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국행 소식을 들은 친구가 물었다. 조지아주 애틀랜타라고 하자 남부 사투리가 알아듣기 어렵다며 미국에 10년째 살고 있는 자기도 신경 써서 들어야 한다고 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버바 발음과 비슷하다기에 일부러 다시 한번 봤는데, 영화에서 버바는 온통 새우 얘기만 하다가 일찍 죽어 버리는 바람에 알아듣기 어려운 지 어떤 지도 가늠할 수 없었다.
그리고 도착한 애틀랜타. 아, 그 친구 말은 진정 과장이 아니었다. 애틀랜타에 CNN 본사가 있어서 자기들 딴에는 표준 발음 쓴다고 자부심 가지고 있다더니 웬걸,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다들 친절하게 웃으며 천천히, 반복해서 말해주는 데도 좌절스러울 정도로 알아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야 어찌어찌해본다지만 문제는 정착의 필수 과정인 유틸리티에서 터졌다.
한국에서 가져간 휴대폰에 선불 유심을 구입해 끼웠는데 인터넷이 3G 밖에 잡히지 않는 것이다. 한 달 요금이 65달러나 되는데 3G가 웬 말인가. 더구나 인터넷 강국 대한민국에서 온 사람으로서 3G 속도는 용납할 수가 없다. 여기저기 알아보니 한국과 미국이 사용하는 주파수가 달라서 통신사에 따라 속도 제한이 생기기도 하는 모양이다. 천상 통신사에 전화해서 언락 요청을 해야 한다는데 이걸 전화로 설명할 생각을 하니 암담했다. 설명은 둘째치고 그들의 말 조차 알아들을 수가 없는데. 설상가상으로 집에 설치한 인터넷 와이파이도 잡히지 않는다. 스펙트럼이라는 회사가 가격도 합리적이고 속도도 빠르다기에 신청했는데 이 회사는 기기를 택배로 보내주고 설치는 고객이 직접 하는 것이 방침이라고 한다. 그런데 매뉴얼대로 했는데도 도무지 연결이 되지 않는다. 여기도 전화해야 하는 건가 싶어 절망하려는 찰나,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각 회사마다 채팅 상담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구세주 같았던 AT&T와 스펙트럼의 채팅 서비스. 한국에서 SKT로 사용했던 삼성폰은 AT&T에서 인식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버라이즌이나 티모바일에서 유심 테스트를 해본 후 선불 유심을 구입하는 것을 추천한다. 스펙트럼은 원래 케이블 TV 회사라 그런지 특이하게 랜선이 아닌 TV선에 연결하는데, 추천해 준 친구 말마따나 속도가 빨라서 아주 마음에 든다. 오랜만에 3G 모바일 쓰다가 만난 WiFi 세상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그래도 글은 말보다 나아서 채팅으로 대화하니 한결 수월했다. 결국 휴대폰 3G 문제는 통신사에서 해결할 수 없어 통신사 변경을 해야 하는 것으로 결론 났지만, 해결 과정에서 잠시 에러로 먹통이 되었던 휴대폰 상태도 채팅 서비스로 친절히 해결해 주었다. 인터넷 와이파이는 통신선 문제로 밝혀져 기술자가 방문해 해결되었다. 영화 속 버바와 발음이 똑같아 대화에 애먹었던 스펙트럼 기술자는 시종 무뚝뚝해 보였는데, 마지막에 인터넷이 정상적으로 연결되자 그제야 웃으며 좋은 기기이니 잘 쓰라고 설명해 주었다. 아마도 일이 잘 해결되지 않아 말이 없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내가 못 알아 들어서 스몰 토크를 시도하지 않은 걸 수도 있고.
그나저나 놀란 것은 미국은 모든 것이 느리다는 선입견과 달리 기술자 방문도 당일에 이루어졌고, 채팅 서비스도 24시간이나 밤 9시까지 제공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편견을 깨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경험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한편, 기나긴 채팅 과정에서 전화를 하라는 안내를 하기에, 내가 영어를 잘하지 못해 채팅이 더 좋다고 했을 때 상담사의 답변도 인상적이었다.
상담사를 기다리게 하세요 외국인이니 말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건 당연해요 그러니 상담사가 기다려야 합니다
다인종 국가라 자주 발생하는 일 인건지 단순히 의례적인 멘트였는지 알 수 없지만, 상대방이 영어를 못한다 해도 그것을 참고 이해하려는 노력의 책임이 본인들에게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외국인에게는 큰 위로가 되는 일이다.
하루도 사고 없이 넘어가는 날이 없어 매일 퀘스트를 수행하는 기분인데, 신기하게도 모두 잘 해결이 되고 있다. 어쩐지 미국에서의 남은 날들도 좋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번엔 좋은 예감도 꼭 들어맞아 주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