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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스크 Mar 30. 2022

읽고 토론하고 사랑하라, 미국 마을 북클럽에서

정겹고 살가운 두 번째 모임

지난달에 처음 참석했던 북클럽 데이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두 번째 모임이다. 이번 책은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이자 현재 아마존 프라임에서 드라마로 제작 중인 인기 소설 <Daisy Jones and the Six>이다.


내용은 꽤 심플해서 70년대 록 밴드 그룹이던 더 식스와 데이지 존스가 음악으로 성공을 거두고 인기를 누리다 갈등으로 인해 해체하는 이야기이다. 줄거리는 심플한데 반해 포맷은 신선하다. 책 전체가 인터뷰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대화가 무척 사실적이라 처음에는 실존하는 그룹의 이야기라고 착각했다. 그룹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구글링을 했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 이상하다 했더니 전체가 다 픽션이었다. 문제는 이 획기적인 포맷이 반대로 단점으로 작용한다는 것인데, 멤버 모두가 인터뷰에 참가하고 있으니 누군가 마약이나 사고로 죽은 것도 아니고, 모든 문장이 과거형이므로 더 이상 함께 활동하지 않는다는 것도 분명하다. 음악 그룹이 해체하는 이유는 대체로 뻔하기에 설마설마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들도 뻔한 이유로 해체한다. 즉, 작가가 선택한 천재적인 포맷이 결국 결말을 예상 가능하게 함으로 인해 소설 후반부에는 흥미를 잃을 수밖에 없는 책이다. 그럼에도 좋았던 점은 모든 문장이 대화체라 영어를 공부하는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지난번 책에 비해 내용도 쉬워서 이번에는 서너 문장은 얘기할 수 있었다. 고작  서너 문장이지만 나에게는 큰 성취라 보람 있었다.


§ 요리를 잘하는 제니퍼가 만들어 놓은 브라우니. 달콤하고 촉촉해서 아주 맛있었다. 그런데 옆에 있는 진짜 맛있게 생긴 딸기가 말도 못 하게 맛없어서 깜짝 놀랐다. 한국에서 이런 딸기 팔면 십중팔구 멱살 잡힐 텐데. 한편 스크루볼이라는 술이 맛있대서 한 모금 마셔 봤는데 향기는 좋지만 굉장히 독한 위스키였다. 그래도 나 빼고는 다들 잘 마시더라.


이번 모임은 제니퍼가 주최를 했는데 얼마 전 발생한 화장실 누수로 인해 집안이 엉망이라 뒤뜰에 앉아 모임을 했다. 제니퍼는 우리를 위해 캠핑용 모닥불까지 준비해 놓았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작동하던 것이 오늘은 이상하게 불이 붙지 않았다. 그래서 모두들 담요를 둘둘 말고 어둑어둑해져 가는 뒤뜰에 앉아 얘기했는데 그것도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한편 재미있는 얘기는 언제나 근황 토크에서 나오는데, 이번에는 심술 고약한 이웃 캐롤의 이야기로 다들 열을 올렸고 나는 이 광경을 흥미 있게 구경했다. 나의 이웃은 대체로 모두 좋지만 만유인력의 법칙만큼 온 우주에 공평하게 존재하는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을 피할 수는 없기에 여기에도 진상이 한 명 있다. 그녀의 이름은 캐롤. 페이스북에 늘 불평만 올려서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유별나다 싶기는 했는데, 그때마다 동네 사람들이 절대 참지 않고 가차 없이 말로 두들겨 패기 때문에 큰 문제는 일으키지 않고 그럭저럭 지내왔다. 그러다 최근 관리비 예산 보고 관련해서 캐롤과 주민들 사이에 다시 한번 언쟁이 오갔는데, 관망자 입장에서는 끊임없이 불만만 제기하는 쪽이나 한치도 양보하지 않고 키보드 배틀에 임하는 주민들이나 모두 대단해 보였다(사실 이것이 진상에 대처하는 올바른 자세라고 생각한다. 두더지 머리처럼 사정 없이 내려쳐서 다시는 고개를 못 내밀게 하는 것). 마침 모임날이 관리비 보고회 직후여서 모두들 캐롤에 대해 분기탱천해 있었는데 나는 말 보탤 입장도 아니고, 능력도 안 되는 지라 그냥 재미있는 싸움 구경하는 기분으로 험담을 들었다.


마을 북클럽은 뭔가 사랑방 느낌이라 박학다식한 대화가 오가지는 않지만 정겹다. 때로는 험담에 열을 올리고, 자주 토론은 샛길로 빠져도 그래서 더 재미있는 북클럽의 두 번째 모임은 엉망이 된 제니퍼의 집을 구경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이미 밤이 깊어 길이 어두웠지만 이웃 리즈와 수다 떨며 걸으니 눈 깜짝할 새 집에 도착했다. 리즈와 작별 인사를 마치고 들어 가려는데 아까 인사를 하고 헤어진 또 다른 이웃 도디가 차를 몰고 가다 나를 봤는지 굳이 창문까지 내려 다시 한번 굿 나잇을 외친다. 나도 크게 손 흔들어 인사하며 그녀가 평안한 밤을 보내기를 기원했다. 살갑고도 친근한 미국 시골 마을에서의 또 다른 하루는 이렇게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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