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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스크 Jul 22. 2022

알록달록 예쁜 인생

옐로우스톤 국립공원

드디어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이다. 미국 최초의 국립공원이자 최대의 국립공원이기도 하고 내셔널 지오그래픽 같은 매거진에서 자주 보아왔던 신비로운 색깔의 온천으로 많이 알려진 이 공원이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이기도 하다. 예상치 못한 폭우로 몬태나에 가까운 북쪽 루프를 보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그나마 절반이라도 오픈을 해 남쪽 루프라도 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간헐천인 올드 페이스풀이나 옐로우스톤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그랜드 프리스마틱 등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주요 포인트들이 모두 남쪽 루프에 있어 핵심은 보고 갈 수 있다는 점도 감사하다.


거대한 옐로우스톤 공원은 신비로운 색의 온천으로 가득해 지금까지 갔던 국립공원들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을 자랑한다. 물론 모든 온천들이 컬러풀하거나 예쁘지는 않아서 진흙탕처럼 보이는 온천들도 많은데, 그런 곳들은 사진으로 찍으면 빗물 고인 웅덩이나 다름없이 나와서 결국 파란색 예쁜 온천들만 사진으로 많이 남겼다. 온천들에 누가 이름을 붙였는지 모르겠으나 형태와 색의 특징을 잘 잡아내어 저마다 Blue Star(푸른 별)나 Heart(심장) 같은 그럴듯한 이름을 지니고 있다. 온천 중 하나는 마녀들이 쓸법한 거대한 솥처럼 생긴 데다 안에서는 온천수가 보글보글 끓고 있어서 '와, 꼭 가마솥 같다!' 하고 생각했는데 이름이 정말 Cauldron(가마솥)이어서 사람들 생각은 다 똑같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 왼쪽 위는 심장 모양을 닮은 Heart Basin, 오른쪽 아래는 푸른색 별을 닮은 Blue Star Basin이다. 위의 온천들과 달리 호수처럼 거대한 온천도 있는데 연기가 워낙 많이 나는 탓에 푸른 온천을 사진에 담기가 어려웠다. 물론 위의 온천들도 보기와 달리 매우 고온이라 위험해서 가까이 가서는 안된다.


한편, 옐로우스톤은 거대한 간헐천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Old Faithful(올드 페이스풀)이 규모가 크고 파워풀해서 가장 많이 알려져 있지만 안전상의 이유로 제법 멀리 떨어져서 봐야 하기에 그 위력을 실감하기가 어려웠다. 힘차게 뿜어 내올드 페이스풀의 물줄기가 서서히 잦아 들기에  끝난 건가 싶어 돌아가려는데, 마침 지나가던 국립공원 레인저가 간헐천을 하나  보고 싶으면 자기를 따라오라고 한다. 기왕이면 많이 보는 게 좋지 싶어 별생각 없이 따라나섰는데 레인저의 걸음이 너무 빠르다. 허덕허덕 뛰다시피 하며 간신히 쫓아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비하이브(Beehive) 간헐천에 도착하자마자 온천이 무서운 기세로 물줄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분출 시간이 임박해서 레인저가 속도를 내 걸었던 것. 이 온천은 올드 페이스풀과 달리 바로 눈앞에 있는 데다 물줄기가 워낙 높이 올라가는 탓에 쳐다보느라 목이 아플 지경이다. 뿜어진 물줄기는 바람을 타고 머리 위로 쏟아지기도 하는데 예상과 달리 물이 차가워서 놀랬다. 온천 에서는 물방울들이 햇빛을 받아 예쁜 무지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가 감탄을 하며 풍경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이에 자연의 경이로운 쇼는 막을 내리고 물줄기는 다음 분출 시간을 기약하며 땅속으로 사라졌다.


§ 벌집처럼 생긴 비하이브 간헐천은 바로 코앞에서 분출되기 때문에 물세례를 받기 딱 좋다. 빗물처럼 쏟아지는 간헐천 물방울을 받아 만들어진 선명한 무지개. 


