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 증명 - 최진영
“구”의 삶과 죽음은 무엇을 증명할 수 있는가. 어찌 보면 생존을 위하여 처절하게 살아오며 생존 그 외의 것들은 욕심내며 채우며 살아가지 못했던 구의 삶, 그리고 그 끝에 길거리에 버려진 쓰레기같이 구겨져 맞이한 그의 죽음은 어떤 것도 증명해내지 못했다. 죽음 끝 남은 것이라곤 그의 척박한 육체밖에 없었으며 같이 슬퍼할 가족도 없었다. 구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어떠한 구의 흔적(그의 공간, 소지품, 그의 사유를 엿볼 수 있는 글, 그의 성과물 등)도 세상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구의 죽음을 가만히 떠내려보내는 것을 참을 수 없는, “담”이가 있다. 담이는 구가 아니며 구는 담이가 아니지만, 어느새 구는 담이이자 담이는 구가 되었다. 그만큼 서로의 인생에 물들어 그들의 인생 어떤 시기에서도 존재했고 어떤 인생의 시기에서는 함께하지 않았더라도 그 시기에서마저도 삶을 버티게하는 것은 서로의 존재였다.
그저 살아있는 구에게 담이는 살아 숨쉬는 시간을 선사하고,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살고 있는 구에게 담이는 살아야 할 이유(자신)를 붙들어 놓았다. 그리고 담이에게도 구의 존재 또한 같은 의미였다. 구의 삶이 더 고통속에 빠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담이는 구의 고통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같이 고통 속에서 존재하려 애썼다.
그렇기에 담이는 죽은 구를 먹는다.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구에게 유일하게 남은, 그의 육체를 먹는다. 먹으며 그의 인생에서 도사렸던 외로움, 고통, 분노, 공포를느끼며 자신과 만들어내려 했으나 실현하지 못했던 희망까지도 먹는다. 담이는 그가 이 세상에 이렇게 사라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먹어 삼키며 자신의 몸에 담았다. 담이가 할 수 있는 장례를 치른다.
누군가를 사랑한 어떤 시절에 나는 그를 먹고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을 기억한다. 정말로 섭취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좋기 때문에 그에 대한 갈증으로 음식에 대한 갈증과 비슷한 것을 느꼈었다. 그렇기에 입맞추고 깨물었다. 그가 좋기 때문에, 그의 촉감, 향기, 맛 그실체를 제대로 느끼고 싶은 마음이였을 것이다. 아무리 입맞춰도 그의 존재에 대하여 갈증날 만큼 원했기 때문이다.
담이는 구가 죽었다고 해도 그의 실체를 마지막으로 제대로 느끼고 싶고, 그의 삶과 고통은 자신만이 알 수 있기에 그를 먹어 몸에 담는다.
결국 구가 증명해낼 수 있는 것은 담이의 존재다. 담이가 소화해낸 담이의 일부가 된 구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누군가에 대체할 수 없는 별개의 고유한 존재일지라도, 가끔은 다른 누군가에게 존재가 받아들여지면서 그 존재의 의미가 증명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담이와 구를 보며 떠올린다. 오롯히 혼자 살아가는 삶의 모양은 없으며 나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지는 삶이 이어지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