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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Nov 02. 2021

글을 써야 할 이유

오랜만에 조급해졌다. 정말 조급해야 할 이유가 아니라 오래간만에 얻은 짧은 자유시간을 최대한 알차게 보내고 싶어서다.

불편한 게 편해진 게 익숙해진 지 오래다.
(이를테면 밤에 자다 깨는 아기를 달래서 다시 재우는 게 고단 하단 이유로 혼자 자는 편안한 침대를 포기한 그런 것들이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아기가 크면 나 혼자 편하게 잘 수 있겠지 하는 희망이 생겨서 그래도 되겠다 싶던 어느 날 침대 혼자 누워봤는데, 몸이 편한데 심리적으로 미묘하게 불안한 나를 발견했다.)
이런 이유로 항상 아이와 많은 시간을 붙어서 살다 보니, 홀로 있는 시간이 생기면 자유로우면서도 쓸데없이 불안정한 마음이 쉬이 가라앉질 않는다. 매일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막상 주어지면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이런 나의 모습이 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처구니없는 조바심에 가까운 불편함과 동시에 이 시간을 최대한 즐기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


그런 의미에서 글을 쓴다.

이왕이면 스치는 생각이나 감정들을 하루가 지나지 않은 시간에 차분하게 기록해 두면 좋겠다. 다음에 해야지 하고 짧게 짧게 메모장에 기록해두는 건 생각보다 별로였다. 정작 그 내용을 써야겠다 싶어 메모장을 들여다봤을 때는 썼을 때의 감정과 갬성이 식어서 쓰고 싶지 않을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글에도 격함이라던가 흥분이라던가 하는 감정의 곡선은 드러나지 않게 써야지, 일기보단 에세이에 가깝게 심혈을 기울여서 써야지 하고 미루다가 못쓴 것도 거의 대부분이다.
그래도 요즘엔 짧은 쉬는 시간에 tv나 게임, 폰질을 제외하고 일단 책을 읽고 보는 습관이 잡혔다. 첫 한 달만 무료였던 전자책 앱을 깔았다가, 읽기는 하는데 종이책 같은 맛이 없어! 이러고 무시했다가 종종 눈에 띄는 신간 책들을 완독 하다 보니 종이책보다 쉬운 접근성에 습관이 묻은 것이다. 특히 아기를 재운 후에 종이책을 보려면 거실이나, 방으로 들어가 어디든 밝은 데 앉아야 뭐라도 볼 수 있었는데, 그대로 누워서 휴대폰으로 책의 문장들을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컸다.
책 내용에 몰입되고, 생각이 이어지고, 자주 마음이 따뜻해지니 좋았다.


그런데 그렇게 익숙하지 않던 독서 습관이 잡히니 또 다른 욕심이 생긴다. 책을 읽으면서 기억하고 싶은 구절을 더 뚜렷하게 기억하고 싶고, 그 문장을 기억하고 싶게하던 내 마음을 같이 기록하고 싶더라. 이런 욕구는 처음이었다. 올해 초만 해도 독서습관을 들이는 것 자체가 작은 목표였고, 기록으로 옮기는 것은 싫지는 않지만 부담스러운 숙제 같은 것이었다. 책을 읽는 중간중간에 느낀 점을 기록해보기도 했고, 서평(이라고 쓰고 독후감에 가깝다)을 몇 개 써보기도 했다. 거기서 느끼는 재미나 소소한 성취감이 쏠쏠했나 보다.


독후감이든, 에세이든, 무슨 글이든 생각을 기록으로 남기기까지는 집에서 헬스장에 가기까지의 귀찮음과 맞먹지만 헬스장을 가야겠다는, 다이어트를 해야겠다는 욕구 자체가 있다는 것처럼.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하고 싶다는 욕구 자체가 없음 에 있음으로 변화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욕구가 체험과 실천이 되기까지 , 그것이 또 꾸준한 습관과 일상이 되기까지는

욕구가 습관이 된 것과는 또 다른 노력과 부지런함이 필요할 것이다.

결혼하기 전, 아니 육아가 시작되기 전, 풀타임으로 힘들게 일은 했지만 생각해보면 지금보다 충분히 자유스러웠을 그때는 전혀 이런 갈망이나 욕구가 없었다. 육아로 아이가 잘 때조차 온 신경이 쏠려서 자유를 반납한 시기가 오래돼보니 새로운 열망들이 피어나고 있다. 뭔가를 실현해 나가다가도 아이와의 일상에서는 그 일상이 무너질 수 있는 일들이 자꾸 생겨서 습관을  만들었나 싶다가도 그것들이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돌아가기 일쑤지만, 또다시, 다시 일어나다 보면 그리고 또다시 하다 보면 조금씩 내가 즐거운 것에 조바심 내지 않고 익숙해질 날들이 오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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