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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Jun 11. 2022

나의 간사한 제주 여행기 1(준비기)

 스무살때즘 와보고 처음이니, 강산이 한번 하고도 반은 지나고 오는 제주였다. 내가 먼저 바라고 바라서 온 건 아니고, 5살 아들이 여행이 뭔지는 아는 건지, 키즈 유튜브를 볼 때마다 바다 보고 싶다고, 여행 가고 싶다고 하는 걸 만 1년 이상을 듣고만 있다 이제야 내린 결정이었다. 그것도 코 시국이 정점을 내릴 무렵에야 한번 가볼까..? 하고 생각만 하던 참이었는데,

어느 날은 아침에 아이가 일어나자마자 대뜸  

"바다 가고 싶어."  

그러는 통에 안 되겠다 싶어

"알았어, 엄마 아빠랑 진짜로 바다 가보자." 했다.  


최대한 가까워 보이는 대천이나 안면도 같은 서쪽 바다를 찾기도 잠시,

 "비행기 타고 가는 바다."

라고하는 아이를 보며 웃음 섞기가 차면서도  

단숨에 '제주다' 결정을 내렸다.  

 

여행이 준비부터 시작, 끝까지 설렘과 낭만으로 가득 차길 바라는 건 큰 욕심이었던 걸까.

 

 그동안, 휴가를 비교적 유연하게 쓸 수 있는 남편과 달리, 나는 휴가란 개념 자체가 없는 강사직인데 것도 애매하게 월수금만 일하고 있어서 주말과 월요일을 연이어서 갈 수 있는 날이 별로 없었다. 실은 학원장님이 필요시에는 내 강의를 봐줄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 아이와 내가 연달아 코로나에 걸려버리는 바람에 2주나 신세를 졌던 전적? 이 있어서 더욱 묶인 듯 꼼짝없이 열심히 일하는 중이었다.  


다행히 운이 좋게도 6월 첫 번째 주말은 월요일이 현충일이라 화요일까지 시간이 확보됐다. 코시국도 풀리는 마당에, 연휴가 껴서 붐비는 인파가 예상됐지만, 그냥 누구한테도 싫은 소리 하지 않고 떠날 수 있는 날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벌써 2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아쉬워만 하고, 또는 생각만 하다가 결정하고 예약하는 것에는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비행기와 렌터카 예약이 속전속결로 이어졌다. 비행기를 예약해뒀으니, 좋든 싫든 가는 일만 남은 것을 보고 왠지 허무하기도 했다.


 그 이후로 남편과 나는 제주에 가서 할 일들에 대한 준비로 머리와 입과 손이 분주해졌다. 우리는 코 시국이 아니어도 중장거리 여행은 그다지 많이 가는 편이 아니었던 데다가, 그동안 짧은 여행도 전무하다시피 해서 여행 면역이랄까 싶은 여행 정신? 이 약해져 있던 탓에 최소한 나는 여행하기도 전에 마음이 굉장히 바쁘고 정리가 안 되는 느낌이었다. 무슨 해외에 가는 것도 아니고 그래 봤자 한국인데 부족한 게 있으면 사면되는 거고, 거기서도 해결방안이 많았는데도 그랬다.  


 국제적으로 유류세뿐만 아니라 물가가 오르고 공휴일이 겹쳐서 우리나라 제주에 가는데도 어른 2에 유아 1 비행기 값이 70만 원 정도가 들었다. 렌트에 숙소 비만 쳐도 이미 돈 백이 우스웠다. 아무리 바다 건너 하늘 갈라 가는 제주라 해도, 그냥 딱 떠올렸을 때 아이 하나 있는 세 식구 2박 3일에 백이면 떡을 칠 것 같은 액수였는데 전혀 아니었다. 돈을 생각하면 솔직히 아깝기도 하고, 오랜만에 가는 여행이라 속히 말해 뽕을빼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이상한  아니었다. 그런데 앞서 말했다시피 나는 아이와 가는 여행 면역이 많이 떨어진 상태여서, 이번의 목표이자 목적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아이가 말했던 1. 비행기, 2. 바다 이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갈색빛 서해도 아니고 산 넘고 물 건너가는 동해도 아니고, 자그마치 제주 바단데, 그것만 봐도 만족할 것 같았고, 아이도 충분히 그럴 거였다.  


 내가 예쁜 숙소 찾기에 열을 올리고 있을 무렵 남편은 아이와 어디갈지에 대해 많이 찾고 있는 모양이었는데 자연스럽게, 많이 들기도 했던 돈 얘기가 나왔고, 아쉽단 얘기가 이어지다가 남편의 몹쓸 망언이 나왔다.  


 "솔직히 너 쉬는 날만 아니었으면 돈 이렇게 많이 들진 않았어."  


이어서 차라리 안 일하는 게 날 수도 있겠다는 식의 이야기도 이어졌다. 월수금에 한 타임 강의니 정말 용돈벌이 수준이었지만, 나를 위해서도 양육적 상황에 맞춰서도 만족하고 있는 일이었다. 선을 넘는 발언이라, 나도 한마디 했던 것 같은데, 한참이 지난 지금 글을 쓰면서도 열이 오르는 걸 보니 여느 때처럼 사이다스럽진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나는 언제쯤 사이다 발언 잘하는 당찬 여자가 돼있을까. 간절하다..)  

 

이날 남편의 망언은 내 제주여행이 썩은 마음이 되는 것의 발단이고, 복선이었을까.


 해외급이 되어버린 제주여행의 날짜가 다가오면서 설레기도 하다가, 전날이 되니 믿기지 않기도 하다가, 당일이 왔다. 전날 아침에도 믿기지 않는 순수한 마음에,  


"오빠, 내일 우리 제주 가는 거 실화니?" 했는데,

 

"실화 타령하지 말고 짐이나 챙겨."  

라고 했다.

욕이 절로 나온다.  

이때까지만 해도 웃으며 따져 물을 만큼 여유롭고 인자롭게 대처했다. 제발 편안하게 순조롭게 하고 싶어서 많이 참고, 또 맞춰주려 노력했다. 좋은 마음으로 가고픈 나의 정서를 챙기는 게 가장 솔직한 목적이었지만, 아이를 생각해서도 마땅한 일이었다. 아주 애써서 이런 날을 만들어줬는데, 하필 이렇게나 좋은 날 아빠 엄마가 조금이라도 티격대는 모습은 보여주면 안 됐다.  

 여행 준비의 설렘과 여행지에서의 풍광은 당연한 거였고, 거기에 부모의 평화와 안정된 모습을 선물로 껴넣어 주고 싶은 욕심, 이라기엔 부모로서 너무 마땅한 도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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