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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스크 Nov 18. 2021

예상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지만

미국 운전면허 발급

미국 도착 후 2주가 지났지만 학교의 체크인 처리 절차가 어찌나 늦은지 여전히 체크인을 하지 못한 상태로 있었다. 입국 후 30일 이내에 체크인을 하지 않으면 미국에 머무를 수 없는 데다, 체크인이 되어야 운전면허나 소셜 시큐리티 넘버 등을 받을 수 있어서 체크인 절차는 무척 중요하다. 체크인은 온라인으로 관련 서류만 업로드하면 되는데 처음에는 계정 비밀번호를 안 알려 주고, 그 후에는 계정 승인을 안 해주는 등 로그인 이슈를 해결하는 과정에만 일주일을 허비했다. 게다가 학교 홈페이지 어디에도 담당자 정보가 안 나와 있고 전화번호도 나와 있지 않아 대표번호로 전화를 해서 담당자 전화번호를 물으면 전화번호가 없다고 답변을 한다. 그렇다고 대표 문의 메일로 메일을 보내면 답이 꼬박꼬박 잘 오는 것도 아니어서 내 메일을 받았는지 어떤지도 확인할 길이 없다. 하나부터 열까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시스템이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 로그인 이슈를 해결하려고 안 찔러본 데가 없이 메일과 피드백을 돌아가며 남긴 끝에 간신히 계정 승인을 받았다.


그 후 겨우 각종 서류를 업로드해놓고 또 일주일을 기다렸지만 여전히 승인 대기 상태였다. 하루하루 시간이 갈수록 우리는 점점 초조해졌다. 체크인도 체크인이지만 운전면허를 받는 게 중요한데, 체크인 이후에도 이민국으로 정보가 넘어가는데 길게는 보름까지도 걸리기 때문에 그걸 핑계 삼아 면허 발급을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애틀랜타의 경우 한국인은 별도의 면허시험 없이 영사관에서 공증서를 받으면 한국의 면허증을 미국의 면허증으로 교환받을 수 있다. 때문에 미리 공증서도 준비해 놓았는데, 그 기한도 이달 말 까지어서 체크인이 늦어지면 공증서도 다시 받아야 할 처지였다. 우리는 또다시 가능한 모든 창구를 다 찌르기 시작했다. 공지되어 있는 메일 주소로 메일도 보내보고, 오리엔테이션 자료에 나와 있는 번호로 전화도 해보았지만 메일은 여전히 답이 없고 전화를 했을 때는 담당이 아니라 모른다는 답변뿐이었다. 결국은 일주일이 지나서야 조지아텍의 온라인 상담창구를 통해 담당자와 대화 후 체크인이 승인되었다.


§ 조지아텍의 온라인 상담 창구 <Bluejean>. 화면이 파래서 이름을 블루진이라고 지은 건지 어떤 건지 모르겠지만, 이런저런 신청 절차를 거쳐 기나긴 대기 후 간신히 연결이 되어 상담할 수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건 온라인이지만 어떤 모니터 화면을 공유하는 것도 아니고, 서로의 얼굴이 보이는 것도 아닌 그냥 목소리로만 대화하여 안내받는 것이다. 전화 안내와 뭐가 다른지  수는 없지만, 어쨌든 SS 이니셜을 사용하는 우리의 담당자가 그나마 친절하게 잘 안내하고 처리해 주어 무사히 체크인을 마칠 수 있었다.


이제 체크인보다 더 높은 고비가 남았다. 그야말로 악명 높은 DDS(Department of Drivers Service)에서 운전면허증 받기. 어마 무시한 대기 시간은 기본이거니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기준으로 면허증 교환이 거부된 사례를 여럿 들어본 터라 우리는 잔뜩 긴장한 채로 DDS를 방문했다. 기본이 세 시간 대기라는 말에 나는 책과 전자사전까지 준비하고 찾아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현관 옆에 스낵 자판기까지 보인다. 오죽이나 대기시간이 길면 스낵 자판기까지 마련했을까. 오늘 점심은 감자칩이 되려나 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웬걸, 내 앞에 대기자가 한 명도 없어서 기다리지 않고 바로 창구로 갔다. 창구에서는 제출한 서류를 꼼꼼히 살펴보다가 거주지 증명 서류에 날짜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거주지를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두 장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날짜가 기입되어 있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무데서도 들은 적이 없다. 하지만 담당자는 6개월 이내의 날짜가 기입된 거주지 증명 서류 - 나의 경우는 집 계약서와 은행에서 발송한 우편물을 가져갔는데, 집 계약서와 달리 은행 문서는 우편봉투에 날짜가 찍혀 있지 않았다 - 가 없으면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아, 이렇게 거부되는 건가' 생각하는 찰나, 담당자는 방문객용 컴퓨터가 있으니 혹시 온라인으로 증명할 수 있는 서류가 있으면 출력해 오라고 친절히 안내해 주었다. 우리는 부랴부랴 컴퓨터에서 날짜가 나온 증명서류를 뒤진 끝에, 간신히 주택보험 서류를 발견해 출력하여 제출할 수 있었다. 그 이후는 신기할 정도로 순식간에 처리되었다. 제출한 서류를 스캔하고, 사진을 찍고, 서명 및 비용 지불 후 발급 끝. 종이로 된 임시면허증을 건네며, 실물 카드는 45일 이내에 우편 배송된다는 친절한 안내로 면허 발급 절차가 종료되었다. 걸린 시간은 40분가량이지만, 중간에 서류를 찾느라 허비한 시간을 빼면, 실제 발급에 걸린 시간은 20분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 어리둥절할 정도로 일 처리가 빨랐던 Cumming의 DDS. 서비스가 감동스러워서 나오는 길에 간판이라도 찍어 보았다. 최소 세 시간에서 길게는 다섯 시간까지도 기다린다는 둥, 분명 인정되는 서류인데도 거부당했다는 둥 안 좋은 얘기를 너무 많이 들어 잔뜩 긴장하고 들어갔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에서 방문한 관공서 중 이곳이 제일 빠르고 친절했다. 입구의 스낵 자판기 때문에 쓸데없이 오해해서 미안하다.


운전면허를 발급받자 겨우 정착의 절차가 모두 끝났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이제 차를 구입하는 일만 남았다. 그 역시 걸림돌이 없으리라 장담할 수는 없지만 기한이 정해진 일은 아니니 천천히 해결하면 될 일이다. 이상하게도 가장 걱정했던 일 - 비자 발급, 운전면허 발급 등 - 은 손쉽게 지나가고,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 - 산학 계약, 학교의 체크인 등 - 은 예상치 못하게 우리의 발목을 잡았다. 특히 산학 계약 때문에 출국 직전까지 속을 썩었던 걸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그러고 보니 학교가 일을 제일 늦게 하는 것 같네.




엘리자가 말했어요.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정말 멋지네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는 걸요.


빨강머리 앤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멋지다고 말했다. 미국에서의 정착 과정이 늘 예상대로 흘러간 것은 아니어서 때로는 답답하고 - 학교의 처리 절차는 진심 멱살을 잡고 싶었다 - 때로는 불안하지만, 예상할 수 없는 일들 속에는 분명 얼마간의 행운도 숨어있을 거라 생각한다. 우리는 성공적인 면허 발급에 작은 축배를 들며 예상대로 되지 않아 멋진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길에서 동전도 주웠다. 예상할 수 없었던 또 하나의 행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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