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끝에서까지 누군가를 먹어치워버려야 하는가

좀비보다 공포스러운 인간의 공격과 혐오를 바라보다

by 나봄

여행의 끝 - 정보라


이 세상에서는 소위 좀비들이 득실거린다.

나름 유명한 좀비 영상 매체들을 접해 보았지만, 사람들을 “뜯어먹는”것에 대한 묘사를 텍스트로 접하니 오히려 더 피부에 닿는 듯 생생히 느껴지면서 동시에 이질적으로도 느껴졌다. 숱하게 사람들을 뜯어먹는 서술들을 마주하며, 처음에는 (새삼)충격을 받았다가 일반적인 영상 좀비물에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이 세계에서의 법칙을 발견한다. 사람들을 뜯어먹는 것을 “사람이 사람을 공격하고 무시하고 착취”하는 것으로 두고 생각해보게 된다.


그렇게 보자면 이 세상에서 사람들은,

1. 가깝고 관계가 깊은 사람들을 공격한다.

감염병에 걸린 자들이 단순히 주변에 얻어걸리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게 아니라, 유난히 자신과 가까운 관계의 사람들을 공격한다. 예를 들어, 선장은 부선장을 타겟으로 공격하며 선임조종사는 부조종사를 집요하게 공격한다. 다른 공격할 대상이 옆에 잔뜩 쌓여있는데도 말이다.

아무렇지 않게 가족 등 가까운 자들에게 자행되는 폭력은, 그 관계의 사람이 저지른 것이기에 더 폭력적이다. 새삼 요즘 가족간의 공격이나 데이트 폭력같은 연인간의 공격이 만연함이 상기된다. 데이트폭력을 생각해보면 그 당사자들은 자신이 마음대로 이상화한 관계가 제대로 풀리지 않을때, 자신의 파괴당한 이상과 그에 대한 자신의 분노를 그대로 돌려주려는 듯 상대를 파괴시킨다. 상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잘해주다가도 자기가 그만큼을 대우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자폭”하듯 상대를 공격한다. 그런 모습이 그러졌다.


2. 타인을 향한 공격이 일상화되고 이를 사뭇 즐기기까지 한다.

문명화된 사회 속에서 많은 이들은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며 멀쩡하게 살아가는 듯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타인을 향한 공격이 일상화되고 자신의 여가시간에 그것을 사뭇 즐기기까지 한다. 좀비들은 사람을 공격하고 그 일부를 샌드위치로 만들어 넓은 대도심 공원안에서 편안하게 샌드위치를 ‘섭취한다’. 이런 모습은 징그러운 형체로 괴물처럼 사람에게 달려드는 모습보다 더 섬뜩하게 느껴졌다. 많은 이들이 sns를 통하여 상대의 고통이나 아픔을 공유하고 이를 다른 이들과 함께 편하게 즐기고 소비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는 자신의 여가시간에 손쉽게 타인에 대한 정보를 즐기며그에 따른 당사자의 고통이나 슬픔에는 무감하다. 반면 자신의 욕구 충족에는 더욱 예민해져 오히려 그것들을 더 ’맛있고 편하게’ 즐길 방법들은 고도화된다. 하나의 먹음직스러운 아이템이 사이버 세계에 등장하면 여러명이 돌려가며 자신의 일상에서 이를 편하게 ‘섭취한다.’


3. 타인과 다른 부분이 있을 때 공존하지 못하고, 결국는 먹어치워버린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언어학자에게는 유일한 친구인 우주항공 기술자가 있다. 그들은 기본적인 사고방식이나 삶의 관점이 다름에도 서로의 의견에 무조건적인 경청을 해 주며 매우 인간적인 우정을 나누었던 관계였다.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여러 분야와 관점이 필요하기에, 둘의 관점은 서로 보완이 되는 관계이기도 했다. 좀비가 득실거리며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에 급급한 상태에서도 함께 힘을 합쳐 위기를 벗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마지막, 현재 상태에 대한 진단과 앞으로 어떻게 상황을 대처할지에 대한 관점이 다름을 느끼게 되자, 주인공은 기술자를 먹어치워버린다. 그 어떤 잔인한 좀비간의 공격들보다도 적잖은 충격이었다. 그리고 허무했다.

타인과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을 때 이를 받아들이고 조율해나가지 못하며, 혐오하고 배척하는 요즘의 사회 모습이 그려졌다. 언제부턴가 요즘 사회에서는, 작금의 특정한 문제 상황이 어떤 계기로 만들어졌는지,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논쟁이 심한 경우 그 논쟁을 건강하게 풀어가지 못하고 상대를 무조건 배척하는-혐오-가 유행처럼 번져버렸다. 오히려 그 혐오가 특정한 혐오로 명명되면서 정당성을 찾은 듯한 느낌가지 든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아 나와 생각이 다른 것을 참을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을 배척해버린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까. 이야기 속 두 사람이 우여곡절 끝에 지구로 돌아와 본인들만이 유일한 사람 지구 생존자임을깨닫고, 기술자가 태초의 아담과 하와처럼 힘을 합치자고 말했을 때, 언어학자는 그의 의견이 ’마음에 안 든다.‘라는 이유로 그를 처단해버렸다. 그의 의견이 마음에 안 들어도 둘이 있으면 또다른 문제 해결에 그가 도움이 되었을 지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언어학자는 자기와 생각이 다른 그를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먹어치워버렸다.

상대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상대를 먹어치워버리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상대를 단순히 죽이는 것이 아니라 먹어치운다는 것이기에 달리 느껴진다. 상대의 의견이 나와 철저히 다르기에 상대를 내가 포섭해버리면 나의 의견이 완전해질 것이라는 착각과 상대가 없어짐으로 해서 나의 이익이 커질 수 있는 상태일 때 상대를 ‘굳이’ 먹어치워 버리는 것이다. 그런 착각과 이득이 있기에 상대가 맛있었을 테고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상대의 의견을 포섭한다고 내 의견이 완전해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나 혼자만 독식한다고 해서 항상 상황이 나에게 유리하게 흘러가지도 않는다. 이상적인 공존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공존을 위해서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작가는 지구를 구하고자 여행을 떠난 주인공들끼리도 결국은 그 여행의 끝에 자기들끼리 먹어치우는 쇼킹한 결말을 보여주면서 무조건적인 혐오로 상대를 먹어치워버리려는 사람들에 대한 공포감과 경계를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실제로 무작위로 나타난 사람들에게 목을 물어뜯는 일반적인(?) 좀비들보다도 더 공포스러운 공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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