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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Feb 13. 2023

4000원의 교훈

편하게 살자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뭐.
실수할 수도 있는 거야.


아들, 남편, 친구, 지인에게고 누구에게나 자주 쓰는 말이었다.
나는 타인의 실수에 관대다. 관대하다고 직접 말하는 건 착각이자 오만일 수 있으니 그런 편이라고 해야겠다. 일부러 힘쓰는 것도 있겠지만, 실제로 타인의 소한 실수나 일상의 변수에 있어 열받기도 흔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당연히 나한테도 관대한 줄 알았다.

완전히 틀렸다.

단돈 4000원에, 그 알아버렸다.

문화센터에서 영어회화수업을 듣고 나오는 참이었다. 분명히 주차장으로 내려오면서, 차에 앱으로 주차정산 해야지, 했다. 그런데 정말 해야지만 했다. 아직 초보 운전자인 나는 지하주차장도 꼬불거리고 좁은 공간자체, 정산 등의 이유로 두려워하는 곳이었는데, 고사이 극복을 넘어 편안해지고 방관까지 간 모양이었다. 그전 유료 주차장에 들어가면, 사전 정산을 하고 무료가 됐는지 확인 또 확인을 하고도, 나갈 때는 손 닿는 곳에 신용카드까지 준비해 뒀었다. 철저한 확인을 했던 이유는 주차료를 아끼려는 것보다도, 혹시 주차료를 내야 되는 순간이 생기면 팔이 닿지 않는 다던가, 카드가 안된다던가 해서 뒤차가 기다리고, 있는 힘껏 당황하고 허둥대는 나를 방지하기 위함이 컸다.


 어쨌든 그랬던 내가 주차 정산은 생각만 하고, 하지도 않고, 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확인할 것도 없고, 카드는 생각도 안 하고(그래봤자 휴대폰 뒤에 껴있지만) 꼬부랑 지하도를 무작정 빠져나온 것이다. 지상으로 나왔을 때 주차요원과,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출입차단기와, 정산기계를 보고 나서야 알았다. 앱 정산은 마음먹으면 그때도 빨리 할 수 있었지만, 이미 모니터에는 내 차번호가 떠있었고, 설상가상으로 뒤에는 다른 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내 돈 아끼겠다고 차 안에서 앱을 만지작 거릴 여유 따위는 없었다. 한다고 해도 이미 기계는 4,000을 받도록 처리된 후일 가능성이 컸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정산 기계에 너무 멀지 않게 차를 세웠다. 그래서 무려 무료 정산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쓰지 못하고, 머리가 있어도 쓰질 못하고, 손이 있어도 쓰질 못하고, 그 손은 휴대폰 뒤에 껴있던 카드를 재빨리 빼내 기계에 쑤셔 넣는 데에만 썼다. 이 찰나에도 이따위 간단한 과정조차 꼬일까 봐 걱정했고, 휴대폰 뒤에 늘 있던 카드도 하필 떨궈놓고 온 건 아닐까 걱정했다. 그것이 무사히 해결된 뒤에도, 차문을 내리고 힘겹게 카드 정산을 하려 삐져나온 내 팔을 보고 백화점에 와서도 주차 정산을 하고 가는 바보 같은 사람이 있네.라고 뒤차주가 생각할지도 모른다고 혼자 부끄러워했다.
 아 그리고, 이미 3시간 무료주차권이 있다고, 식품코너 결제를 하고서 주차 정산을 묻는 점원에게 안 해주셔도 된다는 말도 안 되는 여유를 부리기도 했단 말이다.


 실수로 내게 된 주차료 4000원을 두고, 3분도 채 되지 않을 짧은 시간에 별별 생각을 했고, 죄책감에 이어, 자책을 했다. 그러다 이성으로는 납득이 되는 가벼운 실수상황임을 부추기며 애써 마음을 추슬렀다. 아니 그동안 그렇게 아들에게, 남편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괜찮아- 를 연발했는데. 정작 스스로에게는 고작 4000원에 이토록 질책하는 모습이라니. 정작 나는 스스로에게는 관대하기는커녕 작은 일에도 채찍질이 쉬운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 아깝네. 이런 게 이번이 처음 아니야? 이번에 이렇게 실수해봤으니 다음엔 이제 까먹지 않고 잘할 계기가 될 거야. 반대로 별 이유를 들어가며 그 사람을 위로하거나 안정시키기 바빴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긴장하다가, 편해질 무렵 주차정산을 까먹는 실수를 해봤으니, 다음부턴 다시 사전 준비를 기억하고 철저히 하는 계기가 될 터였다. 4000원도 큰돈이라면 큰 돈일 수 있지만 그래도 4만 원, 4백만 원도 아니지 않은가. 찰나에 수많은 생각을 하고 자책을 하기에는 작은 실수였다.

나에게 이토록이나 야박한 나는 낯설기도 하고, 분명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다. 4000원에 이런 타령 타령을 하는 내가 또 이렇게나 찌질할 수가 없어서 아무한테도 얘기 안 했는데, 결국 아무나 읽을 수 있는 곳에 글을 쓰고 있다.  덕분인지 잠시나마 잘못된 생각을 거울모드로 볼 수 있었다. 다음엔 최소한 오늘보다는 덜 찌질할 자신이 생겼다. 그리고 각종 주차장에서 다시 정신을 챙기고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주차차단기


도대체 어떻게 글의 결말을 내려야 될지 모르겠고만 있었는데, 문득 누가 한 말이 생각났다.

 야,
 편하게 좀 살자 쫌

오늘처럼 까진 아니지만 심심치 않게 쓸데없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옭아매는 나를 두고, 정작 쓸데없는 생각은 전혀 안 하는 친구 T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왜 저래.

편하게 좀 살자 좀.

어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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