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야 간신히 우리의 이삿짐이 부산에서 출항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물론 다만 배를 탄 것뿐이어서 실제로 미국에 언제 도착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일단은 배라도 탔다는 사실에 조금이나마 안도하고 있다. 당장 필요한 것들은 여기서 사면 되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좀 기다리면 그만이다. 그런데 애매한 것은 꼭 필요한 건 아닌데 없으니 아쉬운 물건들이다. 예를 들면, 에스프레소 머신 같은 것. 미국으로 떠나올 때 커피 애호가인 선배가 작별 선물로 드립 커피를 많이 선물해 주어서 커피는 부족하지 않게 있었으나, 가끔은 뜨끈한 우유를 가득 넣은 부드러운 라테가 그리웠다. 그러나 라테 한 잔 마시겠다고 배 타고 오고 있는 에스프레소 머신을 여기서 또 살 수는 없었다. 커피 추출액으로 라테를 만들면 되기는 하지만, 카페인을 먹지 못하는 나는 디카페인 추출액이 필요한데 한국에선 그런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구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아마존을 찾아봤는데, 어! 있다. 디카페인 커피 추출액이.
그러고 보니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때 호텔의 조식 코너에 일반 커피 옆에 디카페인 커피도 함께 마련되어 있는 것을 보고 감동했었다. 그 어느 곳에서도 디카페인을 일반 커피만큼 당연하게 가져다 놓은 곳은 없었으니까. 문득 예전 회사에 다녔을 때의 일이 생각난다. 인사이동으로 새로운 팀에 배정되었는데 탕비실에 디카페인 커피가 없었다. 디카페인 커피는 없냐고 묻는 나를 바라보던 직원의 눈빛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카페인을 먹지 못하는 게 무슨 대단한 장애라도 되는 양 뜨악하게 바라보는 그를 향해 나는
카페인 못 먹는 게 죄는 아니잖아!
라고 외치고 싶었으나, 오랜 경험상 그 조직에서 항변은 아무 소득이 없는 일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냥 조용히 입을 다물고 돌아섰다.
§ 아마존에서 구입한 디카페인 커피 추출액. 네스프레소로 만든 것처럼 맛있지는 않지만 아쉬운대로 잘 먹고 있다. 한편 라테를 좋아해 일부러 가져온 스타벅스 밀크 포머는 용기에 눈금이 있어 계량컵 대신으로도 요긴하게 사용 중이다. 밀크 포머가 아니었으면 계량컵도 사야 했을 터라 요리할 때마다 챙겨 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감사히 쓰고 있다.
생각해 보면 디카페인뿐이 아니다. 무언가를 섭취하지 못하는, 혹은 원치 않는 사람들을 위해 미국의 많은 제품들이 기꺼이 성분을 빼거나 줄이고 있었다. 당분, 글루텐, 탄수화물, 유당, 지방, 인공감미료, GMO 등 다양하게. 생각해보면 모든 것을 다 먹을 수 있는 사람을 정상으로, 그렇지 못한 사람을 비정상으로 간주하는 것은 굉장히 폭력적인 구분법이다. 그런데 이분법적 사고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는 알레르기가 있거나 다른 이유로 특정 음식을 먹지 못하는, 혹은 먹지 않는 사람은 유별난 사람 취급받는 경우가 많다. 물론 최근에는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바뀌어서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는 디카페인 커피를 판매하고 있고, 그 외 성분들을 뺀 제품들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대중적이지는 않아서 특정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서만 구입할 수 있고 종류도 많지 않아 선택의 폭이 제한된다.
§ 미국에서는 일반 마트에서도 쉽게 특정 성분이 빠진 제품들을 구입할 수 있다. 그런데 막상 먹어보니 이것저것 너무 많이 빼면 맛도 함께 빠져나가더라. 위의 Carbmaster 우유가 대표적인 예로, 지방과 탄수화물을 모두 뺐더니 우유라고 말해주지 않으면 아무도 알 수 없는 오묘한 맛의 액체가 되고 말았다. 굳이 따지자면 우유가 잠시 스쳐간 한 잔의 물이라고나 할까. 아주 건강한 삶 보다 적당히 건강한 삶을 추구해야 즐거운 삶을 살 수 있는 것 같다. 마트 과자 코너에서도 무설탕 쿠키 같은 것들을 같이 팔고 있어서 몇 개 사보았다. 그렇게 까지 해서 과자를 먹어야겠냐는 말은 하지 말아 주었으면. 나는 기왕이면 입도 즐거운 삶을 원하니까. 이외에도 사진에는 없으나 지방이나 설탕이 빠진 소스나 양념류가 많아서, 콜레스테롤이나 혈당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도 좀 더 편하고 맛있게 관리가 가능하다.
미국에는 비만이나 성인병 환자, 그리고 알레르기 환자가 많아서 성분을 조절한 다양한 식품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다양한 체질, 다양한 취향 - 먹을 수 있지만 먹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있으니까 - 에 대한 존중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언제나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선진국을 판가름하는 척도라고 생각해 왔다. 모두가 입을 모아 미국이 선진국이라고 말하는 데는 경제적인 이유도 크겠지만, 나와 다른 사람을 포용하는 사회의 성숙도에도 원인이 있지 않을까. 무언가를 하지 못하는 사람, 또는 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 비록 그것이 설탕을 못 먹는 사람도 맛있는 삶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도록 무설탕 쿠키를 만들어 주는 것 같은 사소한 일일지라도, 이 사회에서는 그 권리가 보장되는 것 같아 미국에 온 이후 처음으로 이들이 부러워졌다. 한국도 언젠가 사소한 사람의 사소한 행복이 보장되는 나라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