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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멍옥 Jul 07. 2020

3박 4일 입원 일기 첫 번째

외과 수술실 간호사의 갑상선암 치유기 episode 5

 병동에 처음 발령받고 힘들게 일하던 신규 시절, 종종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나도 차라리 저 많은 병상 중 한 곳에 누워 있고 싶다. 차라리 환자가 되고 싶다.'


 그땐 데이 출근(원래 정상 근무시간은 아침 6시-오후 2시)을 하는 날에는 새벽 4시 반 출근하여 물도 못 마시고, 밥도 한 끼 못 먹고 저녁 6시 이후에 겨우 퇴근하곤 했었다. 심한 날에는 나이트 근무 선생님(보통 저녁 8시 반에서 9시쯤 출근한다)까지 만나고 오는 날도 있었다. 그 사이 환자분들의 식사는 아침, 점심, 저녁이 모두 나왔고 나는 그때마다 반쯤 정신이 나간채 '난 왜 퇴근을 못하고 있는지, 집에 가고 싶다. 차라리 쓰러져서 응급차에 실려서라도 나가고 싶다. '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다행히 그랬던 생활은 일을 시작한 지 3개월, 6개월쯤 차차 나아져서 그렇게 병동에서 2년 조금 넘는 시간을 견뎌내었다.


 그 시절 그런 철없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지만, 정말 이렇게 입원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당일 입원이었기에 전날 집에서 자고 아침 8시까지 암병원 당일 입원실로 가면 되었다.

전날 엄마와 함께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아침에 일어나 항상 출퇴근길이었던 그 길을 수술을 하러 그리고 입원을 하러 가는 그  아침길은 무척이나 어색하고 이상했다.

병원에 도착하여 나의 근무지인 수술실이 아닌 당일 입원실에 왔다. 입원 수속을 하고, 스테이션에서 키와 몸무게를 측정 후 배정받은 병실 자리로 안내받았다.

항상 내가 하던 일이었다. 입원환자를 맞이하는 일...

어색한 입원 수속 후 받은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수액까지 맞았지만 아직 수술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1시쯤 들어갈 것 같단 이야기를 듣고 침대에 누워 멍 때리면서 누워있다가 빈둥빈둥하다 시간을 보냈다.

원래 같으면 출근해서 일하느라 금방 지나갔을 시간이 1분이 1시간처럼 천천히 흘렀다.

시간이 흘러 1시가 되었고, 이송 주임님이 이동침대를 끌고 오셨다.  

마음 준비가 아직 되지 않았는데, 너무 갑작스럽게 그 침대에 누워야 했다. 딱딱하고 아주 작았던 이동침대에 신발을 벗고 눕는 순간 마음에 요동이 치기 시작했다.

침대에 누워 엄마 얼굴을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했다.  그제야 수술을 받는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하지만 그 마음을 숨기고 싶었다. 내가 울면서 수술실을 들어가면 그것이 더 엄마 마음을 힘들게 할 것 같아 어떻게든 눈에 힘을 주어 눈물샘을 막고 있었다. 엄마도 눈물을 겨우 참고 있었다.


"나 잘 받고 올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있어."


그렇게 겨우 울음을 참고 수술실 앞에서 엄마랑 헤어졌다.

그러고 수술실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눈물이 끊임없이 펑펑 쏟아졌다. 

수술 전처치실에서(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잠시 수술 전처 치실에서 환자들은 수술방이 준비되기 전까지 대기한다) 침대에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나의 차례를 기다리는 느낌은 이상했다. 수술을 코앞에 두고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과 생각들이 엉킨 실타래처럼 머릿속에 가득했다.

여기 누워있을 때 환자분들은 이런 느낌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끊임없이 훌쩍훌쩍했다.

내가 매일 환자분들에게 수술실로 같이 들어가기 전 했던 말(수술 잘 될 거예요. 한숨 자고 나면 수술 잘 끝나 있을 거예요.)을 나 자신에게도 하며 마음을 끊임없이 다독였지만 그건 위로가 되지 않았다.

앞으로 다시 환자들을 만나면, 내가 했었던 위로의 말이 아닌 다른 어떤 말이 조금 더 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저 나 스스로 마음을 최대한 다스려야 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내 마음을 스스로 진정시킨 후 마취과 선생님과 갑상선외과 간호사 선생님과 함께 수술실로 들어갔다.

이상했다. 환자로 이동침대에 누워서 수술실 복도를 지나 수술실로 들어가는 그 길은 어색하고 내가 바라보는 시선 가득 처음 보는 것 투성이었다. 천장만 보여서였을까 내가 일하던 익숙한 그곳이 아닌 낯선 곳으로 느껴졌다.

수술실로 들어가 이동침대에서 수술대 위로 옮겨 누웠다.

차갑고 딱딱한 곳, 그곳에 누은 그 순간 내 몸은 얼음처럼 더 긴장하며 굳었다. 마취과에서 내 몸에 여러 EKG lead, 산소포화도 측정하는 sensor 등을 부착한 뒤 정맥주사로 마취제를 주사한  뒤 기억이 없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순간 이동한 것처럼 나는 이미 회복실에 누워있었다.


 수술이 끝나고 걱정했던 것처럼 미칠 듯이 아프진 않았다.

목을 누군가 조르는 느낌이 든다는 수술 후기를 보고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다행히 그런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진 않았지만 목이 너무 불편했다.

목에 담이 걸린 듯 움직여지지 않고 목안이 너무 불편했다.  심한 목감기에 걸린 사람처럼 안에 엄청난 가래가 있는 느낌에  걸걸하고 불편했다. 침 삼키키도 힘들었고 기침은 하면 안 되니 겨우겨우 사레들리는 걸 참았다.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다.  


 회복실에서 병실로 이동 후 두 시간이 지나고 조금은 수술 직후보다는 불편감이 점차 나아지는 듯했다.

목도 조금 움직였고, 똑바로 앉아 물을 빨대로 천천히 마시고 죽도 조심스레 한, 두 스푼 먹었다.

그러자 엄마도 안도하며 그날의 첫끼를 같이 먹었다.


 물도 한 모금 먹지 못한 채 마음 조리며 시간이 유독 지나가지 않던 오늘이었는데, 이제야 시간이 제대로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시간은  참 내 마음가짐에 따라 상대적이다.

시간은 그저 똑같이 하루하루 흘러갈 뿐인데, 그 시간을 내가 어떻게 보내냐에 따라 하루가 짧게 느껴지기도 길게 느껴지지도 한다.


오늘은 정말 유독 길었던 하루였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써 저녁 7시가 지나고 있었다.

 무사히 오늘 하루가 이렇게 지나감에 감사하며 그동안의 긴장이 풀렸는지 정신없이 입원 첫날은  일찍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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