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유토피아는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갈 것인가

비극적 세상 속 기계의 삶에서 인간성과 유토피아를 경험하다

by 나봄


너의 유토피아 - 정보라


’너의 유토피아‘대해 묻는 “기계”와

사람을 살리고 자신의 존재의미를 지키려는 “기계”가 인간에게 묻는 유토피아



인간다운 것이란 무엇일까. 자신의 생존만이 아니라 지향하는 삶의 모습에 대해서 생각하고 노력하며 사는 것, 그리고 자신만이 아니라 타인도 돌보는 것이 인간다움이라면, 이 이야기속의 시대는 인간성이 상실되었다. 세상이 생명력을 잃어가고, 인간들은 병들어 소멸하거나 혹은 자신이 생존할 수 있는 에너지원(발전기)을 챙겨 행성을 떠났다.이 세계에 남아있는 것은 살아있으나 지성이 없는 생명체(동식물들)과 살아있지는않으나 지성은 있는 기계들(비생물 지성체)이다.


이야기 속에는 크게 두 기계 주체가 나타난다. 인간의 형태와 비슷하게 생겼고 의료용 진단 기계로 활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기계314와 하이브로 자동차 형태의 기계. 그 기계들은 분명 기계처럼 사고하고 움직이지만, 묘하게 인간들보다 더 인간적이다.


기계314는 자동차 기계에게 끊임없이 “너의 유토피아”의 상태를 묻는다. 하루에도 여러차례 묻는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묻는다. [너의 유토피아는? 1부터 10까지(수치화한다면?)]


그리고 자동차 기계는, 인간과 비생물 지성체의 인간성을 보존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인간을 살린다”단순한 명제 아래, 위험한 상황을 기꺼이 무릅쓰며, 비생물 지성체인 기계314에 깃든 인간성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가 가지고 있는 명제는 매우 단순하나 확실하다.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되며 위험에 처한 인간을 모른 척해서도 안 된다. / 1.2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자기 자신을 지켜야 한다.] 단순한 명제 아래, 복잡하고 자신의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 안에서도 위험에처한 듯 보이는 인간을 구제할 방법을 모색한다.


그리고 그 기계는 다른 기계로 흡수되는 제안에 자신이 파괴될 수 있더라도 다른 기계의 하나의 부속품으로 존재하는 것을 거절한다. 자신은 “이동하는 존재”로인식하고 그렇게 살기를 추구하기 때문에. ‘느리고 약하고 지적인’ 존재를 자신의 안에 태우고 자유롭게 이동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들의 행위는 애초에 기계에 입력된 대로 움직이는 것으로서 단순한 행동들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으나그렇기에, 그럼에도 숭고하게까지 느껴진다. 누군가를살리는 것이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이유만으로이렇게 고군분투하는 사람이 과연 많을까. 그리고 단순히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살아가는 의미”에 따라 결단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많을까.그리고.. 상대방의 유토피아, 즉 상대가 원하고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세계나 상태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는존재가 많을까. 이 기계들(비생물 지성체) 보다 인간이더 나은 것이 과연 무엇인가.


유토피아라는 단어 자체가 마냥 이상적으로 느껴지며 낯설기까지 할 만큼 인간의 현실 세계는 녹록치 않다. 다들 생존의 문제 앞에서는 자신이 가치있게 생각하던것들은 빛바랜 문제로서 한쪽으로 치워두기 일쑤다. 하지만 내가 추구하는 것이 없이 작동하는 삶은 과연 기계와 무엇이 다를까. 비생물 지성체와 인간이 다른 지점이라 한다면, 스스로 가치있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알고, 그것을 향해 가는 길 위에서 자신의 상태를 진단하고 한발짝씩 더 나아가는 것일 것이다. (너의 유토피아에 대해서 끊임없이 묻던 기계314처럼, 그리고 그질문에 현재 상태에 대한 진단과 희망을 섞어내어 숫자로 대답해냈던 자동차 기계처럼.)


생존을 향해 살아가는 현실세계에서 다른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손길이나 관심은 사치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가끔은 긴 설명과 명분이 필요하지 않은 문제 -인간의 생명, 최소한의 인간성 - 를 지키기 위해서는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야기속 비생물 지성체가 가지고, 지켜내려 노력하는 단순한 명제를 바라보며 우리가 이것마저도 외면한다면 기계보다 못한 삶이 아닐까 싶었다.


유토피아란 어쩌면 고차원적이고 추상적인 세계가 아니라, 이런 단순한 명제들을 지켜내고자 애쓰는 세계를 말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잿빛 세상에서도 내가 추구하는 바를 놓치지 않고 나아가며, 이를 같이 응원해주는 존재가 함께 있다면 그것이 그나마 유토피아에 가깝지 않을까. 그렇게 보면 이 이야기속 세계는 인간성과 유토피아와는 아주 동떨어져 있음에도, 곱씹어보면 두 기계들의 삶은 유토피아 그 자체라는 점, 그리고 기계이지만 인간보다도 더 진하게 인간같다는 점, 그 모든 것들이 아이러니함으로 남는다. 나의 유토피아는 과연 어떤 형태로 만들어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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