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사이에 웨딩 촬영할 곳을 알아보고, 드레스를 알아보기로 예정했던 날이 있었지만, 일단은 뒤로 살짝 미루고 수술을 한 뒤 쉬면서 병가기간 동안 천천히 하기로 했기에
2주는 온전히 그저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수술이 월요일이었기에 그 전 주말까지는 평소대로 출근을 하고 수술 당일부터 시작해서 4주 병가 결제를 올리고, 평상시대로 아무 일 일어나지 않은 사람처럼 생활했다.
주변에선 '수술 전에 좀 쉬어야 하는 거 아닌가?' 우려스러운 말들이 꽤 있었지만,
난 무언가를 끊임없이 하는 게 좋았다.
잠시 멍 때 리거나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면 괜스레 슬퍼지려 하였다.
그렇게 꿋꿋이 출퇴근을 하는 길 잠시 버스에 내려 집에 걸어가는 길 그 찰나에 순간순간 울컥해지기도 했다.
그럴 땐 마음을 다잡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커피소년의 '행복의 주문'을 들으며 힘을 내곤 했다.
주변 사람들이 괜찮냐고 물어볼 때는
실감이 안 난다는 둥, 이제 담담해졌다는 둥 괜찮은 척 나름 씩씩하게 잘 이겨낸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꾹꾹 눌러 숨겨둔 슬픔이 한 번씩 고개를 내밀려하는 순간 힘들었다.
주변에서 하는 위로의 말들 중,
인터넷에서 나오듯 '갑상선암은 착한 암이라 괜찮대.', '초기에 발견한 거니까 오히려 잘된 거야.''비슷한 나이 때에 주변에도 걸린 사람 많더라.' 이런 말들은 사실 위로가 크게 되지 않았다.
그 아무리 착한 암, 그래도 다른 암보다는 예후 좋고 젊은 사람이 많이 걸리는 암 이어도 그게 하필 나에게 왔을까, 앞으로 살아가면서 크게 내 생명에 지장을 주진 않을지라도 수술을 받고, 약을 먹어야 하고, 평생 검사를 계속 받으면서 주의 깊게 조심하고 신경 쓰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슬펐다.
그리고 정말로 나를 힘들게 했던 말이 있었다.
내가 선택했던 주치의는 유명한 시니어 교수님이 아닌, 올해 갓 스탭이 되신 주니어 교수님이었다. 나는 충분히 그분의 실력을 익히 듣고, 그분의 실력을 믿고 어렵게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주변 수술실 선생님 중에는 '왜 하필 그 경력도 없는 교수님한테 했냐, 우리한테 물어봤으면 됐을걸. 선생님이 조언 구한 그 갑상선외과 선생님이랑 그 교수가 친해서 추천해준 거 아니냐.' 그리고 '요즘 그 교수님 수술 환자들 부작용 많다고 들었는데.' 등등
수술을 일주일 정도 남겨둔 나에게 본인들은 물론 사실이라서 나에게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당사자인 나에게는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리듯 정말로 도움되지 않는 속상하고, 아프게 하는 말들이었다.
힘들었던 2주, 기다림의 시간 동안 크게 느꼈던 것이 있다.
위로를 누군가에게 해준다는 건 쉽게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해서 선뜻 건넬 수 있는 말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말로 해주는 위로보단 마음으로 해주는 위로에 더 큰 힘을 얻는다는 것을.
정말 진심으로 위로를 해주는 사람은 꼭 말로 위로를 해주지 않더라도, 마음으로 그리고 행동으로 그 위로가 따뜻하게 느껴진다.
다행히 내 주변에는 진심으로위로해주고 응원해주고 생각해줬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이 힘든 시간을 잘 이겨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