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서둘러 외출 채비를 했다. 혈당 관리에는 식사 후 바로 걷는 것이 좋다고 해 아침마다 가벼운 운동 겸 산책에 나서고 있다. 처음에는 집을 가운데 두고 세 갈래로 뻗은 길을 번갈아 가며 산책했지만, 이젠 더 이상 새롭게 탐방할 길도 없어서 오늘은 언제나처럼 집 근처 산책로인 <Brushy Creek Greenway>를 걷기로 했다. 집 앞에서 시작되는 이 길은 도서관을 지나 스와니 시청 근처까지 쭉 이어지는데, 양 옆에 키 큰 나무가 우거져 햇살을 피할 수 있는 데다 가끔 사슴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아하는 산책로이다. 마침 토요일 오전에 스와니 시청 앞 광장에서 <Winter Farmers Market>이 열린다고 해서, 산책 겸 시장을 구경하기로 했다. 안 그래도 사과와 토마토, 버섯이 다 떨어져 장을 봐야 했다. 나는 동네 농장에서 파는 청과물은 좀 더 신선하리라는 기대로 산책로를 지나 시청을 향했다.
§ 내가 좋아하는 <Brushy Creek Greenway> 산책로. 다람쥐는 자주 만나는데 사슴은 가끔만 볼 수 있는 데다 조심성이 많은 지 사람 소리가 나면 나무들 사이로 얼른 숨어버려 운 좋게 만나도 제대로 보지 못해 아쉽다. 숲에 사는 사슴 입장에선 우리가 불청객일 테니 도망치고 싶은 것도 당연하겠지만. 이제는 아침 기온이 많이 내려가 한참 걷다 보면 코 끝이 싸늘해지는데도 곳곳에 놓인 화단의 꽃은 여전히 싱그럽다. 미세먼지가 없어서 그런지 길가의 꽃들도 누가 일부러 관리를 한 것처럼 깨끗하다.
주말 아침이라 그런지 시청 앞 광장은 한산했다. 개들을 데리고 부지런히 산책 나온 사람들과 간혹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광장을 걷는 젊은 부모들이 보일 뿐 상인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나는 다시 한번 스와니 시청 홈페이지를 확인하고, 혹시 장소를 착각한 것인가 싶어 광장을 한 바퀴 다 돌았는데도 시장 비슷한 것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걸까 의아해하던 차에 멀리 현수막 하나가 눈에 띄었다. <Winter Farmers Market : 13 & 20, November> 13일, 토요일 맞는데... 아니 잠깐, 오늘은 일요일이구나! 한국에서도 날짜나 장소를 착각해 종종 엉뚱한 날에 엉뚱한 곳에 갔었는데,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미국에 와서도 요일을 착각한 것이다. 어쩐지 광장이 유난히 조용하더라니.
§ 허탕을 치고 돌아오는 길에 구경한 동네 상가. 어떤 가게들이 있나 기웃거렸는데 일요일 아침이라 모두 문을 닫았다. 상가에는 제법 큰 자전거 가게가 있어서 창문 너머로 열심히 들여다보았는데 제품들이 꽤 많았다. 렌털도 해주면 좋으련만. 도서관도 일요일 오전에는 문을 열지 않아 불이 꺼져있다. 모두가 쉬는 시간에는 우리도 따라 쉬었어야 하는가 보다.
결국 시장 구경은 하지 못했지만 덕분에 평소보다 긴 산책을 할 수 있어 아주 조금 더 건강해졌을 거라고 위로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원래 어제는 스넬빌이라는 마을에서 열리는 야외 놀이 행사 - 축구나 도끼 던지기(?) 같은 야외 놀이를 하는 이벤트 - 에 참가해 보려 했는데, 렌터카를 반납하고 집까지 힘겹게 걸어온 탓에 지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쉴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옆 마을에서 <International Food Festa> 같은 것을 한다기에 가볼까 했으나 주최가 종교단체인 것을 보고 마음을 접었다. 뭔가 또 한 번의 주말이 허무하게 지나가는 것 같아 아쉽지만, 주말은 원래 쉬라고 있는 거니까 그냥 맘 편히 쉬어야겠다.
그나저나 렌터카를 반납해 버려서 이제 우리는 어딜 가든 걷거나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차를 살 때까지 아침뿐 아니라 밤낮으로 걸어야 하는 처지라 뜻하지 않게 만보(어쩌면 그 이상) 걷기를 실천하게 되었다. 건강한 삶에 가까워지는 것 같아 좋기는 한데 어째 두 다리만 튼튼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며칠 새 두꺼워진 다리를 보며 씁쓸해졌지만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잃어야 하는 법이니, 목소리를 내어주고 두 다리를 얻은 인어 공주처럼 내어준 다리 대신 한결 깨끗해진 혈관을 얻었으리라 믿으며 묵직해진 종아리를 힘껏주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