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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멍옥 Mar 24. 2022

<쓰는 기분>

2022.2.8-15


 2월 '깨끗한 물 한 잔 x 책 읽기' 리추얼을 시작하면서 처음 완독 한 책.

박연준 시인의 산문 책을 좋아한다.

<소란>,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모월 모일> 세 권의 책이 다 좋았다.

작년 여름 '너의 작업실'이라는 책방에 갔다가 박연준 작가님의 신작 <쓰는 기분>을 만났다. 보통 책의 서문 정도를 읽어보고 좋으면 사는 편인데 박연준 작가님의 신작이기에 의심하지 않고 샀던 것 같다.

그리고 고양의 '너의 작업실'이라는 책방은 작년 6월 한 달 동안 매일 온라인 글쓰기를 했던 곳이다.

삶을 돌보는 매일 글쓰기 6월 멤버를 모집한다는 글을 보고 글쓰기 근육을 만들어 보고 싶기도 했고 1년 전의 6월과 다른 모습, 마음 가짐으로 살아가는 매일을 써보고 싶어서 덜컥 신청했다. 매일 특별할 거 없는 평범한 하루 속 소소한 행복을 찾으며 일기를 쓰듯 매일매일 써 내려갔다.

매일 짧은 글일지라도 한편을 완성해서 올리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한 달 동안 하루하루 꼬박꼬박 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다 보니 알게 되었다.  행복은 언제나 손 뻗으면 닿을 듯한 곳에 늘 있었다는 걸.

그걸 내가 알아차리기만 하면 나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행복이 그랬던 것처럼 시도 그렇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시는 이해하기 어렵다 생각했다. 나와는 아직 멀리 있다고. 하지만 시는 행복처럼 일상 속 가까이에 늘 있었다.

박연준 시인은 당신은 이미 시를 알고 있다고 말한다. 직관으로 시가 뭔지 알고 있고 시 근처를 서성이거나 '시적 기운'에 취해 기뻐한 적이 있을지 모른다고.


혼자 무언가 끼적이는 일. 속으로 두런두런 혼잣말하는 일.

익숙하던 것에서 낯선 모습을 발견하는 일.

뻔하게 말고, 다른 방식으로 말하는 일.

슬프다고 하지 않고 "슬픔이 나를 깨운다" 하고 말하는 일.

힘들다고 하지 않고 "이번 삶은 천국 가는 길 겪는 긴 멀미인가요" 하고 말하는 일.

등을 둥글게 말고 상체를 숙여, 무언가를 품는 일.

품은 채로 쓰는 일.

쓰는 사람에게만 귀한 일.

다른 사람이 보면 "뭐야, 이게?" 하고, 무심하게 지나쳐 버리는 일.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 쓸모가 발견되지 않는 일. 우산을 쓰고도 하염없이 젖는 일.

마음이 밖을 향해 나설 때, 언어가 매듭처럼 따라와 묶이는 일.


당신이 이런 적이 있다면, 혹은 이런 상태를 눈치챈다면 당신은 이미 시를 쓰고 있는 거예요.

시는 당신 옆과 뒤, 여기저기에 있습니다.  (쓰는 기분, p.18-19)


 시가 어려웠던 이유는 읽고 나서 그 내용을 이해하려 했기 때문이다.

함축된 언어와 시인의 시선으로 쓰인 글은 단어 하나하나 모두 그 의미를 헤아리기엔 쉽지 않았다.

시 한 편을 읽고 나면 그 내용을, 시에 담겨있는 의미를 이해하려 했기에 어렵게 느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에서 말한다. 시는 이해받고 싶어 하는 장르가 아니라는 것을.


테이블에 놓인 음식 앞에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 앞에서, 벽에 걸린 그림 앞에서 당신은 어떤 태도를 보이나요? 당신은 그것들을 '이해' 하나요? 신선한 샐러드 한 접시엔 어떤 의미가 담겨있나요?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에는요? 고흐의 작품 <해바라기>엔 어떤 의미가 있나요? 의미란 작위적인 것이므로, 만드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얼마든 지 지어낼 수 있습니다. 의미는 복잡하거나 단순해질 수 있고, 무거워지거나 가벼워질 수 있어요. (...) 저녁때 들리는 산비둘기 소리엔 의미가 없어요. 동물의 구부정한 등, 그 수그림엔 의미가 없습니다. 음악에는 의미가 없어요. 너무 많아서 없는 거죠. 예술에는 답이 없습니다. 리듬, 소리, 운율, 색, 춤, 맛 그리고 시에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들은 이해할 게 아니라, '감각' 해야 합니다. (쓰는 기분, p.48-49)

 

읽을 때 이해에 초점을 두지 마세요. 시는 언제나 소리가 되고 싶어 하는 장르이므로 소리 내 읽어보고 ' 아 소리가 좋다. 읽다 보니 왠지 마음이 아프네. 잘 모르겠는데, 알 것도 같아.' 이런 마음이 든다면 아주 좋습니다.

