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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Jun 25. 2022

5살의 스타일

복된 육아의 길

"엄마, 큰 어린이집 선생님 좋아. "


5살짜리 신비가 자기 전 대뜸 한 말이다. 최근에(벌써 이게 4개월 전) 소규모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큰 어린이집에 한창 적응 중이어서 티는 안 냈지만 은근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있던 때였는데 이 말을 들으니 여간 기쁘고 흥미로운 게 아니었다. 신비가 좋다니 엄마도 좋다고 같이 기뻐하다가도 분명 얼마 전까지 작은 어린이집에 익숙한 듯 이야기했었는데, 대뜸 이유가 궁금해졌다.


"신비 너 저번에는 작은 어린이집 선생님이 신비 보고 싶으실 거라 선생님 좋다고 그랬었는데, 이제 큰 어린이집 선생님도 좋아졌구나? 혹시 선생님이 좋아진 이유가 있어?"


"큰 어린이집 선생님 머리가 길~어."


이 대답을 듣고 얼마나 웃기고 신기하기도 하고 어이도 없던지 잠깐 웃다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물었다.


"그럼 작은 어린이집 선생님은?"


"작은 어린이집 선생님 머리가 이렇게(꼬불거리는 손동작을 하며) 꼬불거려."


눈은 감고 배는 움켜쥐고 입은 크게 소리 내며 웃었다. 이렇게 나는 아이 덕분에 하루에 한 번은 꼭 크게 웃는 복이 있다. 큰 어린이집 선생님이 머리가 길어서 이렇게 좋다고 하는 아이라니. 5살 내 아들 신비는 그렇다. 긴 생머리 선생님을 좋아하는 상남자.  


언제인지도 모르겠는 아주 옛날에, 유치원 아이들이 그렇게 선생님의 긴 머리를 좋아한다는 이야길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선생님이 긴 머리를 포기 못하신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건 7살짜리 유치원 생의 이야기였다. 이 아이는 5살이란 말이다. 만 3살!

만 세 살의 아이가 짧은 파마머리는 별로 안 좋아하고 긴 생머리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웃기기도 하고, 이아이도 어쩌면 대중적인 미의 기준을 따르긴 하겠거니 하는 이상한 아쉬움 같은 것도 들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까지 칼 단발의 장점을 예찬하며 짧은 머리를 유지하고 있는 내 모습이 생각났다. 머리 자르고 왔을 때 신비의 반응이 뜨뜻미지근 하긴 했는데, 생각보다 뜻이 있었던 모양이다. 조금 귀찮아도 다시 긴 머리를 향해 가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잠시만.


하루에 한 번 아니 여러 번, 아이와 이야기하다 보면 기억하고 싶은 말들이나 에피소드가 생기는데, 기록해두거나 몇 번이고 사람들에게 얘기하지 않으면 거의 잊게 된다. 5살 아이의 생각은 자주 기가 막히고, 웃음이 나고, 때론 솔로몬이 따로 없다. 이젠 내 인생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 아이와의 이야기를 자주 써놓아야겠다. 영원히 이아이가 나에게 어떤 생각이든 지금처럼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기를. 그럴 수 있게 나는 늘 아이의 말에 집중하는 어른이고 편안한 엄마가 되기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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