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는 수도권의 대형 신식 건물이 나란히 5개씩 있는 직선거리에만도 한 쪽에 묵직한 조명의 스타벅스 한곳, 맞은편에 황금빛 조명이 화려한 중형 개인 카페 한 곳 정도가 전부이던 2008년. 지금처럼 한 건물이 지나기 무섭게 프랜차이즈와 개인업장이 우후죽순으로 즐비해 있지 않아, 카페란 막 20세가 되어가는 나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곳은 아니었다.
그래서 내게 카페란 커피를 팔고 마시는 곳, 어쩐지 멋을 아는 고상한 어른들이 가는 곳 이었다. 으레 커피 자체가 미성년자에게는 권해지지 않는 것처럼, 나아가 커피를 팔기까지 하는 카페는 더더욱 어른다운 어른에게 어울렸다. 그렇게 갓 스무살이 된 내게는 '커피, 카페'가, 카페가서 커피마셔보기로 버킷리스트에라도 추가해야 될 것 같은 정도의 신비감과 특별한 거리감이 공존했다.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카푸치노, 카페모카, 카라멜마끼아또에 이어 메뉴판 두 번째 단에는 캐모마일, 페퍼민트 같은 차 종류가 있었다. Coffee 와 비슷한 어감의 Cafe 에 왔으니 꼭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메뉴판 앞에서 누가 재촉하는 것도 아닌데 긴장감이 느껴지고, 설렜다. 그리하여 내가 선택한 첫 카페 첫 커피는 뭐였는지.
한국에 있지만, 미국이나 이태리에 있는 것 같은 이상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던 내 첫 카페의 내음이 뚜렷한데, 정작 첫 커피메뉴가 가물하다. 대신 첫사랑 커피를 기억한다. 마치, 떨리든 말든 일단 만나보기나 하는 첫 소개팅에서 만난 첫 남자의 기억이 시덥 잖은 것처럼 첫커피 메뉴가 뭐였는지 잊었다. 반면, 그 사람이 없으면 마치 나도 없을 듯이 좋아해 버린 진짜 첫사랑의 기억은 달콤하고 강렬하다. 내게 첫사랑 커피가.
그리하여 고백하는 카페모카.
카페모카를 알기 전까지 내게 커피란 레쓰비나 합성 바닐라향 가루가 잔뜩 들어간 두툼한 봉지 믹스커피가 아니고서야 그저 '씀' 이었는데, 카페모카는 달랐다. 그전에 카페모카는 맛도 맛이지만, 생김새만으로도 먹기 아까울 정도의 압도적인 미(美)가 있었다. 카페에 처음 갔던 계절이, 수능이 끝나고 맞이하는 겨울이었을테니 음료는 늘 따뜻했는데, 속이 보이지 않는 두껍고 하얀 머그컵에 담겨진 모습이 첫인상을 사로잡았다.
일단 잔 위로 처음 보이는 것이 커피의 뻔하고 탁한 갈색이 아니라, 퐁실하고 깨끗한 휘핑크림더미였다. 그 위로 초코드리즐이 뿌려져 있었는데, 휘핑크림의 핑킹가위 같은 거친 곡선과, 바리스타의 손길에서 나온 초코드리즐의 수려한 케찹같은 곡선이 한눈에도 맘에 들었다. 심지어 휘핑크림과 초코드리즐의 첫 입은 매순간 감동이었다. 이쯤 되니 나는 카페모카라는 커피를 좋아한 게 아니라, 휘핑크림과 초코시럽을 좋아한 것이 분명하다.
스무 살에 빠져버린 카페모카의 휘핑크림은 부드러우면서 차갑고, 가볍고, 기포가 많았으며, 기름진 단맛이었다. 나는 그 휘핑크림을 하단의 커피에 섞은 적이 결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그것은 휘핑크림에 대한 모욕이었고, 나는 비록 커피맛은 몰랐을지언정 휘핑크림의 존재를 존중할 줄 아는 갓 어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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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고, 차갑고, 기름진 휘핑크림과 초코드리즐을 공중에서 한 입 크게 베어 물고, 마침내 컵에 입을 작게 오므려 대어 잔을 기울이면, 비로소 커피가 흘러들었다. 핫초코에 커피를 다섯스푼정도 뿌린 것 같았다. 아직 청소년끼를 저버리지 못한 스무살 입맛에는 최적이었다. 초코를 얹은 휘핑크림과 핫초코에 흡사한 카페모카란 커피가 완벽하게도, 어른을 빙자하는 완전한 청소년의 맛이었다.
하지만 첫사랑의 달달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스무살의 여름이 오기 전, 즉 6개월이 채 안 되었을 때부터 나는 달달한 카페모카가 아닌 쓴 아메리카노를 시럽조차 넣지 않고 마시기 시작한 것이다. 자발적으로 ‘쓴’ 커피를 주문하며, 달달함이 느끼하다 못해 질려버렸는지, 일종의 휴식기를 가지는 모양이었다.
휴식기처럼 보이는 아메리카노는 그 뒤로도 카페메뉴로 일상이 되었고, 종종 휘핑크림이 얹어진 스무디 종류의 아이스커피를 마시기도 했지만, 신기한 건 신메뉴의 달콤한 커피를 마시더라도, 카페모카 만큼은 주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카페모카에 빠졌을 때, 어떤 카페에서 휘핑크림을 얹어주지 않는다면, 이건 카페모카가 아니라며 세상 하찮은 아쉬움이 들곤 했다. 그리고 큰 매력 없이 오랫동안 마주한 아메리카노는 달지도 않고 심지어 썼는데, 나는 거기에 결코 시럽을 넣는 행위는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심지어 지금은 그 아메리카노를 통틀어 커피 자체를 카페인 부작용 때문에 멀리하는 인간이 되었다. 가끔은 카페인의 흥분감이나 역류성식도염재발을 감안하더라도 ‘잠을 깨고 싶고, 일단 마시고 싶다’는 유혹에 자발적으로 넘어가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그 중에 달달함이 당길 때에도 카페모카는 마시지 않는데, 마시지 않기에 종종 스무살 카페모카의 무모하고도 서투른 단맛이 떠오른다.
요즘 달달한 커피가 당길 땐, 눅진한 단 크림과 쓴 커피가 함께 나오는 크림커피를 마시곤 한다. 크림커피의 달달함은 카페모카의 그것과 차이가 있다. 커피의 쓴맛과 크림의 단맛의 조화로 질릴 수 없는 크림커피의 맛이, 카페모카의 차갑고 가벼운 휘핑크림의 달달함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맛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비교적 싸구려커피가 되어버린 듯한 소싯적 카페모카만의 정취를 오늘의 크림커피가 따라 잡을 순 없다.
카페모카의 처음부터 끝까지 무모한 달달함을, 크림커피같은 우아함 없이도 핑킹가위로 쓸어 낸듯한 거친 귀여움이 묻어나는 카페모카의 애틋함을 추억한다. 그 애틋함이 마치 지금의 스마트폰과, 아날로그 시절의 비디오를 떠오르게 한다.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것만 골라 손안에 바로 보는 스마트폰이 편리하면서도, 꼭 밖을 나가서 돈을 내고 두툼한 비디오를 골라와야지 집에서 볼 수 있었던 비디오 영심이나 둘리가 그리운 것 처럼. 훨씬 비싸고,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지만, 스무살에 사랑했던 카페모카는 그 때만 느낄 수 있는, 지금은 먹을 순 있어도 느낄 수는 없는 달달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