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스크 Dec 11. 2021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뉴욕, 예술이 된 도시

내가 미국행 소식을 전하며 애틀랜타로 놀러 오라고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애틀랜타에서 뉴욕이 가까우니 뉴욕에서 만나자고 하면 다들 눈을 반짝이며 꼭 가고 싶다고들 말했다. 도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사람들의 반응이 사실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느 나라로 여행을 가더라도 도시 자체만을 구경하러 다닌 적은 없었기 때문에 다 똑같이 생긴 도시에 대체 무엇을 보러 가는 건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 내가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에서의 첫 여행지로 뉴욕을 택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뉴욕이라는 도시의 상징성, 가까운 거리, 그리고 무엇보다 크리스마스. 뉴욕은 따듯할 때 가야 좋다고들 하지만 나는 세상에서 가장 현란한 도시가 더욱 화려 해지는 크리스마스 시즌의 뉴욕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다.


물론 크리스마스를 뉴욕에서 보내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성수기의 뉴욕은 경비가 배로 뛰기에 우리는 몇 주 일찍 가기로 했다. 여행 날짜가 다가오자 조금씩 들뜨기 시작했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미국에서의 첫 여행이라는 설렘이 컸을 뿐, 도시가 다 거기서 거기일 거란 생각에 뉴욕이라는 곳 자체에 큰 기대를 품은 것은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공항에서 시내로 이동하는 동안 택시의 창 밖으로 보이는 뉴욕은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오래된 도시가 으레 그렇듯 많은 건물들이 보수공사 중이었고,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골목은 낡고 지저분했으며,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들이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려대는 동안 보행자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고 무단횡단을 했다. 아, 역시 뉴욕도 다른 도시들과 다르지 않구나.


§ 타임 스퀘어의 거대한 전광판들. 이곳에 광고가 걸리는 것의 상징적인 의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솔직히 전광판이 너무나 많아서 역설적으로 단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이곳의 분위기만은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최고의 가수 여럿을 한데 모아놓고 각자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르게 하는 통에 목소리가 전부 뒤섞여 누가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그럼에도 최고의 가수가 모였으니 일단 들어는 보고 싶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 와중에도 미키 얼굴을 한 자유의 여신상은 내 눈을 사로잡았으니 전광판이 아예 효과가 없었다고 할 수도 없겠다.


그런 내 생각이 바뀐 것은 전망대에 올라 뉴욕 전체를 본 순간이었다. 하늘에서 바라본 뉴욕은 마치 도시라는 단어의 정의를 형상화 해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왜 미국인들이 시티라고만 말해도 뉴욕이라고 알아듣는지 알 수 있었다. 뉴욕은 다른 형용사를 붙일 이유도, 부연 설명을 할 필요도 없는 곳이었다. 뉴욕은 여러 도시들 중 하나가 아니라 도시 그 자체니까. 끝없이 펼쳐진 빌딩 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맨해튼이라는 거대한 공간이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자본과 사람과 욕망과 열정 같은 것들, 그러니까 현 세계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을. 그 모든 것들이 뒤섞여 뉴욕이라는 도시가 빚어지고, 그렇게 탄생한 도시는 확장을 거듭하며 자기만의 세계를 넓혀 나가고 있었다. 마치 한없이 팽창하는 우주처럼.


§ 록펠러 빌딩 전망대 <탑 오브 더 락>에서 바라본 뉴욕 시내 전경. 어느 쪽으로 눈을 돌려도 빌딩 숲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실제로 보면 숨이 멎을 듯한 풍경인데, 뉴욕을 보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도시도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예술품으로써의 도시를 감상하기 위해 기꺼이 도시로 떠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The view of Rockfeller Center from Fifth Avenue is the most beautiful thing I have ever seen ever seen ever seen - Gertrude Stein


<탑 오브 더 락>의 입구에 걸린 패널들 중 하나에는 소설가 거트루드 스타인의 감상평이 적혀 있다. "ever seen"을 세 번이나 반복해서 쓴 걸 보면 그녀의 눈에도 뉴욕의 풍경은 분명 남달랐던 모양이다. 흔히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뉴욕이 여느 도시들과 비슷할 거라는 나의 예감은 감사하게도 완전히 빗나갔다. 곱씹고, 곱씹고 또 곱씹어 봐도 뉴욕은 특별하다. 이 특별한 도시에 나는 꼭 다시 와야겠다. 그때도 똑같이 세 번의 감탄을 내뱉으며 외치겠지. "뉴욕은 정말, 정말, 정말 특별해!"라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