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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멍옥 Jun 11. 2020

갑상선암을 알게 되기 전까지

외과 수술실 간호사의 갑상선암 치유기 episode 1

"요즘 스트레스 많이 받고 있나 봐요. 원형탈모 있는 거 알고 있었어요?"

 

 원형탈모 발견이 시작이었다.

4월 초, 미용실 선생님께서 머리를 만져주시다 거울로 머리 뒤쪽 안에 숨어있던 500원 동전 크기 만한 탈모 부위를 보여주셨다. 평소 머리를 감고 말릴 때 많이 빠졌지만, 보이는 탈모는 없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원형탈모는 조기치료받는 게 좋다고 들었기에 피부과 외래를 바로 예약했다. 단순 스트레스 때문 일거라 생각하고 가볍게 진료를 봤지만, 교수님은 혹시 갑상선 문제 일 수 있다며 피검사를 해보자고 하셨다. 피검사 결과 자가면역질환인 '하시모토 갑상선염'을 진단받았다.


 대학교 때 성인 간호학을 배우면서 얼핏 책에서 보았던 질환이었다.  갑상선 호르몬이 정상적으로 생성됨을 알려주는 수치(T3, free T4, TSH )정상이었지만  몸속 면역세포들이 정상적으로 체내에 존재하는 갑상선 자극 호르몬이나 이 호르몬이 결합하는 수용체를 외부 침입 물질로 오인하고 이에 대항하는 항체를 끊임없이 만들고 염증을 유발하는 경우 상승하는 갑상선 자가면역항체 수치들(TPO Ab, Thyroglobulin Ab)은 높게 나왔다.

나의 검사결과

 결국 피부과에서 내분비내과로 다시 진료를 보고 갑상선 초음파를 하게 되었다.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초음파 검사를 했지만 1cm 크기의 결절이 보인다고 하였다.

혈액검사 수치도 괜찮고, 초음파상 모양이 이상하진 않기에 악성처럼 보이진 않지만 크기가 1cm 정도 되고, 가족력(이모가 갑상선 유두암으로 몇 년 전 수술을 받았다)이 있기에  갑상선 세침흡인검사(FNAB, fine needle aspiration biopsy)도 해보자고 하셨다.

 세침검사는 간단했다. 시술 설명을 듣고 동의서를 작성한 후 갑상선 초음파 검사를 했던 것처럼 어깨 밑에 베개를 받쳐 목을 조금 신전시켜 누은 다음 초음파로 보면서 결절이 있는 곳에 얇은 바늘을 찔러서 갑상선 결절 세포를 뽑아 세포병리검사를 나가는 것이다.  얇은 바늘이지만, 목으로 찌르는 것이기 때문에 따끔했다. 그리고 검사하는 동안은 기침하거나 침을 삼킬 수 없었다. 하지만 병변 쪽을 초음파 프로브로 누르면서 찌르기 때문에 기침이 나오려고 할 수밖에 없어서 너무  힘들었다. 꾹 참은 채 1~2분 만에 검사는 끝났다. 검사 부위는 간단히 방수용 밴드를 붙이고, 30분 정도 손으로 압박 후 밴드는 다음날 아침에 제거하면 되었다. 간단한 검사였기에 나는 그날 바로 검사 후 출근했다. 갑상선암을 의심하고 했던 검사가 아녔기에 검사 결과를 초조히 기다리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 뒤 확인하게 된 검사의 결과는

'베데스다(bethesda classification, 갑상선 세침검사 병리 결과의 전 세계의 공통 표준화된 단어와 등급) 분류법상 5단계 유두암으로 의심되는 소견임'


암이 75프로 이상 많이 의심되는 결과이며 수술을 해야 하는 단계이다. 검사 결과를 알게 된 직후 엄청난 충격이었다.

일단 예측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올해 서른 살이 갓 되었고, 결혼도 얼마 안 남았는데 막막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엄마에게 어떻게 알려야 할지 엄청난 슬픔이 찾아왔다. 검사 결과를 알게 되었을 땐 나는 근무 중이었기에 티를 낼 수 없었다. 일단 남은 근무시간 동안은 어떻게든 견뎌내야 했다. 펑펑 울어 이미 눈은 퉁퉁 부어있었다.

하지만 겨우 간신히 나의 눈물샘을 붙잡고 나의 퉁퉁 부어버린 눈을 조금이나마 숨기기 위해  위에 쉴드 고글을  쓰고 남은 근무시간 동안 일을 하고 버텼다. 그러고 퇴근길 마음을 어느 정도 추스른 후 갑상선내분비외과 부서에서 일하고 계신 아는 선생님께  상황을 알렸고, 선생님은 전화로 차분하게 나의 검사 결과에 대해 설명을 해주시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말씀해주셨다.

"다행히 선생님은 초기에 발견해서 반절 제 만 해도 되고,  로봇으로 수술하면 목에 상처도 안 남을 거예요. 그리고 주변에도 수술한 사람들도 문제없이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요. 그리고 간단한 수술이기도 하고"

선생님은 이해하기 쉽게 나의 상태에 대해 그리고 수술방법들에 대해 알려주셨지만, 사실 그날 들었던 이야기들은 잘 기억하지 못했다.

반쯤 정신이 나갔을 때였기에.

그날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다.

겨우 정신줄을 붙잡고 일까지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버스 안에서 창가를 바라보며 한참 울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 온 힘을 다해 최대한 울음을 그리고 슬픔을 참는 바람에 온 몸이 뜨겁게 달아오른 채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고 먹은 것도 없었는데 속은 토할 것처럼 메슥거렸다.

씻고 바로 잠들면 조금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누웠지만, 머리가 터질 것같이 아파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결국 tylenol 한 알을 먹고 겨우 잠들었다.


 시간이 멈췄던 것처럼 느껴졌던 그날이 지나고

주말 동안 마음을 잘 추스르고, 다듬었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하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힘들다고 슬프다고 마냥 집에서 힘 없이 누워 있고, 우는 것은 나를 힘들게 만들었기에, 바람도 쐬러 드라이브하고 책도 읽고 집 청소도 하고 정말로 바쁘고 알차게 주말을 보냈다. 나 혼자가 아니라 그래도 결혼할 오빠가 옆에 같이 있어줬기에 나의 마음이 더 흔들리지 않고 조금 더 단단하게 붙들어 맬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힘들었던 주말 드라이브하며 찍었던 사진,  내 마음과 달리 하늘이 너무 이뻐서 약간 슬픈마음도 들었던 하늘


그리고 그다음 주 월요일 나는 이 시련을 빠르게 헤쳐나가기 위해  마음을 강하게 먹기로 하고, 바로 갑상선내분비외과 외래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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