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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스크 Mar 09. 2022

미국 남부 음식 견문록

서배너, 찰스턴 그리고 애틀랜타

한국의 음식을 제대로 맛보려면 남쪽으로 가야 한다.  상을 가득 메운 산해진미들의 모습에 시선을 먼저 뺏기고, 다양한 식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해 풍부한 맛을 자랑하는 요리들에 마음마저 뺏기는 남도 음식을 먹어보지 않고 어떻게 한국 음식을 논하겠는가. 그런데 남쪽 음식이 맛있는 것은 한국만이 아닌 모양이다. 미국에서도 남쪽을 가게 되면 남부 음식(Southern cuisine)을 꼭 먹어보라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남부 음식이 다른 지역보다 종류도 다양하고 맛도 훌륭하다는 모양이다. 이미 남부에 살고 있으면서도 스테이크와 햄버거에 눈이 멀어 뒷전으로 밀어 놨던 남부 음식을 서배너와 찰스턴으로 여행을 가는 김에 한번 제대로 즐겨보기로 했다.


1. 서배너 01_ Vic's River Grill

서배너에서 첫 식사를 한 레스토랑으로 창을 통해 서배너 강의 풍경이 한눈에 보이는 분위기 좋은 식당이다. 식당 한편에서 연주하는 피아노 선율까지 더해 더욱 로맨틱하게 느껴지는 곳. 여기서 처음 미국 남부 음식을 맛보았는데 그야말로 눈이 번쩍 뜨이는 맛이었다. 심봉사가 여기 음식을 먹었다면 심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지지 않아도 됐을 텐데. 우리는 먼저 시험 삼아 미국인들의 소울푸드라는 치킨을 주문했다. 한국인들은 한국 치킨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믿고 있고, 나 역시 그런 오만함에 빠져 있었기에 '미국 치킨이 맛있어 봤자 얼마나 맛있겠어' 했는데 웬걸. 이분이 바로 치느님이셨다. 나는 사실 굳이 따지자면 치킨파보다는 피자 쪽에 가까웠는데 여기 치킨 앞에서는 바로 변심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헬프>에서 제시카 차스테인이 황홀한 표정으로 치킨을 베어 무는 장면이 나오는데 딱 그 느낌이다. 한편, 함께 주문한 새우와 그릿 역시 고소함이 저 세상 레벨이다. 여기서 그릿을 처음 먹어보고 너무 맛있어서 나중에 영어 선생님에게 물어봤는데 그릿은 미국 남부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오트밀처럼 그릿 자체는 별 맛이 안 나지만 양념을 해서 주로 새우나 버섯 등과 함께 먹는다고 한다. 굉장히 풍미가 좋고 포만감도 있는 음식이니 꼭 한 번 먹어보기를 추천한다. 한편 이 식당은 칵테일도 맛있고 무알콜 칵테일도 제법 갖추고 있으니 느끼함을 잡아줄 상큼한 칵테일을 곁들여도 좋겠다.


2. 서배너 02_Maple Steet

서배너에서 가장 유명한 비스킷 레스토랑으로 아침 일찍 갔는데도 줄이 제법 길었다. 처음에는 치킨 와플을 주문할까 했는데 비스킷 전문점에서는 비스킷을 주문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치킨 비스킷과 그레이비소스를 곁들인 비스킷을 주문했다. 오른쪽 사진이 치킨 비스킷인데 접시에 깔린 꿀물 색의 액체가 모두 메이플 시럽이다. 하지만 치킨이 짭짤해서 너무 달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고 그냥, 맛있다! 뭐랄까 순종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기는 맛이라고나 할까. '네, 치느님. 더 먹겠습니다' 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레이비소스를 곁들인 비스킷도 맛있는데 양이 너무 많아서 다 먹기가 어렵다. 비스킷을 한 덩이만 주면 딱 좋을 것 같은데 그 점이 좀 아쉬웠다. 이곳의 커피도 연하고 부드러워서 식사와 잘 어울린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찰스턴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물론 몸은 무겁고;;;


