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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Sep 01. 2022

집안일, 그 안에서 나의 기본기를 볼줄이야

육아의 길에서 나를 보다

  요즘 기본의 중요성 새롭게 실감한다.


 내 혼자 생각이긴 하지만, 그동안 어디서나 기본은 됐다고 생각했었는데, 보기 좋게 틀렸을 수도 있겠다. 아니 틀렸다. 그러고는 이내 한심해졌다. 그 전엔 몰랐는데 육아와 가사, 가끔의 내 개인적 생활을 이어가다가 아이가 다섯 살이나 됐을 지금쯤 와서 기본기 제로를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신 전 남편이랑 둘만 있을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유독 요즘 체감하는 건 왜일까. 못하는 건 둘째 치고, 마음가짐 자체부터 글러먹은 느낌이 싫다.

 기본이 안된 일순위는 식사 준비다. 나는 굳이 따지자면 집안일 중에서 부엌일이 제일 싫다. 뭐 해 먹지 고민하는 것부터, 요리하는 것, 상에 놓기, 치우기까지 몽땅 싫다. 아이의 편식이 더해져 식탁 앞에 서는 게 싫은 것이 강화된 것도 맞지만, 생각해보면 결혼 후 아이를 낳기 전에도, 요리는 맛이 없음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자 끼니 해결을 위한 의무에서였지 온전히 그 과정 자체를 즐겨본 적은 없었다.

싫어도 나름 노력하고 있다..


 그거 말고도 정리하기, 청소하기, 빨래하기, 개기, 뭐하나 예쁘고, 정갈한 마음으로 하는 게 없다. 그나마 작년부터는 건조기가 생겨서 편해진 건데도 쌓여가는 마른빨래는 담고 또 담아 바구니가 두 개는 꽉 차서야 겨우 개기 시작한다. 사실 그 개지 않은 빨래 더미에서 수건을 바로 꺼내 쓰기도 한다.
 
 나름 매일같이 최소한으로만 정리, 청소기, 설거지, 빨래, 요리를 유지는 하고는 있는데,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놔둘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싶기도 다. 고백하자면 결혼 전에는 이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살았고, 남편과 둘만의 가족으로 살 때도 나와 달리 타고난 성품 자체가 깔끔하고 정리 좋아하시는 남편 덕분에 기본을 배우고 실천하려고 꽤나 노력했지만 지금처럼의 스트레스는 아니었다.

해야 한다는 의무감은 있었지만, 잘 못하는 데서 오는 죄책감은 전혀 없었으니까.

다시 말해서 내가 글까지 써야겠단 맘이  것은 이 기본적인 가사를 대하는 내 태도와 결과가 일상에 죄책감을 느끼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집안일을 대하는 내 죄책감을 떠올리며 두 가지 면에서 딴생각을 하게 됐다.


 1. 양희은 님의 책 '그러라 그래'를 읽다가.

 하기 싫다 정도의 마음은 늘 있었지만, 그것이 죄책감까진 아니었을 무렵 양희은 님이 쓰신 '그러라 그래'라는 책을 읽다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정확한 구절은 아니지만, 일상에서 식사를 차려내고 남편분과 같이 드실 때가 일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 중 하나라는 부분이었다. 실제로 그 부분을 읽으면서 나까지 마음이 평온해지고, 음식을 하는 것에 의무와 압박감이 아닌 여유와 호들갑스럽지 않은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 좋았다. 나는 매일 쫓기며, 해내기 바쁜 그 일이 즐거운 시간이 될 수 있다니 존경스럽기 전에 충격적이기도 했고 부러웠다. 그리고 난 진짜로 글러먹은 엄마 인 것 같았다.


 
2. 두 번째는 우리 엄마에 대한 생각이다.
 
