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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스크 Nov 24. 2021

이토록 크리스마스에 진심이라면

크리스마스트리 만들기

생각보다 빨리 운전면허가 발급되어 차를 구입하고 보험을 알아보느라 지난 며칠간은 정신이 없었다. 미국은 같은 보험사라도 에이전트에 따라 가격이 달라져서 보험사를 정한 후에도 여러 에이전트에 상담받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런데 차에 정신이 팔려있는 며칠 사이 동네 풍경이 달라져 있었다. 거리의 가로등이 모두 빨간 리본을 멋들어지게 매달고 있는 것이다. 쇼핑몰들에 이어 스와니 시에서도 부지런히 크리스마스 장식을 시작한 모양이다. 생각해보니 타운하우스의 몇몇 집들은 몇 주 전부터 이미 정원을 화려하게 꾸며 놓고 있었다. 미국인들은 크리스마스에 진심이었다.


모두가 이토록 크리스마스에 진심이라면 우리도 빠질 수는 없지. 트리를 한 번 만들어 봐야겠다. 한국에서는 소박하게 갈렌드 정도로 장식을 했을 뿐 나무를 사서 제대로 트리를 한 적은 없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미국에 왔으니 아메리칸 스타일로 나무에 장식을 하려 했는데 너무 늦어버린 걸까. 가는 곳마다 나무는 이미 다 팔리고 없었다. 크리스마스까지는 아직 한 달도 더 남았는데 벌써 나무가 다 팔렸으면 대체 언제부터 장식을 시작해야 하는 걸까. 상심해서 돌아가려다 블랙프라이데이 세일 물품이나 보자고 잠깐 들른 곳에서 <Hobby Lobby>라는 인테리어 용품점을 우연히 발견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여기가 크리스마스 쇼핑의 천국이었는 듯 리본, 리스, 전구 등 각종 크리스마스 장식품들이 넘쳐났다. 덕분에 우리는 딱 하나 남은 나무를 구입하는 데 성공해 간신히 크리스마스 장식 열풍에 올라탈 수 있었다.


§ 크리스마스 오너먼트 중 일부. 오너먼트는 종류가 정말 다양해서 본인이 좋아하거나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장식품을 골라 트리에 걸 수 있다. 나는 작은 액자 오너먼트를 사서 사진을 넣어 걸고 싶었는데 사진들을 모두 한국에 두고 오는 바람에 정작 넣을 사진이 없어 포기해야 했다. 오른쪽은 남편이 너무 마음에 들어 한 눈사람 인형들. 전부 다 귀엽다며 세 개나 샀는데 나중에 트리 옆에 세워두니 제법 잘 어울렸다.


우리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어 본 적이 없어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난감했으나, 잘 모를 때는 기본에 충실해야 망치지 않는다는 생각에 크리스마스의 색인 빨강과 금색을 중심으로 꾸미기로 했다. 그리고 각자 마음에 드는 오너먼트를 두 어개 골라 달면 아주 화려하진 않아도 조잡하게 망치지는 않겠지. 한편 집에는 벽난로가 있어 기왕이면 나는 벽난로 위의 작은 선반도 함께 꾸미고 싶었다. "Merry Christmas"라고 쓰인 장식품과 도자기로 된 나무, 집 모양 캔들 홀더 등을 나란히 놓으니 그럴듯했다. 마침 이케아에서 사둔 화병이 하나 있으니 나중에 꽃시장에서 크리스마스와 어울리는 꽃을 좀 사다가 꽂아 놓으면 완벽해질 것 같다.


§ 크리스마스 장식은 벽난로부터. 가장 중요한 준비물은 벽난로라는 것이 함정일까. 처음 집을 안내받을 때 벽난로 켜는 법을 물어봤는데 정작 집주인은 기름 냄새난다고 벽난로를 한 번도 켜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래도 크리스마스와 연말에는 벽난로가 있으면 분위기가 한층 업그레이드될 것 같아 기름 냄새를 참고 한 번 켜볼 생각이다.


나중에 한국에 가져갈 때를 생각해 아담한 크기의 나무를 고를 수밖에 없었지만 대신 장식품은 초라하지 않게 채워 넣고 싶었는데, 다행히 블랙프라이데이 기간이라 크리스마스 장식품들을 모두 50% 할인판매하는 덕분에 우리는 큰 부담 없이 마음껏 장식품들을 구입할 수 있었다. 남편은 산타할아버지와 루돌프의 오너먼트를 골랐고, 빨간 양말도 마음에 든다며 하나 사서 걸었다. 나는 하얀색 작은 종과 금색으로 된 순록 한 마리를 골랐다. 나무 꼭대기에 리본이라도 사서 걸어두고 싶었는데 사이즈가 맞는 것이 없어 포기하고, "Merry Christmas"라고 쓰인 패널을 대신 거는 것으로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완성했다.


§ 완성된 크리스마스 장식. 벽난로 위에 콘센트와 TV 케이블 포트가 있어서 영 눈에 거슬렸는데, 마침 적당한 액자가 있어 걸었더니 깔끔하게 가려졌다. <Soulmates>라 쓰인 액자의 문구도 마음에 든다. 블랙프라이데이 세일 기간 동안 한국의 친구들에게 보낼 선물들을 구입하고 있는데, 나무 아래에 선물들을 쌓아두면 더 근사할 것 같다.  물론 배송기간을 생각하면 며칠 두지 못하고 빨리 우체국에 가져가야 하겠지만.



 

사실 기독교인도 아니고 크리스마스가 연인의 날처럼 여겨지는 한국에서 온 나는 이렇게까지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장식에 열을 올리는 이유를 알기가 어렵지만, 이 전통 덕분에 마을도 예뻐지고 눈도 즐거워지니 세월이 지나더라도 명맥이 끊기지 않고 계속해서 크리스마스에 진심이어주면 좋겠다. 이제 곧 찬 바람에 두 뺨이 얼얼해지는 계절이 찾아오겠지만,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밝혀 놓은 불빛들 덕에 마음 만은 한 동안 시리지 않을 것 같다.


§ 가게에서 나무를 사서 나올 때 점원이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했다. 다시 말하지만 크리스마스는 아직 한 달도 더 남았는데. 하지만 좋은 인사에 정해진 시기가 어디 있겠는가. 그 점원의 마음은 이미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도 한 달이나 이르지만 미리 인사해 본다.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그리고 한 달 후에도,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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