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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스크 Jul 01. 2022

향기로운 와인에 흠뻑 취하다

소노마를 거쳐 요세미티로

샌프란시스코에서의 둘째 날이 밝았다. 오늘은 요세미티 국립공원까지 제법 먼 거리를 운전해야 해서 아침부터 마음이 분주하다. 그래도 이대로 샌프란시스코를 떠나면 왠지 서운할 것 같아 마지막으로 트윈 픽스에서 전경을 감상하기로 했다. 샌프란시스코는 지대가 높아 전망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트윈 픽스에서 보는 풍경이 가장 아름답다기에 이곳에서 마지막 인사를 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트윈 픽스 언덕을 구불구불 오르자 멀리서 바다와 도시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언덕이 제법 높은데도 자전거로 이곳까지 오르는 사람들도 종종 눈에 띈다. 차가 있어도 배기량이 적으면 힘겹게 오를 만한 경사를 자전거로 오르는 모습을 보니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차에서 내리니 바람이 제법 세게 분다. 날씨 좋은 샌프란시스코라 해도 언덕에서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나는 얼른 차 안으로 다시 숨어 들어가 아침에 <타르틴>에서 사 온 달콤한 타르트를 먹으며 샌프란시스코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즐겼다.


§ 트윈 픽스에서 바라본 샌프란시스코 전경. 새파란 하늘과 바다가 도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트윈 픽스에서 내려와 샌프란시스코에서 북쪽으로 4~50분 거리에 있는 소노마의 와이너리에 들러 와인을 한 병 사기로 했다. 식비를 아끼기 위해 요세미티에서는 식사를 모두 해먹을 예정이었는데 스테이크에 어울리는 와인까지 곁들이면 여행의 분위기가 더욱 살아날 것 같다. 문제는 어느 와이너리가 좋은 지 알 수 없다는 것. 나는 급한 대로 이웃 데보라에게 조언을 구했다. 한 달이 넘게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있는 데보라는 와인 애호가라 좋은 와이너리를 많이 알고 있는데 소노마에서는 <Viansa>가 가장 좋다고 알려 주었다. 소노마에 가까워오자 드넓은 포도밭이 눈앞에 펼쳐졌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겨우 한 시간 정도를 달렸을 뿐인데 전혀 다른 이국적인 풍경에 또다시 가슴이 설레 온다. 낯선 풍경이 주는 이 기분 좋은 들뜸이 늘 나를 등 떠밀어 세상으로 떠나게 한다.


§ 와이너리 <Viansa>의 와인 저장고와 상점. 홈페이지에서 미리 예약을 하면 와인 밭을 내려보며 소믈리에가 골라주는 와인을 시음할 수도 있다. 와이너리가 워낙 예뻐서 굳이 와인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도 구경삼아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와이너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와인을 즐기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간단히 식사를 할 수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도 딸려 있어 시간만 있으면 나도 느긋이 와인을 즐기고 싶었으나, 갈길이 워낙 멀기에 어쩔 수 없이 와인만 한 병 사서 가기로 했다. 나는 무거운 바디감의 와인은 좋아하지 않아 레드 와인 중에는 피노 누아를 가장 즐겨 마시는데, 이곳의 피노 누아가 너무 맛있어서 망설임 없이 사들고 나왔다. 역시 애호가의 추천을 믿은 보람이 있구나 싶었다. 한편, 상점에는 와인 이외의 예쁜 주방 소품들과 잡화류도 많이 팔아서 수없이 마음이 흔들렸지만 두 눈을 질끔 감고 서둘러 가게를 나섰다. 와이너리가 예쁘니 파는 물건들도 예쁜 모양이다.


소노마를 들르느라 멀리 돌아가게 되었지만 기분이 좋아져 즐거운 마음으로 산호세를 향했다. 산호세를 갈 이유가 딱히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대학을 돌아다녀 본 친구 말이 스탠퍼드 대학이 미국에서 가장 아름답다기에 여기까지 온 김에 들러 보기로 했다. 스탠퍼드 대학은 지금까지 봤던 대학들과 전혀 달라서 대학이라기보다는 대규모 리조트처럼 보이는 무척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런데 하필 우리가 간 날 정전이 되어서 기념품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아 들어갈 수 없었다. 나는 아쉬운 대로 바깥에서 건물들을 구경하다가 늦지 않게 요세미티를 향해 출발했다.


§ 로마네스크와 스페인 식민지 양식으로 지어진 스탠퍼드 대학은 지난달 갔었던 프린스턴 대학과는 전혀 다른 색다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스탠퍼드 대학을 뒤로하고 세 시간이 넘게 달린 끝에 해질 무렵에 이르러서야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숙소 옆을 흐르는 세찬 강물 소리가 거슬리기는커녕 가슴 시원하기만 하다. 자연의 싱그러운 인사에 장거리 운전의 피로가 단숨에 씻겨져 내려갔다. 내일 만날 장엄한 풍광을 떠올리니 벌써부터 기대에 부풀어 온다. 밤공기는 상쾌하고, 강물 소리는 밤새 재잘대고, 나는 소풍 전날의 어린아이처럼 괜히 들떠 뒤척이다 새벽 되어서야 간신히 잠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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