3. 찰스턴 01_Page's Okra Grill

내가 애틀랜타로 가게 되었다는 얘기를 했을 때 다들 치킨 와플을 꼭 먹어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나는 '치킨과 와플이라니 이 읭?스러운 조합은 뭐지'라고 생각했고, 내 미심쩍다는 표정을 본 사람들은 생각과 달리 진짜 맛이 있으니 꼭 먹어 보라고 재차 강조를 했다. 그리고 찰스턴에서 치킨 와플을 영접한 후 바로 인정했다. 극강의 단짠 조합이란 이런 것이구나. 바삭하고 짭조름한 치킨에 달콤한 메이플 시럽을 아낌없이 콸콸 뿌려 먹는 치킨 와플은 미국인들이 환장하는 맛이라는데, 단언컨대 한국인들도 환장할 맛이다. 한편 화이트 와인과 갈릭 버터 소스를 사용한 해산물 파스타도 같이 주문했는데, 미국에서 먹어본 파스타 중 가장 맛있었다. 피냐 콜라다 역시 향긋하고 달콤해서 술술 넘어간다. 음식들이 너무 맛있어서 양이 상당히 많았는데도 남김없이 폭풍 흡입을 했더니 저녁이 되어도 배가 꺼지지 않았다. 여기 음식이 생각나서 찰스턴에 다시 가고 싶을 정도이니 진짜 강력 추천하는 곳. 이곳 역시 찰스턴의 여느 식당들처럼 예약은 불가능한데 사람이 엄청 많으니 일찍 가거나 혹은 직접 방문해서 웨이팅 리스트에 연락처를 남긴 후 주변을 돌아보다가 문자메시지를 받고 오는 편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 좋다. 다만 손님이 많아서 주차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4. 찰스턴 02_Middleton Place Restaurant

사실 이날 아침에 간 프랑스 베이커리의 빵이 너무 맛있어서 생각보다 많이 먹은 탓에 점심은 간단히 때울 생각이었다. 그런데 집에 가는 길에 들르기로 한 미들턴 플레이스의 레스토랑이 평이 좋아서 무리해서라도 한 끼 더 먹기로 했다. 언제 다시 올지 알 수 없으니 있는 동안 최대한 즐겨야 할 게 아닌가. 보는 것이든 먹는 것이든 말이다. 레스토랑은 미들턴 플레이스 저택 바로 옆에 있고 창문을 통해 아름다운 정원을 감상하며 식사할 수 있어 분위기도 근사하다. 나는 서배너에서 먹었던 그릿을 다시 먹어보고 싶어 구운 버섯과 그릿을 주문하고 남편은 새우와 오크라를 함께 조리한 음식을 주문했는데 메뉴 이름은 잊어버렸다. 버섯과 그릿은 약간 짭조름해서 옥수수빵과 먹으면 잘 어울릴 맛으로 한 입 먹으면 고소한 치즈의 풍미가 입안에 가득 퍼진다. 새우와 오크라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아주 훌륭한 맛이다. 이곳도 예약은 받지 않고 식당 카운터에 연락처를 남기면 문자를 보내주는 시스템. 어차피 정원을 둘러보려면 시간이 걸리니 미리 식당에 대기를 걸어 놓고 느긋하게 산책을 즐기다가 식사를 하는 것이 좋겠다.


5. 애틀랜타_South City Kitchen

서배너와 찰스턴에서 남부 음식을 너무 맛있게 먹고 와서 내가 사는 애틀랜타에서도 한번 먹어보고 싶어 찾아간 곳. <Cracker and Barrel> 같은 캐주얼한 프랜차이즈 식당을 먼저 가볼까 하다 기왕 가는 김에 제대로 된 곳을 가보고 싶어 아발론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여기는 식전 빵으로 옥수수 머핀과 비스킷을 주는데 둘 다 고소하니 맛있다. 이번에는 남부 음식점에 빠지지 않는 애피타이저인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를 주문해봤다. 염소 치즈와 그린 토마토를 튀겨 살사 소스와 함께 먹는데 새콤한 맛이 있어 크게 느끼하지 않다. 메인 요리는  내쉬빌 스타일의 매콤한 치킨이 있다고 해서 약간 마음이 끌렸으나 햄버거라고 해서 그냥 치킨을 주문했다. 바삭하고 고소한 치킨은 역시 실패할 수가 없고 함께 나온 콜라드 - 케일의 한 종류 - 는 시래기와 비슷한 맛이라 은근히 중독성 있다. 디저트인 바나나 푸딩이 맛있대서 먹어 보고 싶었는데 너무 배가 불러서 포기했다. 남부 음식은 한 끼 먹으면 사흘은 굶어도 될 포만감이라 어디 가나 디저트는 시도도 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아쉽다.




미국의 남부 음식을 맛보고 나서 깨달았다. 미국에는 스테이크와 햄버거 말고는 먹을 게 없다던 사람들은 미국 음식의 참 맛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없어서 못 먹으면 못 먹었지 먹을 게 없어서 못 먹을 일은 절대 없는, 그러나 건강을 생각해 자주 먹기는 어려운 미국의 맛있는 남부 음식은 오트밀과 귀리밥에서 일탈하고 싶을 때 가끔씩 찾아가야겠다. 한편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한 번쯤 가보고 싶은 루이지애나 여행에서 미국의 정통 남부 음식을 다시 맛보게 될 날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며칠 새 살이 2~3킬로는 쪄서 돌아오겠지만 아무러면 어떠랴. 먹고 다니는 여행자가 때깔도 좋은 법. 많이 먹고 많이 다니자. 때깔 좋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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