이런 생각도 들었다. 성인이 되기 전에, 그리고 이후로도 수만 번도 더 많이, 나년은 엄마가 해주는 밥을 너무나도 당연히 (쳐) 먹지 않았는가. 심지어 설거지에 대한 의무는 결혼하고 나서 쨌든 남의 집이었던 시댁에 가서나 느낀 게 처음이었다. 내가 학창 시절 엄마는 나 공부하라고 설거지 한 번을 일부러 시켜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나는 진짜 할 생각이 없었다. 정말 가끔 외식하는 날을 빼고는, 학교 급식을 빼고는 거의 모든 날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었다. 엄마는 엄청 화려한 요리는 안 했지만, 대부분의 음식이 정갈하고 맛있었다. (고된 결혼생활로 혹은 그 이전에 성장환경 때문에도 우리에게 정서적으로 좋은 엄마는 아니었지만) 한 번도 엄마는 밥하기 귀찮다, 싫다, 빨래하기 싫다, 개기 싫다, 귀찮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심지어 엄마는 더 알뜰하게 빨래하고, 삶고, 식기 소독까지 매일 하는 사람이었다.

 그 시절 나의 엄마는 귀찮지만 엄마의 의무를 들어 그냥, 했던 걸까. 아니면 귀찮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가사를 자신의 업으로 삼았던 것일까. 엄마는 자신의 시간을 갈구하지 않았을까. 너무나도 나와 동생을 키우고, 말 그대로 전업으로 가사와 육아를 했던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엄마의 마음이 있긴 했던 걸까. 한 손자의 할머니가 돼서 여전히 우리 집에 자주 오는 엄마는, 지금도 혹여 되어있지 않는 나의 집 설거지나 분리수거 더미를 보면 참지 못하고 치우고 소독까지 해놓으려 한다. 그래서 나는 그 엄마가 움직이지 않게 하려고 엄마가 오는 날은 더욱더 집안일을 마무리해놓는다. 아무래도 엄마는 쉴 줄을 모르는 것지도 모르겠다.

 초반엔 세탁기도 없었고, 인터넷 쇼핑도, 배달앱도 없던, 반면 시어머니까지 있던 엄마의 육아 생활은 나와는 비교도 안되게 힘들었을 거고, 남편의 가사 육아 참여도도 요즘보다 훨씬 더 낮았을 그 시대의 엄마들에게 지금의 내 고민은 말도 안 되는 사치일 것이다. 이건 비단 우리 엄마뿐이 아니었을 거고.
그래서 요즘엔 육아에 고됨을 얘기하는 기사나 글에 달린 댓글 중에는 '예전에 우리 엄마들은 더 힘든데도 더 잘 해냈는데, 배가 불러서 그러는 거다'는 식의 글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굉장히 짜증 나면서도 한편 그 짜증이 일명 팩트 폭행이라 이는 걸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내가 정말 여유가 생기고, 배가 불러서 이런 생각이 드는 걸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고 절대로 엄마처럼 가사를 해내고 싶다는 건 아니다. 적당히는 하되, 자연스럽고 기꺼운 태도를 가진 나이고 싶다는 것이다. 시원한 정답은 모르겠지만 아마 나도 마음을 고쳐먹고 행동할 필요성이 있겠고, 주말부부 중에 있는 나의 남편도 이왕이면 나의 가사며 육아일을 은연중에 당연하게만 여기는 태도를 고쳐서 제발 더 진화된 남성상이 되어준다면 가사를 대하는 내 마음이 기꺼워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 앞서 양희은 님의 '그러라 그래'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을 찾아냈다. 이왕이면 이른 시간 내에 나도 여유 있는 즐거움으로 집에 서있기를 바라본다.

# 결혼하고 변함없이 늘 같은 일상, 즉 장을 봐서 재료를 다듬고 준비해 맛있는 음식을 만들 때, 그리고 남편이 그 음식을 맛있게 먹어줄 때만큼 행복한 일도 없다. 장을 본 후, 몇 가지 반찬을 만들고 남편과 식탁에 앉으면 그렇게나 마음이 편안하고 그제야 사람답게 사는 것 같다. 내 부엌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밥을 해 먹는 일, 제철 채소를 사다가 나물을 무치고, 맑은 국을 끓이고 제철 생선 두어 마리를 맛나게 굽는 일. 그게 무슨 대수냐고 웃을지는 몰라도 내게는 중요하다. 일 바깥의 일상을 소중히 하는 것, 그것이 내 일의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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