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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Feb 21. 2023

개구리할아버지

나의 아빠


 지금은 신이 됐지만 한때는 사람이었던 한 성인은 신을 섬기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것은 거짓말쟁이라며 자기 형제를 사랑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죽기 전까지 사랑을 말했다.

진리의 언어는 가끔 나를,  그쉽게 살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이게 한다.


하필 그 말을 읽었을 때 바로 내가 형제를 미워하며 괴로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빠는 자신의 딸이 낳은 유일한 손자가 세상에 나온 지 만 4년도 넘은 때 그 아이를 처음으로 보러 왔다. 코로나 탓도, 아빠와 같이 사는 아줌마한테 내가 오해를 산 탓도, 그 밖에 많은 탓들이 있었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나보다 나은 남편이 애기 보여드릴 겸 우리가 가겠다고도 몇 번이나 했는데 아빠는 괜찮다고만 했다. 그런 아빠를 미워하고 부끄러워하기도 질려서 포기하고 진짜로다가 아무렇지 않게 안부나 물으면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정말 보는 모양이었다. 남동생이랑 둘이 아침부터 경기도 시흥에서 충북 청주 우리 집까지 오는 일정이었다.


 4년 만에 보는 아빠는 얼마나 더 늙어있을까, 정수리 머리카락은 얼마나 더 빠져있을까. 나의 아빠를 본다는 데도, 딸은 슬쩍 두려워했다. 요즘 벨이라곤 가끔 음식배달이 왔을 때나 울릴 때가 다여서, 진짜로 집 안에 들어오는 사람이 손님인 경우에는 마음이 분주했다.


분주함도, 두려움도 잠시. 벨 울렸다. 둘은, 선물용 두루마리와 샤인머스캣 한 상자를 들고 왔다. 저 익숙한 포도상자, 우리 동네 진입구간 작은 마트에서 산 게 분명했다. 아닐 줄은 알았지만, 막상 손자를 위한 선물은 없는 걸 보고 진심으로 실망하지도 않았다. 아빠는 한쪽 발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깁스까지 했는데 여기까지 온다고 한 거라니 잠깐 미안해졌다.



 한국나이로 6살이 다 돼 가는 아이는 말로만 듣던 개구리할아버지 (내가 어렸을 때 아빠와 겪었던 개구리에피소드를 얘기해 준 후 아빠는 개구리할아버지가 되었다.) 등장에 쑥스러워하면서도 명백하게 좋아하고 있었다. 그 어린아이 앞에서 나는, 쨌든 우리 집까지 와주었으니 고마워해야 하는데 하나도 그렇지가 않고 분명 이곳은 내 집인데 어쩐지 불편해졌다. 이 정도로 아빠가 센스가 없진 않았던 것 같은데, 아빠는 아이를 귀여워는 하지만 친구 대하듯 했다. 시어머니, 시아버지, 엄마가 대하는 것과는 달랐단 얘기다. 그 와중에 남편은 내가 요즘 중고차 첫차로 잘 사서 요즘 운전하고 다닌다고 어쩐지 치켜세워주며 사위는 사위인지 좋은 얘기를 꺼냈다. 아빠는,

-그 차를 그 돈 주고 샀냐.

고 했다. 제발.

빠 제발.

내가 남편이었으면 정말 싫었을 건데, 사위는 그냥 겸연쩍게 웃었다. 다행히 쓸데없는 생각이 깊지 않은 남편은 그 웃는 게 다인 것 같았다. (다 일거라고 착각하는 게 부디 아니길) 남편에게 고맙기 전에 먼저 미안하고 다시 고마웠고 이내 짜증 나고 부끄러웠다. 왜 내 원가족은 나에서까지가 아니라 이제는 배우자, 자식 라인 앞에서도 나를 부끄럽게 하는 걸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제발 나에게서만 끝내줬으면.


 밖에서 밥을 먹고, 우리 집에 잠깐 들렀다 간다고 했는데, 막상 밥을 먹고 오니 졸릴까 봐 집에 들르지 않고 그냥 간다고 했다. 그 사이 미움과 수치가 오를 때까지 올라있는 나는 악까지 바친 모양이었다. 하는 생각이라곤 차에 올라타기 전에 아이에게 용돈 한 장은 주겠지였다. 오가 아니라면 만원 한 장이라도 주겠지. 뭔가를 바라고 있는 이 마음이 못난 줄 알면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갈게.

차에 타는 할아버지와 삼촌. 설마.

아니 역시 나인가. 뒤가 짧았다.

동생도 그랬다. 아빠가 아니면, 자기라도 미리 작은 로봇 하나라도 좀 사 오면 안 되나. 너무 내 중심적으로만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그걸 알면서도  답답해했다.


 그렇게 오전이 번갯불에 콩구워 먹듯, 오후 같은 오전이 지나갔다. 별로 한 게 없는데 그렇게 피곤할 수가 없었다. 아빠차가 떠나자마자 남편에게 대뜸, 아니 어떻게 손자 용돈 한 장을 안 주고 가냐- 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고, 하지 않았다. 남편한텐 부끄러워서 할 수 없었고, 듣는 귀와 이젠 생각까지 있는 아들한테는 이런 말 자체가 어른으로서 나쁜 거니까 할 수 없었다.


아쉬운 대로 다음 날 친구 티에게 그동안의 얘길 하며 말했다.

-이런 생각 내가 못된 거냐. 못났지. 그렇지.

우린 그냥, 한숨 쉬고 웃었다.



 얼마 한테 전화가 왔다. 지금 아저씨(친구 아버지)는 발목수술을 하고 병원에 계셨는데, 고모가족(고모네 딸인 선미언니와 친구가 친하다)이 병문안을 오신 모양이었다. 아저씨가 전화해선 대뜸,

- 야, 선미네 어렵냐?

했다고 그랬다. 뜬금포로 뭔 소리냐 했는데, 자기 입원해 있는데 딸랑 인터넷가 8,900원짜리 두유 한 박스 들고 왔다고. 그러면 안 되지- 라며 아빠가 투덜거렸다는 거였다. 쎄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친구가 이내

 -그 말 듣는데 너 생각났잖아. 호호.

했다. 이상하게 진 느낌이었다. 우리 둘 다 참 정리는 안되는데 묘한 이 하찮은 마음들에 또 대충 웃고 때웠다.



다시 그날,

아빠와 동생이 떠난 날 밤. 난데없이 목이 메었다. 자려고 불을 다 끄고 아이과 이불에 누웠는데 그 아이가 감았던 눈을 뜨고 그랬다.

- 엄마 개구리 할아버지 발 그거- 깁스 있잖아,

    다친 거 괜찮대?

그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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