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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봄 Oct 10. 2022

당연했던 관계(가족) 앞에 떨어진 혼란과 변화의 시간

영화 디센던트(descendant), 가족과의 관계에 대한 고찰


가족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열심히' 생각해보고 행동으로 실행해나가본 적이 있는가.


대부분은 없을 것이다. 있더라도, 연애를 할 때나 사회생활에서 맺은 다른 관계에서보다는 덜 생각해보고 덜 노력했을 수 있다.


가족들도 하나의 관계이기에 여러 관계가 다르게 작동해나가듯 각기 가족들만의 방식대로 소통해나가지만, 대부분의 가족들의 관계는 서로 열심히 무언가를 한다기 보다는, 평온하고 고요하게 흘러간다.(정확히는 그렇게 아무 문제없이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다른 어떤 관계보다도 당연한 관계로 생각되기에.



그러다가, 내 가족들의 생각이나 마음을 잘 알고있지 못했다는 생각에 좌절감을 느끼는 때가 가끔 느닷없이 찾아온다. 반대로 나의 생각이나 마음을 나의 가족들이 이렇게나 알아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가끔은 충격까지 받기도 한다. 가족들간의 관계에서 이렇게 가끔 심란한 시간이 찾아오면, 나와 가족들간의 그간의 소통 방식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그제서야 해보게 된다.


아이러니한 것은 '남들에게 하듯' 가족들에게 자신의 생각, 느낌을 전달하지도 않았으면서 '남들만큼, 혹은 남들보다' 나의 그것들을 나의 가족들이 알아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너무나 좌절하게 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낯간지럽거나 귀찮다는 이유로, 혹은 오로지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가족이니까 얘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이) 가족들에게 나의 생각이나 느낌에 대한 표현을 잘 하지 않는다. 물론, 내가 어떤 힘이나 신경을 기울여 나의 여러 생각들을 가족에게 표현하지 않더라도 나를 나 자체로 알아주는 유일한 존재가 가족이기도 하다. 하지만, 반대로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나를 항상 알아준다는 것은 가족이라도 불가능하다.


상대를 통해 채워지기를 바라는 게 있다면, 상대가 알아주길 바라는 무언가가 있다면, 상대에게 이를 요구하거나 상대가 알 수 있도록 해야만 하는 때가 온다. 그 과정이 갈등의 상황처럼 느껴지며 아프고 버겁게 느껴지더라도, 그 시점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관계의 모습이 결정되는 것 같다. 처음에는 '왜 이제야 그런 말을/행동을 해' 라던지, '너만 힘드니 나도 힘들어, 괜히 힘들게 이러지 말자'라던지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런데 버겁더라도 이를 마주하고 감정을 분출하고 서로를 이해하며, 변화를 만드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것인가 아니면 고요해보이지만 내면에는 어떤 부정적 감정을 가진 채로 현재의 상태로 머물 것인가. 하는 결정의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나의 가족이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으로 신호의 몸짓을 보낸 적도 분명 있었으나 이를 놓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나의 가족이, 그의 외로움, 그리고 가족으로부터 받고자 하는 인정, 관심, 사랑을 표현했지만 이를 귀담아듣지 않은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 같다. 무신경한 사람은 상대의 그런 신호를 알아채지 못하고 결국은 남들보다 못한 사이가 되기 십상이다.

처음부터 그런 신호를 아예 감지하지 못했을까. 글쎄, 처음에는 이를 느끼고 반응해주다가, 나중에는 애써 무시하고 결국 나중에는 정말로 무뎌졌을 것이다.

왜? 뻔한 이야기지만, 내가 그 모든 신호들에 구태여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아도, 내 곁에 있을 사람이니까.

내 가족이니까.




그러다 (뻔한 클리셰지만) 그 가족이 내 곁을 정말로 떠날 수도 있는 상황을 맞닥뜨리면, 혹은 그 가족이 나를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거나 반대로 내가 그 사람을 이렇게나 잘 알지 못했구나, 하는 것을 명확하게 느끼는 순간이 오게 된다면 얘기는 조금 달라진다. 영화 디센덴트에서는 그 상황이 동시에 벌어진 극적인 사례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내가 세상을 떠날 수도 있게 되었으며, 알고보니 아내가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져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내에 대해서 자신이 너무나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꼭 이렇게 극적인 예가 아니더라도 살다보면 충분히 벌어질 수있는 일들이 많다. 그것이 크건 사소한 일이건.  

