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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May 06. 2023

엄마된 후로의 첫 퇴사기 2


  일하던 학원은 소규모 영어학원으로써 내가 벌써 햇수로만 5년 전쯤 청주에 와서 처음으로 (풀타임으로) 일했던 곳이자, 아이를 낳고 나서는 파트타임으로 2년 이상을 일한 곳이다. 절대적으로 일한 시간이 오랜 건 아니지만, 큰 사건사고 없이 꾸준히 발걸음을 유지했으므로 내 딴엔 처음으로 가늘고 길게 꾸준함을 유지한 일터였다.  코로나가 터지면서 학원에도 타격이 컸던 모양이었다. 다시 간 학원엔 어린 초등학생들로 늘 바쁘고 시끄러웠던 이른 오후의 풍경은 없어졌지만, 점차 아이들이 늘어 초등생들만이 주는 특유의 시끌벅적함이 돌아오고 있었다. 2명으로 시작한 반은 8명이 되어 분반을 하기도 하고, 일부는 중학생이 되고, 새로운 반이 형성되어 지금 나는  총 12명, 반으로는 세반을 맡고 있었다. 이번에 일을 하고, 퇴사를 하면서 새롭게 보게 된 것은 이 모든 아이들의 첫날에 내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전처럼 학생들이 먼저 있고, 내가 투입이 되어 낯선 선생으로 나타나는 게 아닌 아이들의 처음마다 나는 이 학원의 선생이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잘하는 아이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학원 시스템이 숙제가 많고 복잡하고, 학습 수준도 또래보다 높은 축에 속하는 편이어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려움을 느끼는 아이들이 적응을 해가고, 영어 공부가 나랑 있는 지금만큼은 재밌을 수 있게 하려고 나까지 조마조마하며 보냈던 하루하루들이 많았다. 애초에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을 좋아하는 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고서는 처음 하는 일이라 그런지, 아이들을 대하는 마음이 훨씬 더 조심스러워진 반면 애정에 안정감이 더해진 시간이었다. 또 30대가 되고는 처음 하는 일이었는데 흔이 말하는 짬이 생겨서 그런 건지, 이곳 아이들 성향이 좋았던 건지 아님 둘 다인 건지 모르겠지만, 여기서는 학생 때문에 속을 썩는다고 느낀 적은 단 한번 있을 뿐이었다. 그전 모든 학원에서는 아이들이 좋고 싫고 여부를 떠나 지내는 것 자체도 난이도가 극상이었던 것을 떠올리면 엄청난 차이이고 변화였다. 학원 시스템도 강사 입장에서 좋았던 편인게 한몫했지만, 육아 이후에 바깥일이 너무 여유롭게 느껴졌고, 때마다의 사소한 곤란함이 있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 좀 철이 들거나 안정감을 찾은 근무자의 모습이었다고 감히 떠올려본다.

 아이들이 한 명 한 명 천천히 수업에 적응을 해나가고 내가 하는 말에 웃기도, 먼저 장난을 걸기도, 학원 밖 멀리서도 크게 인사해 주고, 어떻게든 마음을 붙여가는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정말 많이 뿌듯했다. 이 뿌듯함은 가끔 하는 학부모 상담 때 더 많이 증폭되기도 했다. 이 아이들과 만날 때 나는 늘 에너지를 받아 갔다. 단시간 일하는 거라 피곤하진 않아도 쨌든 일을 하러 가는 거라서 귀찮을 때도 있었지만, 육아를 하다가 학원에서 일을 하면 때로 놀러 온 기분이 들 때도 있을 정도였다. 이 학원에 오기 전에 나는 중등부전담 강사로 중학생들과 지내고 공부하는 것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었는데, 엄마 된 나는 일할 수 있는 시간대가 뜨시고 차시고를 고를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그냥 무조건 초등부만 해야 하는 상황이 주는 우려를 전환한 시기기도 했다. (물론 아이들 덕이 크다.) 이 아이들을 두고 떠난다니. 아쉽고, 아리고, 끝내는 아깝기까지 했다. 애써 일궈놓은 고급 작물밭을 잘 알지도 못하는 남에게 헐값에 팔아넘기는 기분이랄까.

 퇴사를 앞두고 편치 않은 마음이 이어지는 와중에 4월은 끝자락을 향하고 있었다. 이번만큼은 흐지부지 나갈 수 없어서 아이들에게 작별 인사를 건넬 편지와 선물을 준비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편지를 썼고, 초등 고학년에게는 필기구 세트와 빨간 색연필을, 저학년에게는 무지개 연필 한 다스와 유기농 사탕 2개씩, 그리고 모두에게는 (디저트사업하는 친구가 직접 굽는 고급 유기농) 통통 르뱅 쿠키를 따로 주문해 하나씩 넣었다.  편지는 오버 일까도 싶었는데, 결국 안 하는 게 더 싫어서 한 명씩 쓰다 보니 금방 편지지를 채울 수 있었다. 후임 선생님이 잘하면 마지막 주 수업에는 청강을 들어올 수 있기에, 그전 주 아이들에게 퇴사소식을 전했다. 꾸미고 축소할 것도 없이 그대로.
 별 반응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라도 아이들이,

 '괜찮은데..'

라고들 해서 놀랐다. 선생님이 알다시피 요 근래, 예고 없이 당일에 수업이 변경되거나 다른 선생님이 들어온 날이 있지 않았었냐고, 실은 그때 선생님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있느라 그랬는데 원장님은 배려를 많이 해주셨지만, 내 생각에는 이렇게 자주가 아니라도 이런 일이 또 생기면은 소중한 시간과 돈내서 학원 오는 너희들이나  학원 모두에 피해가 된다고 생각했다고. 그래서 어려운 결정을 하게 됐다고. 우리 반 아이들 모두에게 애정이 가득했던 지라, 너무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래도 선생님보다 더 꾸준히 가르쳐 줄 수 있는 선생님이랑 공부하는 게 더 좋을 수도 있겠단 생각에서 결정한 거니 그렇게 알고, 미안하고 응원하겠다고. 했다.
그 말에 '좀 그래도 진짜 괜찮은데요'라며, 장난꾸러기들이 먼저 입을 뗀 것이다.


작별이 예고된 서먹거리고 아쉬움이 짙어진 2주를 지내고 난 당일, 아이들에게 진짜 작별 인사와 선물을 건넸다. 일부 아이들은 편지와 선물을 주기도 했다. 예고된 작별에 처음으로 받아보는 마음과 문장들. 예고되지 않은 그 마음과 문장에 나는 더 진한 애잔이 몰려왔다.
그리고, 이어 '잘했구나.'라는 마음이 아쉬운 와중에 후회 없는 목소리로 들려오기도 했다.
분노와 억울함 지침과 빡침이 없는 퇴사도, 아이들에게 인사다운 인사를 할 수 있었던 퇴사도, 퇴사를 하게 된 사유가 회사이지 않은 것도 처음이었다.

 

 왠지 정답은 아닌 것에 항복을 해버린 기분이었지만, 퇴사를 하면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꼭 그렇게 나쁘지만은 아닌 마음이 묘했다. 이제 맘 편히 아이와 함께하는 것에 일순위를 할 수 있는 엄마가 된 나는 시원섭섭하고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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