 무언가를 하려고 결심했다가 어떤 이유로 그만큼을 실행하지 못했을 때 부끄러움을 느낀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스스로 결정하고 가정을 이끌어갔던 남편 때문에, 김숙희는 '본인 스스로 때문에 부끄러워질' 기회조차 박탈당한다. 스스로 부딪히고 부끄러워하며 나아져갈 시간을 가지지 못하고, 무기력하게하루하루를 보낼 뿐이었다.
그러던 중 그녀는 바람을 피운다. 바람을 피운 것을 남편에게 말했을 때에도 그는 그녀에게 아무 대응도 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왜 그랬냐고 묻거나 따지지도, 화를 내지도, 앞으로 우리 관계를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그녀가 그에게 대화를 시도할 때마다 자리를 피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수면제를 먹였다는 것을 알게되고, 그가 이에 대해 그것 또한 그녀를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하자 그녀의 수치스러움은 절정에 이르러 그를 살해한다.
그는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했다. 자신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일단 일을 계속 해야 하고, 피곤한 상태에서 '자신이 답을 낼 수 없는' 어려운 문제를 그녀가 자꾸 들이밀어, 어쩔 수 없었다고. 하긴, 그는 그간에 모든 것들을 본인이 결정해왔는데 이 문제는 본인이 혼자 결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와 상의를 해가며 문제를 부딪혀나간 경험이 없는데 특히나 이 문제를 어떻게 그녀와 이야기해나갈 재간이 있었겠는가. 어쩌면 김숙희는 그가 스스로 결정하는 것 자체가 되지 않는 문제를 무의식중에 일부러 일으켰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남편이 살해당할 정도로의 잘못을 한 것일까. 김숙희는, ’바람을 피웠음에도‘ 남편과 그 문제를 대면하며 싸우지도 못했다. 그것이 미치도록 수치스러웠다고 한다.
2. 정대리, 그녀를 혐오스러워하는 사람.(가장 자격없는 사람임에도.)
정대리는 그녀의 무기력한 삶의 도피처였다. 그녀가 '스스로 원해서' 그와 관계를 맺었으며, 그녀의 욕구를 그에겐 직접 발산했다. 하지만 그녀가 정말로 그를 사랑하거나 원해서 엮어버린 관계였다기보다는, 본인의 처지와 비슷하여 공감이 가는 그에 대한 안쓰러움과, 그녀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하고자 하는 마음 가운데에서 저질러버린 관계로 보인다. 그녀는 영업사원인 그를 보며, 사람에게 무시당하고 있지만 지금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괜찮은 척 하는 자신의 모습을 봤다. 김숙희는 그와의 시간 속에서, 얕게나마 위로받았던 것 같다. 정대리는 그녀의 그런 마음에 편승해, 정말 순수하게 자신의 욕구와 외로움만 달랬다. 그녀가 유부녀임을 알면서도 그저 외로운 시간을 달래기 위해 그녀와 몸과 시간을 섞었다. 그리고 그녀의 살인 고백에도 자신이 피해받지 않기 위하여 그녀의 알리바이를 만들어준다. 그렇기에 그는 전남편의 살해에 직접적인 죄가 없긴 하더라도 나쁘지 않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그는, 시간이 흘러 김숙희의 자수를 마주하고 그녀를 '혐오'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를 혐오한 것은 박창수가 아닌 정대리였다.
3. 박창수와 김숙희, 그리고 전남편 (김숙희는 자신의 전남편처럼 박창수를 대했다. 그러나 박창수는 김숙희가 되지 않았다.)
김숙희에게 박창수와의 관계는 무슨 의미였을까. 박창수는, 김숙희에게 ‘자수의 계기’가 된다. 막상 그녀의 과거의 죄에 대하여 박창수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다만 그녀가 과거의 죄를 털어놓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녀는 박창수에게 전남편이 본인에게 한 것과 같은 형태로 대하며 살아왔다. 박창수는 무책임한 태도와 폭력 등으로 그녀를 못살게 굴었지만, 김숙희는 묵묵히 박창수를 챙겨주며 살아갔다. 그리고 그가 감당이 안 될 때는 전남편이 그러했던 것처럼, 자신이 수치스러움에 전남편을 살해하게 되는 계기였던 수면제도 조금씩 몰래 먹인다. 박창수가 그녀에게 나랑 왜 같이 사냐는 물음에, 그녀는 '당신이 날 떠나지 않아서 그런거지 뭐'라고 말한다. 마치 그녀의 전남편이 김숙희에게 했을 만한 대답이다. 사실은 자신을 괴롭히는 상대에게 떠나라고 요구하거나, 혹은 떠나거나, 변화하라고 싸우는 등 발버둥쳤었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그녀는 어쩌다보니, 그녀의 전남편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저 일상을 유지하며 자신의 책임을 다했다. 이유는, 그런 생각을 하고 대응하기에도 피로하기 때문.
그녀의 전남편은 그녀가 박창수에게 그러하였듯 자신의 가정에 책임을 다했다고 보일지라도, 결과적으로는 그녀는 불행했다. 그녀의 주체성을 인정하고 부딪혀나가지 않았던 전남편의 행동으로 김숙희는 그를 죽여버리고 싶을 만큼의 수치를 느꼈다. 그리고 결국은 스스로 잘못을 만들어내었는데도 싸우지 '못하는' 그녀는, 수치스러움으로 그를 살해하여 살인자가 되버린다. 그런데 김숙희는 자신이 당했던 것처럼 박창수를 대했으나, 그는 그 상황에서 '염치'를 느끼며 살인은 커녕 자신에게 잘해주는 정상인이 되어버린다. 그녀는 그런 박창수를 보며 자신의 인생에 대해 견딜 수 없는 수치스러움으로 과거의 자신의 행동을 자수하기에 이르렀다. 그녀는 결국 자신이 전남편처럼 되어버렸다는 것, 그리고 과거의 자신이 박창수처럼 굳이 상대를 죽이지 않고도 스스로 변화를 꾀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가능성에 대해서 인정하게 되며 과거의 자신과 지금의 인생에 혐오를 느끼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박창수를 보며, 전남편의 모습이 된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을 더욱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비극이다. 그녀가 한 살인도 물론 비극이지만, 오랜 시간을 거쳐 자신과 자신의 죄를 마주하고 이제야 "자신이 한 행동 때문에 스스로 부끄러워할" 기회를 스스로 찾은 삶이, 비극이기 그지없다.(이마저도 다른 이의 행동에 의하여 자수할 결심을 하게 되었다.)
전남편의 삶도 비극이다. 그는 생존을 위해 살아내느라 누군가와 함께 삶의 문제를 헤쳐나가는 것이 서툴렀을 것이다. 그는 그 나름대로 자신이 다 짊어지고 가면 된다고 생각했었을 지 모르나, 누군가에 대한 진정한 존중과 사랑은 상대의 주체성을 인정해주고 같이 대면해내는 일일 것이다. 머리아프고 몸이 고단한 현실의 문제들에 대하여, 결국은 누구든 스스로 부딪혀나가며 때론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고 때론 대견해하며 깨달아나갈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으면 이렇게 모두가 파멸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