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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Sep 08. 2022

낯설고 애틋한 청주 플라타너스 길

청주인이 되어가는 나를 보며

 낯설기만  했던 청주에도 장소만 보면 떠오르는 추억들이 쌓여간다.
경기도민에서 충북 청주인이 된지도 벌써 햇수로 5년이 되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청주와 부천, 청주와 서울, 혹은 인천까지의 거리는 시외터미널 간 거리만 봤을 때 2시간 정도다. 멀다면 멀고 또 그렇게 멀지만은 않은 거린데, 떠날 때는 맘만 먹으면 어렵지는 않게 올 수 있는 거리라고 생각했던 건 보기 좋게 틀렸다. 거의 청주에 오자마자 뱃속에 아이가 생기는 바람에 출산 전까지는 한두 번만 홀로 외출을 했던 것 같고, 출산 후에 오히려 더 자주 가긴 했지만 그것도 일 년에 몇 번 되지 않았다.

 타지에는 내가 자의로 가놓고서, 친구 또는 지인 만남들은 늘 아쉬웠다. 그 아쉬움도 뒤로하고 육아에 잘 매진은 한 건지 모르겠지만 아이가 다섯 살이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만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코로나 사태로 더욱 만남을 멀리했다. 만남을 미루고 미루다 결국 결혼식에도 못 갔던 친한 동생을 이제야 만나러 가기로 했다. 드디어, 본다는 생각 반 조금이라도 빚을 청산하러 가는 느낌 반으로 청주를 떠나는 버스 안은 생각보다 설렜다. 생각보다 라고 쓴 이유는 그동안 홀로 집을 떠나는 것에 대해서 묘한 죄책감 같은 것과, 신체적 피로감에서 오는 부담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떠나는 나도, 남아있는 아이와 남편에게도 건강하고 즐거운 시간이 되길 바라는 건 사치가 아니었는데 마치 대단한 사치를 부리는 기분이었다.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인천방향으로 가는 길은 늘 같았다. 가로수 길을 향하는 길목에는 내가 아직 청주인이 아니었을 때, 그 당시 남자 친구였던 현재 남편을 만나러 혹은 남자 친구의 부모님을 뵈러 가끔 오던 그곳의 풍경과 기분이 남아있었다. 터미널을 빠져나오는 길목엔 큰 모텔급 호텔들이 즐비했다. 그중에 우리가 묵었었던 호텔 반지 간판도 괜히 정스러웠다. 난 이제 주름이 제법 진해지는 삼십 대 중반 아줌마지만, 예상보다 일찍 결혼을 준비하던 28살의 나는 모든 게 설렜고, 기다려졌다. 중거리 연애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함께하는 남자 친구가 있어서 좋았고, 함께하는 것들은 모조리 다 좋았다. 아이가 신생아 시기 때까지도 이 기분이 되게 진했는데, 이제는 가끔 떠오르는 추억이 됐다. 그렇게 우리가 묵었던 반지 호텔도 지나고 아마도 고속도로로 향하는 길목임을 알리는 청주 가로수길에 들어선다. 플라타너스가 나란히 서있는 이 길을 지날 때면 내가 청주를 빠져나가는구나, 혹은 반대로 청주에 왔구나를 실감한다. 어색했던 이 길이 제법 반갑게 느껴지기도 하고, 익숙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걸 보니 새삼 난 이제 청주인이 다 되었구나를 느낀다.

 떠나는 길이 온전히 설레고 칠렐레 팔렐레 시간 제약 없이 훌훌 놀다 오면 좋으련만, 설렘은 늘 그 가로수길 까지다. 지금의 나는 만남 전에 오는 차편을 미리 떠올려놓고 나 대신 아이를 봐주고 있는 누군가들에게 부담을 느껴가며 발걸음에 늘 종종을 단다. 엄마니까 당연한 일이긴 한데 뭔가 잠시 떠나는 것에도 이상한 죄책감을 느끼고 그렇다고 제대로 놀지도 못하는 것 같고 좀 별로다. 자주 놀러 가는 것도 아닌데, 이 순간만큼은 편하게 가고 싶은데, 아이를 봐주는 사람들은 걱정이 되고, 놀러 가는 나를 보는 그들의 시선도 조금은 신경이 쓰이고 그렇다. 몇 시간 놀러 갔다 오는 나를 내가 원하는 모두가 완전히는 편안한 시선으로 보아주지 않는 것이 조금은 원망도 들면서.

 그럴 수 있지 싶다가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엄마인 나라니. 이내 아직도 철이 들지 않은 것인가 싶기도 하다.

 막상 만남의 주인공을 만나면 그 시간만큼은 거의 그 사람과의 대화와 눈 맞춤에 집중이 된다. 그 대화중에 아예 시계를 보기가 싫지만, 아주 잠깐씩은 볼 수밖에 없다. 전화가 아니고서야 이래 저래 와있는 문자메시지는 당연히 무시다. 11시에 인천에 왔는데 늦지 않게, 아니 조금 일찍 출발한다고 잡은 차 시간이 2시 반 경이었다. 그래도 천안에 들러서 청주 터미널을 거쳐 집안까지 들어오니 다섯 시가 넘었다. 빨리 온다고 왔으나 온 시간이 결국 저녁 즈음이었다. 이 정도 서두름이라면 네시 전에는 도착할 줄 알았는데, 나 홀로에서의 공간과 시간과 사람은 늘 빤히 바라보기도 전에 지나가버린다. 빨리 출발했는데 늦게 온 느낌. 근데 그것도 빠듯해서 청주 밖 인천이니 천안이니에 있는 큰 쇼핑몰에 떠돌 시간도 없었다. 뭘 꼭 사지 않아도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돌아보는 여유가 좋은데, 웬일인지 나 홀로인 시간엔 그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고향에 있는 지인과의 만남 자체가 힘들었는데, 그것만으로도 큰 외출이고 시간이거늘 욕심을 부리는 걸까. 간사한 나머지 그런 여유를 또 들먹이고 있나 보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수도권에 있다 한들, 그리운 사람들을 그렇게 자주 보진 못할 것이다. 근데 괜히 멀어서 더 아쉽고, 가끔은 다음에 보자라는 말을 시답잖게 던지기만 해서 죄인이 된 기분도 자주 든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일이 많아져서 빗말로도 언제 보자는 말을 선뜻하기도 망설여진다.
 그런데 확실히 나이가 들고 아이를 키우고, 멀리까지 있으니 개인적인 만남이 어려워진 건 사실인 듯하다. 그리고 많은 또래들이 결혼을 해서 각자의 가정을 꾸리고 있기도 하고.
 
아쉽다는 생각을 가장 화두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버스 안 긴 시간 동안 잠도 못 들고 생각만 하다가 청주 진입을 알려주는 플라타너스 가로수길이 다시 나를 맞이해줄 때 아쉬움보다는 안도감에 가까운 마음이 든다. 청주의 플라타너스 길은 제법 유명한 것 같던데, 버스를 타고 오고 갈 때마다 여전히 타지의 것 같은 낯설기도 하고 이제는 애틋하기도 하고 이상한 좋은 기분을 전해다 준다.

청주터미널을 나서면 늘 보이는 플라타너스 길, 인용한 사진이지만 이정도 느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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