다음 목적지는 그토록 보고 싶었던 그랜드 프라스마틱(Grand Prismatic) 온천이다. 이 온천은 미생물이 만들어 낸 독특한 색으로 유명한데, 크기가 워낙 큰 데다 주위가 연기로 자욱해 지상에서는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온천 뒤의 언덕에 올라 아래로 내려다보아야 제대로 조망할 수 있다. 우리도 언덕 아래에 차를 세우고 슬슬 걸어 올라가려는데 하늘이 심상치 않다. 푸르던 하늘이 갑자기 두터운 회색 구름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불안한 마음에 서둘러 언덕에 올랐지만 날이 흐려서 그런지 잡지에서 봤던 사진과는 달리 온천의 색이 선명하지가 않다. 그래도 별 수 있나 싶어 사진을 한 장 찍었는데 갑자기 비가 무섭게 쏟아지기 시작한다. 눈도 뜨기 힘든 거센 소나기라 배겨낼 길이 없어 서둘러 주차장으로 돌아와야 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비를 뚫고 언덕을 오르는 사람들도 여럿 눈에 띈다. 일정이 오늘 밖에 안 되는 사람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비바람을 무릅쓰고 오르는 모양이다. 나는 색이 흐리든 어떻든 비가 오기 전에 온천을 볼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기로 하고 덜덜 떨며 빗물에 흠뻑 젖은 옷을 갈아입었다. 뽀송한 티셔츠를 입으니 그제야 간신히 몸에 온기가 돈다. 우리는 차에서 한 숨 돌린 후 다음 목적지로 이동했다.


§ 미국에서 가장 큰 온천이자 옐로우스톤의 상징과 같은 그랜드 프라스마틱. 우리가 방문한 날은 구름이 좀 많아서 온천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푸르고 선명한 색을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옐로우스톤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웨스트 썸에 들러 트레일을 따라 온천 지대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공원이 워낙 거대해서 같은 공원 안인데도 조금 전 그랜드 프리스마틱과는 달리 여기는 하늘이 맑고 푸르다. 저 멀리 병풍처럼 둘러진 산과 바다처럼 넓은 호수를 배경으로 오묘한 빛깔의 온천들 사이를 걷는 기분이 무척 이색적이다. 나는 국립공원들마다 이렇게 다채로운 특색을 지녔다는 사실에 놀라며 미국의 스펙트럼에 새삼 감탄했다. 결국 이곳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건 다양함이라는 생각이 들며 문득 비하이브 간헐천에서 봤던 선명한 무지개가 떠올랐다. 무지개는 일곱 빛이라 일곱 배 더 예쁘게 느껴지는 것 임이 분명하다. 자연도, 사람도 그리고 우리의 삶도 다른 만큼 더 예쁠 것이라 믿는다.


§ 온천의 성분은 주변의 토양에까지도 영향을 미쳐 간혹 위의 사진들처럼 푸른 온천과 땅이 대조되는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대자연이야말로 진정한 예술가임을 새삼 느낀.




숙소에 들어와 길었던 여행의 마지막 밤을 보내며 지금까지 다녔던 미국에서의 여행들을 돌이켜 보았다.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얼렁뚱땅 다녔는데도 지금껏 큰 사고 없이 여행을 마쳤던 것을 생각하면 옐로우스톤의 부분 폐쇄 정도는 오히려 고마울 지경이다. 그랜드 프리스마틱이 조금 흐리다는 이유로 실망할 일이 아니었던 . 어떻게 모든 날들이 반짝반짝 맑기만 할 수 있겠나. 검은 먹구름도 만나고 회색 비바람도 맞아가며 사는 거지. 나는 구름과 비 덕분에 내 인생이 알록달록 예뻐졌다고 믿고 싶어졌다. 계획에 없던 색깔의 날을 만나더라도 언젠가 그 색이 화룡점정이 되어 내 인생을 더 빛나게 해 줄지 모르니, 조금 우중충하고 못마땅 한 날들도 소중하게 품어 가기로 마음 먹었다. 알록달록 신비로운 온천들로 가득한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은 나의 하루를 알록달록 예쁘게 만들어 주고 나서야 마침내 검푸른 색으로 저물어 다. 굿 나잇, 옐로우스톤.


§ 숙소였던 옐로우스톤 로지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들었던 곰돌이 모양 비누와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국립공원만 가면 점프 사진을 찍는 남편. 진심으로 무릎뼈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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