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해연 Oct 28. 2022

가을일기

34살엄마나의일상

  나의 소소한 취미, 취미라고 하기에도 민망하게 겨우 해가던 글쓰기를 오랫동안 못했다.

여름이 가을이 돼갈 무렵 아이의 비염이 시작됐는데, 비염으로만 끝나길 바랐던 그것은 기침감기로 폭싹 옮아갔고 꼬박 2주를 집에 있었다. 그래도 꽤나 의연하게 이 시기를 지냈다. 여전히 아이의 거친 숨소리 하나에 벌떡벌떡 깨면서 잠을 설치긴 했지만, 마음이 그전에 아팠을 때처럼 혼란스럽지는 않았다. 그래도 아예 혼란스럽지 않았던 건 아니고, 내 딴엔 그 정도가 조금 나졌다는 것이다. 아이에게도, '감기가 걸려서 많이 힘들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엄마도 아이 때는 감기에 자주 걸렸었다고, 잘 버텨내 가자'라고 응원하고 격려하는 것도 해봤다. 일주일이면 거뜬히 나을 줄 알았는데 일주일이 지날 무렵 기침은 고점이 지나질 않아서 걱정이 될 무렵 잦아들더니 약 2주가 되니 말끔히 나았다. 아픈 게 지나가서 다행이고, 건강이 찾아와서 감사했다. 그리고 내내 자유시간이라곤 없었던 나는 괜찮다 괜찮다 생각했는데, 평소에 스스로에게 짜증이 많아지고, 가끔 생각 회전이 잘 안 되는 걸 보니 은근 스트레스가 쌓였던 것 같다. 이런 짜증이 생겨도, 평범한 일상이 돌아온 것이려니, 감사하다쳤다.

 

꽃도 좋지만 낙엽지는 가을도 좋다. 익숙한 풍경도 이쁘다.


아이가 아프기 직전 주에는 운전연수를 시작했다. 원래는 아이가 6살이 되는 내년에 시작하려던 계획이었는데, 그 계획을 올 가을로 바꿨다. 어차피 할 거 그냥 하잔 생각도 있었고, 내 기준에 청주는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을 하는 게 많이 어려운데 이골이 났던 것도 있었고(심지어 택시 타는 것도 어려울 때가 많았고), 내가 혼자 있을 때 혹시 차가 있는 다른 사람에게 운행을 부탁해야 하는 것도 횟수는 적었지만 상대에 따라 조금이라도 미안해해야 하고, 더 많이 고마워해야 하고, 때론 혼자 자존심도 상하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이 모든 것들이 더 이상 하기 싫었다. 혼자있으면 그나마도 괜찮을 것 같은데 아이가 있으니 여러시선에서 은근한 압박을 느낀 것도 무시를 못하겠었다.    


일단은 운전연수를 시작하고, 올해 안에 차를 사야지 했는데, 이번 여름에 홍수속보가 뜨자 침수차가 걱정돼서 일찍 차를 알아보게 됐고, 결국엔 적당히 때에 맞춰 차를 샀다. (침수차가 걱정됐으면 여름이 지나가기 전에 샀어야 했다.) 비록 중고차 가격은 역대급으로 비쌀 때 아쉽기도 했지만, 그걸 따진다면 언제고 찻값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릴 수도, 그렇다고 출고가 아주 늦다는 새 차를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내 기준에 차를 사는 일은 큰돈이 드는 일이기도 했고, 그마저도 지식이나 정보가 별로 없었기에 이럴 때는 (귀찮은 소리가 넘쳐나긴 해도) 꼼꼼한 남편이 일을 많이 나서서 해주었다. 새 차는 이 정도는 아닐 것 같은데, 중고차를 사는 일은 생각보다 굉장히 복잡해 보였다. 옵션이 딸린 페이지는 보기엔 다 한글이지만, 다시 읽어보면 토종 한글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외래어가 전부였다. 솔직히 하나도 몰랐던 것 같은데, 다 모르는 나 자신이 짜증 나니까 일일이 찾아보면서 옵션명이 의미하는 부분이 뭔지 익혔다. 다행히 계속 보다 보니까 조금씩 감이 잡혔다. 신혼 때 처음으로 집을 알아볼 때랑 흡사했다. 과연 이 집을 보면서 뭘 봐야 하나 어떤 집을 사야 잘 사는 건가 집 보는 일은 세상 어른일만 같았는데, 막상 닥치니 보게 되고, 자꾸 보다 보니 침착해지기도 하고, 뭘 봐야 하는지가 눈에 보이고 이어서 집의 전체적인 것도 알 수 있게 되었었다. 그런 마음으로 차를 골라 봤었지만, 차는 내가 느끼기에 집 고르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복잡했다. 마치 중학교 때 기술가정 과목을 공부할 때 자전거나 자동차 부품 같은 단원을 그냥 닥치고 통째로 외워버려야 하는 느낌이었다. 관심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고, 재미도 없는데 해야 는 하는 것들. 운전도, 차도 어쩌면 나에게 그런 느낌이었나 보다.  

초보운전 딱지 붙이고, 더 크게 운전연습 붙이고 안전운행한다.



 여기까지, 이 글을 쓴지도 한 달은 전인 것 같은데, 기억하고픈 마음에 이어 가본다. 가을이 접어들었구나.. 싶던 선선한 날씨는 고사이 쌀쌀에 가까워졌고, 단풍이 슬슬 드네 했던 게 무섭게 낙엽이 더 많아진 거리가 되었다. 여름은 진즉 지나갔고, 밤에는 겨울에 가까운 느낌으로 가을이 무르익었고, 엄청나게 긴장하는 나날의 연속이었던 운전연수는 일단 끝났고, 나는 혼자 첫 운전이라는 엄청난 벽을 넘어섰다. 그리고 날씨말고 사람들이 나와 너, 우리 사이에 필요 이상의 많은 일들 있었다. 나에게도, 너에게도, 너를 넘어선 너에게도 많은 일들이. 그래서 최근에 꿈자리가 뒤숭숭했다. 쓸데없는 생각을 했는지, 꿈에서 아이처럼 울다가 깨기도 했고, 정말 오랜만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의 시어머니란 이름으로) 나오기까지 했다.  

평범한 일상은 늘 소중하다.


 자만이 하늘을 찌르기도 했고, 무너져서 겸허해 지려고도했다가, 다시 평온을 찾았다가, 화도 났다가, 가슴을 졸이기도 했다가, 허무도 했다가, 그래도 잘됐다고 싶었다가, 그 와중에 운전 때문에 내 심장인지 간인지는 하루에 두어 번은 꼭 쪼그라들었다가 펴졌다가를 반복했다.


잘 살고 있는 걸까. 그런대로 잘하고 있는 걸 수도, 또는 못하고 있는 걸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늘 멀리 보는 시야를 잡아가며 살았으면 좋겠다. 살아있는 우리들은 한 치 앞도 잘 모르겠는 삶에서 그래도 자주 즐거운 것들이 우릴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고, 하늘로 간 영혼들은 평안과 따뜻함이 곁에 있기를. 그리고 그것을 가슴에 품고 가는 사람들에게도 더 큰 단단함과 행복으로 다가오는 눈물이 있기를 기도했다.

작가의 이전글 기도에 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