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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Feb 14. 2023

라면의 철학

BGM은 지드레곤의 삐딱하게


라면은 한밤중에 땡기는 게 최고다. 유혹을 무시하고 먹기로 했다면, 누구든 둘이 먹어보자. 둘이 한 봉지면 감질나지만 그래서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떡볶이는 누구보다도 오래된 친구랑 먹는 게 좋은데, 그중에서도 중고딩때 친구랑 먹어야지 풍미가 돋는다. 밀크티는 부천에서 동인천까지 급행 타고 간 차이나타운에서 동생이 시킨 것을 한입만 놓고 쭈압쭈압 몇 번 더 뺏어 먹는 게 제일 맛있다. 몽쉘은 인생 역대급으로 살이 쪄서 굴러다니던 고3 때 매점으로 달려가 상온 매대 아닌 냉장고 속 아이스크림 옆에서 꺼내 몇백 원 주고 사 먹는 게 레전드였다.(그때 매점 사장님은 냉장고에 얼려먹는 몽쉘의 과학을 왜 하필 여고 매점에서 실험하신 걸까. 어마 무시한 사업 수완이었다.) 통닭은 아빠가 퇴근하고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 길거리에서 사 온, 마치 시리얼 봉지 같은 무분별 광고가 프린트돼있던 불투명 비닐 안에 담긴 원조 겉바속촉 전기구이가 진리다.

왜 우리동넨 없는거냐. 있어도 그때 아빠가 사다준 그맛이 아닐거다.


때와, 장소, 사람에 따라서 달라지는 맛들이 있다. 여전히 있기도 하고, 있었던 것도 있다.



코로나가 대략 한반도 전역을 휩쓸고 간 뒤 집 근처 여고에서, 운동회의 개막을 알리는 GD의 삐딱하게는 익숙해서 뻔한 멜로디. 그것이 그토록 화려하게 들릴 수가 없다. 너무 화려한 나머지 근처 아파트에서 창문 열고 재미없게 청소나하고 있던 30대 아줌마 마음도 설레고 북적거리게 한다.

GD 삐딱하게 뮤직비디오 일부, 삐딱하게는 그날 이후 진짜 삐딱해지고 싶을때 자주 듣는 곡이 됐다.

 자전거 탄 풍경의 너에게 난, 나에게 넌 은 역시 재미없는 청소나 할 때 좀이라도 즐거우려고 틀어놓은 107.7 아침 라디오에서 흘러나올 때 제일 감미롭다. 아니면 조용한 버스나 택시 안 라디오에서 흘러나올 때도 그렇다. 버스커 버스커의 첫사랑은 꽃이 채 피기 전인 봄 거리에서 들으면 같은 가수의 벚꽃엔딩보다 더 설렌다. 지오디의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 그리고 거짓말은 혼자 운전하면서 청승맞는데 신나게 자동차 스피커로, 오타쿠처럼 두 곡만 무한 반복으로 질릴 때까지 들어줘야 제맛이다.


문제는 방금 들은 이 노래들이 좋다고 집에서 휴대폰이나, 밖에서 이어폰으로 들면 그때 그 설렘이 없다는것이다. 다른 맥락이지만, 가수 박재범보다 댄서 허니제이가 좋은 나는 그의 노래 몸매를 들으면 누구보다 핫한 그보다 더 핫하게 노래를 춤춰주는 그녀가 생각나서 좋다. 맛도 맛이지만 노래도 울려 퍼지는 공간, 들려주는 곳, 노래를 통해 떠오르는 사람에 따라 원곡의 멋이 달라진다.



음식의 맛도, 노래의 멜로디도 동일한데 때에 따라 달라지는 이 미친 감각들이 일상에 짧지만 강력한 흥과, 찰나의 행복이 돼준다. 특히 먹는 얘기는 서로에게 엄청나게나 재밌어 보이는 추억거리가 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동인천 역 밀크티 얘기는 잊을만하면 꺼내는데 낄낄거리는 나와 다르게 동생이 굉장히 싫어한다. 나는 그 싫어하고 있는 동생을 보는 게 재밌다. 아이를 낳고서 떡볶이는 편히 먹기가 어려운 음식이 됐다. 몇 주 동안 청년다방 오징어튀김 떡볶이를 노래만 하다, 아쉬운 대로 친구 대신 남편과 아들을 데리고 갔다. 한 명은 내가 먹으니까 먹고, 한 명은 먹지도 못해서 다른 음식을 먹어야 했다. 그 두 남자를 두고 떡볶이는 친구랑 먹는 게 왠지 더 맛있다고 얘기했다. 근데 좀 미안하니까 그래도 나를 위해 떡볶이를 같이 먹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떡볶이는 왠지 어린 여자애들이나 좋아할 것 같은데 생각보다 연령대라 다양하다며 청년다방 매장을 보며 떠들었다.


최애 음식이 아니지만, 내가 먹으니까 같이 먹어주는 고마운 큰 남자 한 명은,

근데 자세히 보면 테이블마다 여자가 한 명씩은 꼭 껴있다며 팩트를 때려 줬다.

도대체 웃긴 구석이 하나도 없는데 웃음이 나는 나는 웃어주기 싫지만 웃으며,

그러네 했다.



왜 같은 것들이 다를 수 있는건지 모르겠지만, 그때의 맛과 멋과, 이야기와 사람, 놀리기와 웃기가 그렇게 좋다,기보다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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