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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스크 Apr 15. 2022

Something Good

브라이스 캐니언

그랜드 서클 여행의 두 번째 코스는 자이언 캐니언에서 두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브라이스 캐니언이다. 두 시간 거리이면 그랜드 서클 여행 중에는 비교적 가까운 편이라 마음이 편하지만, 어제 자이언 캐니언에서 조금 늦은 탓에 주차를 하지 못한 기억이 떠올라 아침 일찍 서둘러 출발했다. 구름이 득 했던 어젯밤과 달리 하늘이 맑고 푸르러 기분이 좋다.


살이 좋다고는 해도 해발고도가 8000피트 이상 되는 만큼 브라이스 캐니언은 바람도 세고 날이 쌀쌀하다. 이곳은 겨울이 더 몽환적이고 아름답다지만 4월에도 갓길에는 아직 눈이 쌓여 있을 정도이니, 추위를 많이 타나는 도저히 겨울에는 가지 못 할 것 같다. 웅장한 산세를 자랑하는 자이언 캐니언과 달리 브라이스 캐니언은 규모는 작지만 온통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마치 외계 행성에 온 듯한 느낌에 빠져든다. 지구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을 믿기 어려울 만큼 신비롭고 비현실적인 풍경이다.


§ 왼쪽의 높은 바위 기둥이 브라이스 캐니언의 상징인 <토르의 망치>이다. 당장이라도 토르가 날아와 쑥 하고 뽑아갈 것 같은 모양새다. 브라이스 캐니언의 구석구석에는 이름은 없어도 특이한 바위들이 숨어있어 트레일을 걷는 재미가 남 다르다.


나는 브라이스 캐니언의 트레일 중 가장 인기가 많은 퀸즈 가든 트레일과 나바호 룹 트레일을 걷기 시작했다. 브라이스 캐니언의 선라이즈 포인트부터 시작해 약 2~3시간을 걸으며 캐니언을 한 바퀴 돌아보는 코스인데,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넋을 뺏기고, 코너를 돌 때마다 카메라를 꺼내 드느라 통 앞으로 나가지를 못한다. 이렇게 걷다가는 하루 종일 걸릴 기세이다. 그래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 없이 풍경에 빠져든다. 이 절경을 앞에 두고 아름답다는 단어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빈약한 어휘력이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 브라이스 캐니언의 뷰 포인트 중 하나인 내추럴 브릿지. 이 외에도 레인보우 포인트나, 인스피레이션 포인트, 모시 케이브 등의 다양한 뷰 포인트가 있는데 차로 2~30분 정도면 가는 거리라 시간이 넉넉지 않은 사람들도 부담 없이 돌아볼 수 있다.


하이킹을 마친 후에는 차로 캐니언을 한 바퀴 돌며 유명한 뷰 포인트들을 돌아보았다. 브라이스 캐니언의 좋은 점은 트레일을 모두 걷지 않고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걸으며 느끼는 감동에는 비할 바가 아니지만 체력이 부족한 나는 고마울 따름이다. 캐니언을 모두 둘러본 후 숙소인 베스트 웨스턴 플러스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호텔의 코인 세탁기에 밀린 빨래를 돌려놓은 후 세탁이 끝날 때까지 핫텁에서 스파를 하며 피로를 풀기로 했다. 호텔에 핫텁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영복을 챙겨 가기를 잘했다. 파란 하늘 아래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뜨거운 물속에 몸을 담그니 뻐근했던 다리며 온몸의 근육이 부드럽녹아내린다. 기분 좋은 노곤함에 취해 한참을 핫텁에서 머물다 세탁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나오니 슬슬 일몰 시간이 다가온다. 나는 서둘러 옷들을 정리하고 다시 브라이스 캐니언의 선셋 포인트로 향했다.


§ 석양을 받아 한층 붉어진 브라이스 캐니언. 유타주의 혹독한 기후와 오랜 세월에 걸친 침식이 만들어 낸 자연의 아름다운 걸작품이다.


시간에 맞춰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산 위에서는 해가 빨리 진다는 생각을 미처 못한 탓에 간발의 차이로 해넘이를 놓치고 말았다. 그래도 아직 하늘에 붉은 기운이 남아 있어 그런지 삐죽이 솟아오른 바위들이 석양을 받아 불꽃처럼 일렁인다. 양은 놓쳤지만 기왕 여기까지 온 김에 어두워 지기를 기다려 별이라도 보고 내려가기로 했다.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해 별을 보기 딱 좋은 하늘이다. 차에서 완전히 어둠이 내려앉을 때 까지 한 시간 쯤 기다렸다가 다시 캐니언 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칠흑 같은 밤하늘을 가득 메운 별들이 머리위로 쏟아져 내린다. 우리 옆에서 별을 구경하던 사람이 별자리를 잘 아느냐고 물어왔다. 내가 오리온자리 밖에 모른다고 하자 친절하게 시리우스와 게자리를 알려주고, 인공위성과 비행기 불빛이 어떻게 다른 지도 설명해 주었다. 소곤소곤 얘기를 나누는 사이 별똥별이 반짝하고 떨어진다. 우리는 잠시 얘기를 멈추고 눈 깜짝할 새 사라진 별똥별의 흔적을 찾아 까만 밤하늘을 헤매다 다시 수많은 별빛 속으로 빠져들었다.


§ 퀸즈 가든 트레일을 걸으며 찍어본 동영상. 바위로 된 터널을 지나면 마치 비밀의 화원에 들어선 것처럼 아름다운 신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노래의 가사가 떠올랐다. 줄리 앤드루스가 부르는 <Something Good>이라는 노래로,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것을 보니 분명 언젠가 착한 일을 한 모양이라는 가사이다. 나는 오늘 브라이스 캐니언의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내게는 과분한 이 행복을 위해 내가 무슨 일을 한 걸까 생각했다. 우연히 유타주에 태어나 매일 이 풍경을 보는 사람에게는 우스운, 또는 나보다 훨씬 훌륭하지만 여건상 이곳에 올 수 없는 사람에게는 주제넘고 거만한 생각임을 잘 알고 있고, 살아가며 모든 일에 늘 합당한 원인이 있는 것만은 아님을 늘상 깨닫고 있음에도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기억으로는 대단한 일을 한 적이 없는데, 그럼에도 주어진 이 행운이 너무 감사하면서도 믿기가 어려워서 인가보다. 어쩌면 오늘은 이제부터 더 좋은 일을 하며 갚아 나가라고 미리 받은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Something Good. 아주 작더라도 좋은 일을 만들어 가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며 별들이 고요히 지켜보는 밤길을 달려 호텔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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