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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스크 Dec 05. 2021

이게 최선입니까?

미국집의 불편한 몇 가지

한국도 그렇지만 미국도 집값이 일 년 새 천정부지로 치솟아 집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가 한참 집을 구하던 두 달 전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아 매물도 거의 없는 데다, 마음에 드는 집을 간신히 발견해 연락을 해도 이미 계약이 끝났다는 회신이 돌아왔다. 결국 우리는 마음이 급해져 실제로 집을 한 번 보지도 못한 채 부동산이 보내준 사진과 동영상만 보고 예산에 맞추어 집을 구하게 되었는데, 막상 와보니 집이 너무 깨끗하고 예뻐서 마음에 쏙 들었다. TV에서 보던 미국 집처럼 2층 집에, 거실에는 벽난로도 있어서 사진을 본 친구들은 모두 집이 근사하다고 부러워했다. 그런데 살다 보니 불편한 점도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장 불편한 점은 매일 사용하는 욕실에 있다. 우선은 샤워기 헤드인데 벽에 고정되어 있어서 움직일 수도 없는 데다, 평균 신장을 얼마로 계산하고 설치했는지는 몰라도 엄청 높은 곳에 붙어 있어서 키 작은 사람은 시원한 물줄기의 은총을 전혀 느낄 수가 없다. 수압 마사지야 아쉬워도 포기한다지만 대체 청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기껏 바닥을 닦아도 샤워기의 물이 닿는 곳은 정해져 있어서 결국은 세면대에서 커다란 냄비에 물을 받아 구석구석 뿌려가며 간신히 청소를 했다. 게다가 샤워용품 선반은 커다란 욕실에 비해 지나치게 왜소해서 뭐 하나 들어가지를 않는다. 결국 샤워 부스에 거는 행잉 선반을 따로 구입해서 해결하기는 했으나, 매일 아침저녁으로 샤워 부스에 들어갈 때마다 '이해할 수가 없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 벽에 고정되어 있는 샤워기 헤드. 어느 쪽으로 헤드를 돌려도 만족스러운 물줄기를 느낄 수 없다. 한편, 벽에 보이는 옴폭한 곳이 나름의 샤워용품 선반이다. 샴푸와 린스를 놓으면 공간이 꽉 차서 더 이상 아무것도 넣을 수가 없는데 아무리 샤워용품을 간소하게 쓰는 사람이라 해도 저 선반에는 다 넣을 길이 없어 보인다.


두 번째로 불편한 점은 집이 어둡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심각하게. 낮에야 블라인드를 올리면 어떻게 해결된다지만 조명들이 모두 호텔방에 쓰이는 노란 백열등으로 되어 있어서 밤이 되면 어두컴컴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이 조명 아래서 책을 읽다가는 어두운 기차 안에서 책을 읽다 눈이 멀어버린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처럼 당장이라도 장님이 될 것만 같다 - 물론 이건 와전된 사실이고 실제로는 유전병으로 인해 시력을 잃었으며 그의 아버지와 형도 같은 병을 앓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기차에서 책을 읽다가 어두운 터널에서 나오는 순간 시력을 잃었다고 알려진 극적인 얘기를 더 좋아해서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에게 굳이 사실을 말해 주지는 않는다. 또한 의사의 경고를 무시한 그의 독서 습관으로 인해 병이 악화된 것도 사실이기는 하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마트에서 하얀 전구를 사서 바꿔 보려 했으나 무엇이 문제인지 하얀 전구를 끼우면 '삐~' 하는 잡음이 나서 포기하고 말았다. 어둠의 자식들도 아니고 대체 왜 이렇게 어둡게 하고 사는지 이유를 모르겠는데, 미국 사람들도 어둡다고 느끼기는 하는지 대부분은 스탠드 같은 것을 추가로 놓아 해결한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의 가전제품은 전압이 맞지 않아 한국에서는 사용할 수 없기에 가급적 전기로 작동하는 제품들은 사지 않으려는 우리에게는 익숙해지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는 것 같다.


§ 조명이 너무 어두워서 어쩔 수 없이 구입한 북라이트. 한국에 있을 때 북라이트를 선물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는 이게 왜 필요한 지 이해할 수 없었다. 미국에 오니 북라이트가 없으면 책을 읽을 수가 없다. 심지어 북라이트 조차도 충분히 밝지 않다. 한국의 눈부신 LED에 익숙한 나는 아무래도 귀국할 때까지 이 조명이 익숙해지지 않을 것만 같다.


세 번째로 불편한 점은 계단이다. 사실 이게 불편한 점이 되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언젠가 나이가 들면 마당이 있는 2층 집에 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품어 왔었기에 좋은 경험이 되리라 생각했었는데, 이 집에 들어온 지 일주일 만에 다시는 2층 집에 살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으니 결론적으로는 정말 좋은 경험이 되기는 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는 것이 보통 수고스러운 일이 아니라, 이사 온 후 처음 일주일 간은 허벅지가 당겨 고생했었다. 그나마 아직 젊어 허벅지 통증으로 끝났지 나이 들어 2층 집에 살면 제일 먼저 무릎이 나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집은 1층에는 거실과 주방이 있고 방 3개는 모두 2층에 있어서 주방에서 일을 하다 남편을 부를 때는 목청껏 서너 번을 소리쳐야 간신히 멀리서 대답이 들려온다. 그래도 안 되면 문자를 보내기도 하는데, 옛날 유럽의 귀족들이 하녀들을 쉽게 부르기 위해 각 방마다 줄로 연결된 종을 설치해 놓은 이유를 알 법도 하다.


§ 영화 <쿵푸팬더>에서 주인공 포가 '올드 에너미'라고 표현했던 나의 '뉴 에너미' 계단. 누구라도 2층 집에 일주일만 살아보면 2층 집에 대한 로망이 산산이 부서지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모름지기 평평한 곳에 살아야 한다. 한편 기껏 보낸 로봇 청소기도 계단을 내려가지 못해 천상 2층에만 머물러야 할 것 같다. 로봇 청소기도 평평한 곳에 살아야 한다. 누군가 발을 만들어 줄 때 까지는.




가만히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못난 부분만 더 눈에 띄는 것처럼 오늘은 집에 머무르고 있다 보니 문득 불편한 점이 떠올라 글을 쓰지만 사실 이 집에는 편리한 부분도 많다. 음식물쓰레기 분쇄기 - 한국 아파트에도 더러 있다고는 하는데 아파트 구조상 아래에서 냄새가 올라와 선호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여기는 단독주택이라 분쇄기를 쓰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 -나 차고와 주방이 연결된 구조라 장을 본 후 바로 냉장고와 팬트리에 물건을 정리할 수 있는 점 등은 무척 마음에 든다. 사실 내가 불편하다고 느끼는 부분도 몰라서 그렇지 만든 사람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테고 나름 최선의 선택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부정적인 에너지는 묘하게 강력해서 제일 먼저 사람을 끌어들인다. 때문에 처음 들었던 안 좋은 생각은 다시 한번 돌아보아야 객관적일 수 있는 것 같다. 나태주 시인이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말한 이유도 거기 있지 않을까. 이 집에 산 지 이제 겨우 한 달 남짓이 되었을 뿐이니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랑스러운 곳도 차츰 늘어나겠지. 그때는 오늘 느꼈던 불편함 들도 조금은 정겹게 느껴질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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