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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스크 Oct 08. 2022

위대한 고독, 알래스카

당신의 쓸쓸함을 나는 알아요

시인 로버트 W. 서비스는 일찍이 그의 시  <The shooting of McGrew>에서 알래스카를 일컬어 위대한 고독(Great Alone)이라 칭했다. 누구나 한없이 홀로임을 깨닫게 되는 광활한 알래스카의 대자연. 그 민낯 만나는 첫 여정의 시작이다. 시애틀을 출발한 크루즈는 힘차게 북쪽을 향해 바다 위를 내달렸다. 그런데 배가 빨리 달려서 그런지 아니면 파도가 험해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바하마 크루즈 때와는 달리 배가 심하게 요동을 쳐 속이 영 편치가 않다. 알래스카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는데 벌써부터 텃세를 부리는 건가 싶기도 하고, 어떤 식으로든 관광객을 쉽게 들여보내지 않겠다는 콧대 높은 알래스카의 심술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멀미약을 먹기는 해야겠는데 그간 미국 약에 하도 데어서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반으로 쪼개 먹었다. 절반의 용량이 나한테 딱 맞았는지 다행히 졸음에 허우적대지 않고 속을 가라앉히는 데 성공했다.


알래스카까지는 거리가 상당히 멀어서 시애틀을 출발한 배가 이틀을 꼬박 항해하고 나서야 첫 기항지인 주노에 도착했다. 많이들 알래스카의 주도(州都)를 앵커리지로 알고 있지만 사실 알래스카의 주도는 주노이다. 규모는 앵커리지가 훨씬 크다는데 왜 주노를 수도로 삼았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크루즈는 주노에서 반나절밖에 머물지 않는데 하고 싶은 익스커션은 너무 많다. 고래도 보고 싶고, 빙하도 보고 싶고. 그러다 고래와 빙하를 볼 수 있는 묶음 상품 같은 것을 발견해 이거다 싶어 예약을 했다. 먼저 멘덴홀 글레이셔를 보고 난 후 근처에서 배를 타고 근해로 나가 고래를 관찰하는 상품이다. 나는 빙하를 보겠다는 기대에 한껏 부풀어 배가 주노에 도착하자마자 신이 나서 버스에 올라탔다.


§ 포토 포인트에서 바라본 멘덴홀 글레이셔. 저 멀리 보이는 빙하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보고도 여전히 믿을 수 없다.


항구에서 멘덴홀 글레이셔까지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라 금방 도착했는데 주어진 개인 시간이 너무 짧다. 그도 그럴 것이 뒷 일정이 있으니 길게 시간을 줄래야 줄 수가 없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비지터 센터 근처의 포토 포인트까지만 걸어가 멀리서 빙하를 바라보았다. 알래스카는 8월에서 9월 초까지 우기라 비가 올까 봐 걱정을 많이 했는데, 날씨가 좋아 푸른 하늘 아래 흰 빙하를 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빙하를 제대로 보려면 빙하 위를 걸으며 보거나 카약을 타고 빙하를 가까이서 보는, 오로지 빙하에만 집중된 상품을 선택했어야 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아쉽지만 멀리서나마 빙하를 볼 수 있었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발길을 돌려야 했다.


멘덴홀 글레이셔를 빠져나와 고래를 보기 위해 근처 항구에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알래스카는 혹등고래의 주요 서식지로 고래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바다 위에는 우리 외에도 고래를 보려고 자리를 잡은 배들이 여럿 있다. 그러나 우리가 기다린다고 고래들이 무작정 와주는 것은 아니기에 알래스카의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인내심 있게 기다려야 했다. 장갑을 끼고도 손끝이 얼얼해지고 코끝이 빨갛게 시려올 무렵, 저 멀리 수면 위로 서서히 검은 고래 등이 솟아오르더니 하얀 숨을 힘차게 뿜어냈다. 잠시 수면에서 맴돌던 고래는 이내 꼬리를 흔들어 인사를 하고는 물속으로 사라졌다. 그 후로도 차례로 고래들이 나타났다 사라졌고, 그때마다 사람들은 탄성을 지르며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 우아하게 수면을 맴돌다 사라지는 고래. 인터넷에서 본 것처럼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고래는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그래도 귀여운 꼬리를 보여준 고래들이 고맙다.


그런데 가만 보니 고래들은 우리가 탄 것 같은 큰 배 근처로는 잘 오지 않고 작은 보트들 옆에만 머물렀다. 엔진 소리 때문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고래 역시 제대로 보려면 고래에만 초점을 맞춘 소규모 프라이빗 투어 같은 것을 해야 하는 모양이다.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욕심을 낸 바람에 둘 다 멀리서 밖에 보지 못한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잠시 스스로를 책망했지만, 그래도 욕심을 냈기에 반나절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둘 다 맛이라도 볼 수 있었다 싶어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만일 둘 중 하나만 선택했다면 돌아오는 내내 선택하지 않았던 익스커션이 눈에 밟혀 또 다른 후회를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은 이렇게 밖에 보지 못했으나 또 아는가. 살다 보면 언젠가 아이슬란드에서 빙하 위를 걷거나 호주에서 물 위로 힘껏 뛰어오르는 고래를 만나게 될지.


§ 엔디콧 암 피요르드에서 바라본 빙하와 주변 풍경. 빙하에서 녹아 나오는 물 때문인지 바다의 색이 터키석처럼 푸르고 아름답다.




며칠 후 시애틀로 돌아오는 도중에 크루즈가 엔디콧 암 피요르드 안으로 천천히 들어가 잠시 멈추어 있는 동안 다시 한번 빙하를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곳에서는 만년의 세월 동안 쌓이고 다져지다 마침내 푸른 바다를 만난 빙하가 고요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나는 멀리서 빙하를 바라보며 충분히 다가가는 수고를 하지 않은 채 알래스카를 들여다보려 했던 나의 어리석음을 반성했다. 비용이나 시간 등의 여건이 따르지 않은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면 욕심을 내지 말았어야 했을 일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억겁의 세월을 견디고도 미련 없이 훌훌 바닷속으로 흘러가는 빙하를 보며 나의 집착을 반성했다. 뒤돌아 보지 않기로 다짐해 놓고도 끝내 유혹에 흔들리고 마는 오르페우스처럼 얼마나 많은 순간 나는 이런저런 만약들을 만들어 내고 있었던가. 어쩌면 시인이 말한 위대한 고독이란 극한의 환경 속에서 자기 자신의 부족함을 마주하는 순간의 외로움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를 다스릴 이는 오로지 자신뿐이니 그 얼마나 쓸쓸한가.


그러나 우리 모두 결국은 다 똑같은 처지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그래서 서로의 외로움을 이해할 수 있다면 조금 덜 고독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온기가 필요한 곳이 비단 알래스카 만은 아닌 이유이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가슴속 찬바람을 홀로 맞고 있는 누군가를 위해 "당신의 쓸쓸함을 나는 알아요"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피요르드에서 서서히 빠져나온 배는 시애틀을 향해 속도를 냈다. 멀어지는 빙하를 바라보며 다시 도시의 사람들 속으로 섞여 들어갈 때쯤에는 모두가 조금씩 덜 외롭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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