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기만 했던 청주에도 장소만 보면 떠오르는 추억들이 쌓여간다.
경기도민에서 충북 청주인이 된지도 벌써 햇수로 5년이 되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청주와 부천, 청주와 서울, 혹은 인천까지의 거리는 시외터미널 간 거리만 봤을 때 2시간 정도다. 멀다면 멀고 또 그렇게 멀지만은 않은 거린데, 떠날 때는 맘만 먹으면 어렵지는 않게 올 수 있는 거리라고 생각했던 건 보기 좋게 틀렸다. 거의 청주에 오자마자 뱃속에 아이가 생기는 바람에 출산 전까지는 한두 번만 홀로 외출을 했던 것 같고, 출산 후에 오히려 더 자주 가긴 했지만 그것도 일 년에 몇 번 되지 않았다.
타지에는 내가 자의로 가놓고서, 친구 또는 지인 만남들은 늘 아쉬웠다. 그 아쉬움도 뒤로하고 육아에 잘 매진은 한 건지 모르겠지만 아이가 다섯 살이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만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코로나 사태로 더욱 만남을 멀리했다. 만남을 미루고 미루다 결국 결혼식에도 못 갔던 친한 동생을 이제야 만나러 가기로 했다. 드디어, 본다는 생각 반 조금이라도 빚을 청산하러 가는 느낌 반으로 청주를 떠나는 버스 안은 생각보다 설렜다. 생각보다 라고 쓴 이유는 그동안 홀로 집을 떠나는 것에 대해서 묘한 죄책감 같은 것과, 신체적 피로감에서 오는 부담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떠나는 나도, 남아있는 아이와 남편에게도 건강하고 즐거운 시간이 되길 바라는 건 사치가 아니었는데 마치 대단한 사치를 부리는 기분이었다.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인천방향으로 가는 길은 늘 같았다. 가로수 길을 향하는 길목에는 내가 아직 청주인이 아니었을 때, 그 당시 남자 친구였던 현재 남편을 만나러 혹은 남자 친구의 부모님을 뵈러 가끔 오던 그곳의 풍경과 기분이 남아있었다. 터미널을 빠져나오는 길목엔 큰 모텔급 호텔들이 즐비했다. 그중에 우리가 묵었었던 호텔 반지 간판도 괜히 정스러웠다. 난 이제 주름이 제법 진해지는 삼십 대 중반 아줌마지만, 예상보다 일찍 결혼을 준비하던 28살의 나는 모든 게 설렜고, 기다려졌다. 중거리 연애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함께하는 남자 친구가 있어서 좋았고, 함께하는 것들은 모조리 다 좋았다. 아이가 신생아 시기 때까지도 이 기분이 되게 진했는데, 이제는 가끔 떠오르는 추억이 됐다. 그렇게 우리가 묵었던 반지 호텔도 지나고 아마도 고속도로로 향하는 길목임을 알리는 청주 가로수길에 들어선다. 플라타너스가 나란히 서있는 이 길을 지날 때면 내가 청주를 빠져나가는구나, 혹은 반대로 청주에 왔구나를 실감한다. 어색했던 이 길이 제법 반갑게 느껴지기도 하고, 익숙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걸 보니 새삼 난 이제 청주인이 다 되었구나를 느낀다.
떠나는 길이 온전히 설레고 칠렐레 팔렐레 시간 제약 없이 훌훌 놀다 오면 좋으련만, 설렘은 늘 그 가로수길 까지다. 지금의 나는 만남 전에 오는 차편을 미리 떠올려놓고 나 대신 아이를 봐주고 있는 누군가들에게 부담을 느껴가며 발걸음에 늘 종종을 단다. 엄마니까 당연한 일이긴 한데 뭔가 잠시 떠나는 것에도 이상한 죄책감을 느끼고 그렇다고 제대로 놀지도 못하는 것 같고 좀 별로다. 자주 놀러 가는 것도 아닌데, 이 순간만큼은 편하게 가고 싶은데, 아이를 봐주는 사람들은 걱정이 되고, 놀러 가는 나를 보는 그들의 시선도 조금은 신경이 쓰이고 그렇다. 몇 시간 놀러 갔다 오는 나를 내가 원하는 모두가 완전히는 편안한 시선으로 보아주지 않는 것이 조금은 원망도 들면서.
그럴 수 있지 싶다가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엄마인 나라니. 이내 아직도 철이 들지 않은 것인가 싶기도 하다.
막상 만남의 주인공을 만나면 그 시간만큼은 거의 그 사람과의 대화와 눈 맞춤에 집중이 된다. 그 대화중에 아예 시계를 보기가 싫지만, 아주 잠깐씩은 볼 수밖에 없다. 전화가 아니고서야 이래 저래 와있는 문자메시지는 당연히 무시다. 11시에 인천에 왔는데 늦지 않게, 아니 조금 일찍 출발한다고 잡은 차 시간이 2시 반 경이었다. 그래도 천안에 들러서 청주 터미널을 거쳐 집안까지 들어오니 다섯 시가 넘었다. 빨리 온다고 왔으나 온 시간이 결국 저녁 즈음이었다. 이 정도 서두름이라면 네시 전에는 도착할 줄 알았는데, 나 홀로에서의 공간과 시간과 사람은 늘 빤히 바라보기도 전에 지나가버린다. 빨리 출발했는데 늦게 온 느낌. 근데 그것도 빠듯해서 청주 밖 인천이니 천안이니에 있는 큰 쇼핑몰에 떠돌 시간도 없었다. 뭘 꼭 사지 않아도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돌아보는 여유가 좋은데, 웬일인지 나 홀로인 시간엔 그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고향에 있는 지인과의 만남 자체가 힘들었는데, 그것만으로도 큰 외출이고 시간이거늘 욕심을 부리는 걸까. 간사한 나머지 그런 여유를 또 들먹이고 있나 보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수도권에 있다 한들, 그리운 사람들을 그렇게 자주 보진 못할 것이다. 근데 괜히 멀어서 더 아쉽고, 가끔은 다음에 보자라는 말을 시답잖게 던지기만 해서 죄인이 된 기분도 자주 든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일이 많아져서 빗말로도 언제 보자는 말을 선뜻하기도 망설여진다.
그런데 확실히 나이가 들고 아이를 키우고, 멀리까지 있으니 개인적인 만남이 어려워진 건 사실인 듯하다. 그리고 많은 또래들이 결혼을 해서 각자의 가정을 꾸리고 있기도 하고.
아쉽다는 생각을 가장 화두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버스 안 긴 시간 동안 잠도 못 들고 생각만 하다가 청주 진입을 알려주는 플라타너스 가로수길이 다시 나를 맞이해줄 때 아쉬움보다는 안도감에 가까운 마음이 든다. 청주의 플라타너스 길은 제법 유명한 것 같던데, 버스를 타고 오고 갈 때마다 여전히 타지의 것 같은 낯설기도 하고 이제는 애틋하기도 하고 이상한 좋은 기분을 전해다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