시의 독자는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과 같아요. 연주하듯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음악에서 연주자의 위치, 그게 시 독자의 위치입니다. 당신의 의지, 당신의 목소리를 통해야만 시는 얼굴을 보여줍니다. 언어를 연주해주세요. (쓰는 기분, p.60)


시를 이전과 다르게 소리 내어 읽으며 이해하려 하지 않고 그냥 시에 담긴 정서를 느끼려고 하니 시가 조금은 가까워진 듯했다. '잘 모르겠는데, 알 것도 같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


 에세이와 산문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르다.

시인의 산문은 시를 긴 호흡의 글로 풀어낸 것 같다. 한 편의 글을 읽고 나면 한 편의 시를 읽은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나는 시인의 산문이 좋다. 읽고 나면 기분이 몽글몽글 해지는 그리고 왠지 글을 쓰고 싶어지고 평범했던 일상이 다르게 보이는 기분이 들기에. 이 책에 담겨있던 글쓰기와 삶에 대해 쓴 소소한 산문들이 좋았다. 가장 좋았던 두 가지를 뽑자면 '생각하면 좋은 것', '순간을 봉인하면 영원이 되나'이라는 글이다. 몽글몽글한 느낌이 드는 글들. 나도 이러한 결의 글을 쓰고 싶다.


생각하면 좋은 것

  좋아하는 이의 옷을 입고 외출하는 일은 좋다. 체취가 깃든 스웨터나 품이 넉넉한 셔츠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일은 좋다. 멀리 있어도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일은 좋다. 볕이 따뜻한 겨울 날씨는 좋다. 파주에 눈이 내릴 때, 발이 푹푹 빠져 기우뚱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일은 좋다. 향이 진한 드립 커피를 마실 수 있다면 더 좋다.
 밤에 혼자 깨어있는 일은 좋다. 물구나무를 서거나 오래된 책을 뒤적이는 일, 그러다 반짝이는 문장을 발견하는 일은 좋다. 모르는 고양이가 느리게 눈을 깜빡이며, '눈키스'를 해주는 일은 좋다. 선잠에 들었는데 누가 이마를 쓸어주고 가는 일은 좋다. 그 상태를 모른 채 조금 더 자는 일은 좋다. 까닭 없이 당신에게 쓰다듬을 받는 일은 좋다. (쓰는 기분, p.90)


순간을 봉인하면 영원이 되나

넣을 수 있다면, 밀폐용기에 이런 것을 담아보고 싶다.
초여름 화단에 떨어지는 빗소리, 잠든 연인의 순결, 유년의 눈물방울들, 첫눈 내리는 날의 정적, 겨울밤의 고요, 아기새의 첫 날갯짓,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보는 고양이의 고독, 죽은 사람의 마지막 눈빛, 미세먼지 없는 날의 아침 공기, 당신이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그 순간의 떨림. 울림통을 통과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의 공기. 주변을 청량하게 흔들어 깨우는, 당신의 다정한 목소리 같은 것. (...) 정말 소중한 건  잡을 수 없고, 담을 수 없다. 사라지는 '순간'들 속에서만 반짝인다. 행복의 표적이 되는 찰나. 눈을 감았다 뜨면 없는 것들. 어쩌면 우리가 맞는 모든 순간은 완전히 향유한 자의 기억에서 지워진 뒤에야, 영원으로 남는 걸지도 모른다. (쓰는 기분, p.149-150)


니체는 달을 보고 '별들의 카펫 위를 걸어가는 고양이"라고 했어요. 그러니깐 시를 쓰는 삶은 이런 거예요. 달을 (단순히) 달이라 부르지 않는 것. 슬픔을 (단순히) 슬픔이라 부르지 않는 것.


시를 쓴다면 매일 새로운 세계에서 처음 떠오르는 별을 발굴하며 사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재미있는 일이랍니다. 비록 대가는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지만요. 시를 쓰는 일은 기분이 전부인 일. 기분이 다인 일입니다. (쓰는 기분, p.216-217)


이 책을 읽고 나면 박연준 작가님이 사랑하는 시를 쓰며 살아가는 삶의 풍경과 생각들 속에 풍덩 빠졌다가 나온 듯하다.

그리고 나도 시와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은 설렘도 느껴진다. 이 설렘을 가지고 시를 쓰는 기분으로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렇게 살아간다면 삶이 버겁게 느껴지는 하루하루 속에서도 따스한 한 줄기 빛을 움켜쥔 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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