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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스크 Nov 20. 2021

산타할아버지는 오늘 밤에 안 오시는데

뷰포드 몰 오브 조지아

11월이 마지막으로 접어 들어가는 지금도 여전히 이곳은 한낮에는 20도를 웃도는 따듯한 날씨다. 길에는 아직 반팔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도 많은데, 거리는 일찌감치 크리스마스 장식을 시작해서 가로등이며 상점이며 가는 곳마다 붉은 리본과 반짝이는 알전구가 가득하다. 아직 추수감사절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이러는 걸 보면 크리스마스가 이들에게는 정말 큰 휴일이구나 라는 실감이 든다. 어디를 가나 크리스마스 장식은 화려하지만 아무래도 쇼핑몰의 장식은 따라갈 수 없겠지. 우리는 오늘 <몰 오브 조지아>를 찾아갔다. <몰 오브 조지아>는 이 근방에서 가장 큰 쇼핑몰인데, 중앙의 아케이드를 중심으로 다섯 개의 백화점이 연결되어 있는 거대한 상점가이다. 특별히 살 물건이 있어서라기 보다 유명하다고 하기에 구경할 겸, 블랙 프라이데이가 다가오고 있으니 뭔가 싼 물건이라도 살 수 있을까 하여 가보았다.


쇼핑몰은 입구에서부터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로 우리를 맞이 했다. 트리 주변으로 보이는 반팔 입은 손님들의 모습과 시원하게 물줄기를 뿜어내는 분수가 무척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크리스마스가 꼭 눈으로 가득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이미 그런 풍경에 익숙해 있어서 그런 모양이다. 쇼핑몰은 평일 낮인데도 사람들이 많았고, 각 상점마다 추수감사절 때문인지 선물 세트 같은 것을 많이 할인해서 판매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블랙 프라이데이 기간을 앞두고 있어 그런지 몇 % 할인이랄지, 1+1 같은 문구로 손님들을 현혹했다.


§ <몰 오브 조지아> 입구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는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 날씨가 여전히 가을 같아서 한 해가 저물어 간다는 생각도 못하고 있다가 반짝이는 트리를 볼 때마다 벌써 12월이 다가온 다는 생각에 놀라곤 한다. 쇼핑몰 안에서는 산타 할아버지를 섭외(?)해서 아이들과 사진을 찍어주는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물론 유료로. 안을 들여다봤는데 심사숙고해서 뽑았는지 정말 산타 할아버지와 똑같이 생긴 분이 자애롭게 앉아있었다. <몰 오브 조지아>는 Von Maur, Dillard's, Macy's, Belk, JCPenney 등의 백화점들과 연결되어 있는데, 백화점들도 하나같이 예쁘게 치장하고 손님맞이에 열중하고 있다.


쇼핑몰에는 다양한 상점이 입점되어 있었지만 영 캐주얼 등의 의류 매장과 스포츠 매장이 특히 많이 눈에 띄었다. 스포츠 매장에는 야구와 축구 같은 한국에서 대중적인 스포츠 이외에도 소프트볼 같은 여성 스포츠 용품 매장이나 어린이 스포츠 용품 매장도 크게 마련되어 있어 미국 생활스포츠의 탄탄한 저변을 실감했다. 남편은 스포츠 매장에 정신이 팔린 반면, 나는 인테리어 매장 <Pottery Barn>에서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원래도 예뻤을 침구류며 각종 장식품들이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추어 디스플레이를 해놓아 그런지 더 을 사로잡았다. 목적을 가지고 찾아왔더라면 분명 뭐 하나라도 들고 나왔을 테지만, 우리에겐 열심히 태평양을 건너오고 있는 짐들이 있으므로 눈물을 머금고 가게를 나왔다.


§ 인테리어 잡지에 나올 것 같은 모습의 <포터리 반스> 매장 디스플레이. 침대, 주방, 거실까지 통째로 훔쳐오고 싶었다. 한편, 남편은 스포츠 매장에서 야구 코너를 보고 감동했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쇼핑몰에서 야구 용품을 사기 어렵다고 하는데, 미국은 일반인들도 야구를 많이 즐겨서 그런지 글러브나 배트 이외에도 포수 장비나 의류까지 다양하게 판매하고 있었다. 한편 미국은 대학이나 지역마다 스포츠팀이 다양해서 그런지, 각 팀의 캐릭터를 활용한 각종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점도 있었다. 캐릭터들이 다양하고 귀여워서 팀을 잘 모르는 관광객들에게도 재미난 구경거리가 되어준다.


할인도 하고 있고 더러는 아기자기한 물건들도 많아서 여러 번 마음이 흔들렸지만, 아직 크리스마스는 한 달이 남았고 산타 할아버지는 오늘 밤에 안 오시는데 벌써부터 선물 받은 기분으로 쇼핑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사실 할인을 해도 미국의 물가 자체가 비싸서 그런지 그렇게까지 저렴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고 - 중국하고 멀어서 그런가 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  간혹 귀여운 물건이 있기는 지만 귀여움만으로 따지자면 한국에 비할 바가 아닌지라 단념이 그리 어렵지는 않아 다행이기도 했다. 내 의지를 뛰어넘는 너무, 너무, 너무 귀여운 물건이 많았다면 나 혼자 이미 크리스마스를 맞이 했을지도 모를 일이니, 취향 다른 미국의 디자이너들에게 감사해야 할 지도.




쇼핑은 즐겁지만 역시나 지치는 일이어서 돌아오는 길에 생필품을 사려 들른 코스트코에서 집을 장식할 크리스마스트리를 사 온다는 것을 깜빡 잊고 말았다.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뒤늦게 생각해 내고는 우리 집에도 산타 할아버지는 오늘 밤에 안 오시는 걸로 결론을 내리고 장식은 다음 기회를 노리기로 했다. 정성스레 잘 꾸며 볼 테니 맞이할 준비가 되면 그때 오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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