그런 상황에 맞닥뜨리면 엄청난 분노, 좌절, 공허함을 느끼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감정들에 휩싸여 날뛰다가 잠잠해지는 시간이 찾아오면, 나 자신과 상대의 관계를 돌이켜보게 된다. 처음에는 상대의 행동의 변화가 유난히 더 버겁고 괜시리 더 억울하게 느껴진다.

왜? 가족이니까. 가족이라 당연히 넘어가고 받아주고 알아주던 것들이 왜 이제와 문제가 되는 것인지 그 변화를 내가 감내해야 하는지, 힘겹게 느껴진다.


즉, 가족이 아닌 사람들의 변화를 마주할 때보다 더 분노하고, 좌절하는 시간을 갖게 되는 것 같다. 그러다가..간신히 가족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게 된다. 내 가까운 가족의 외로움과 속상함이 담긴 표현을, 그 표현의 이면에 나를 위해 참아주었던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

물론 그 사람의 아픔이나 희생, 그 기저에 담긴 나에 대한 사랑만을 헤아리게 되지는 않는다. 본인의 외로움이나 공허를 채우기 위해 했던 이기적인 행동과 마음의 변화를 마주하게 되기도 한다. 그로인해 이전보다 더 큰 상처와 굴욕감을 느끼게도 되는 게 가족간의 관계인 것 같다. 이처럼, 나에게 상처나 굴욕감이나 배신감 따위의 감정을 줄 수 없으리라 믿었던 가족간의 관계에서, 다양한 감정을 느껴버리게 되는 날이 오는 것이다.




그런 감정을 느끼다가, 나 자신과 상대의 관계 속에서 상대와 나 자신의 이기적인 모습들을 모두 다 마주하고 나서야 진짜 변화를 받아들이게 된다. 상대에 대한 사랑과 분노, 용서와 굴욕감, 상처와 용기...

그것들을 기반으로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는 온전히 자신의 몫이 될 것이다.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본인이 변화할 용기를 내어 가족과 함께 그 변화를 만들어갈 것인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버텨왔던 허울 속에서 서로 상처만 주는 관계가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멀어지는 것이 서로를 위한 것이라고 판단할 지는.


영화 디센덴트의 주인공이 안쓰러웠던 이유는, 그에게는 그런 판단을 할 수있는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은 채, 이를 상대를 통해 소통할 수 있는 시간마저 주어지지 않은 채, 상대를 떠나보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상대의 죽음 앞에서 모든 감정을 느낌과 동시에 그 죽음을 준비, 수습해야 하는 것도 가족 구성원이 가지는 현실적인 몫이었으므로. 그는 그녀와 살던 그 어떤 순간들보다도 가장 분노했고, 상처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쓰러져버려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있을 때 그의 결혼생활의 어떤 시기의 시간들보다도 더 똑바로 그녀를 마주하고 그녀에게 가장 크게 분노를 표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진심으로' 그녀의 행동 일부는 용서했고, 용서를 빌었다. 자신의 무신경함과 이기적임이 그녀의 행동에 영향을 미쳤음을 인정했기에. 그러나, 내가 느끼기에, 그는 그녀의 이기적임으로부터도 그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녀의 행동의 일부는 용서하지 않았다. 용서하지 않는 영역을 남겨두었다. 그리고 그 용서하지 않은 영역을 '당신이 주는 고통'으로 명명하고, 그 고통 또한 떠나보냈다. 그가 그녀의 죽음 앞에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모습을 보며 그것을 느꼈다.


good bye elizabeth..

good bye my love, my friend, my pain, my joy.. good bye, good bye.

"안녕, 엘리자베스.

안녕, 나의 사랑.

안녕, 나의 친구.

안녕, 나의 고통.

안녕, 나의 기쁨."


그 외에도, 나와 내 가족들 또한 그와 같은 변화의 순간들을 마주하게 될 때가 찾아온다. 용기를 내어 변화를 만들지(그것이 어떤 변화이든 나와 가족을 위해서.)

혹은, 지금처럼 잔잔한 수면 속에서 내면에 어떤 아픔이나 불편함을 숨겨두고 살아갈지 하는 판단의 순간들을.


나와 상대를 위해 변화할 용기를 갖는 쪽을 택하였다면, 실제로 행동이 변화해야 할 것이다. 남들에게 대할 때 발휘하는 신경과 힘 만큼을 나의 가족에게도 들여야 할 것이다. 상대의 감정이 드러나는 말과 행동의 신호에 귀기울이는 것부터 먼저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가족이기에' 더 어려울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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