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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May 08. 2023

이방인의 시선

새로울 것도 특별할 것도 없지만 하고 싶은 여행



 장소와 건물은 그대로인데, 내 마음만 바뀌는 그런 날들이 있었다.
내가 다니던 광명과 시흥 부천 일대의 학교들,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내리 살았던 아파트, 그 동네. 거기 집 앞 롤러스케이트장, 대학에 다닐 때 즘 이사해서 살던 집 앞에는 내 생에 최고의 떡맛집이 있었다. 내가 알바하던 동네 파리바게트, 마트. 나와 남편이 처음 같이 살았던 인천 만수동 신혼집 동네, 그 좁은 골목에서 발견한, 계란후라이 밥에 올려주는 부대찌개 맛집, 시장 안에서 한 입만 먹기로 해놓고 한입만에 반했던 핫바가게.

 어떤 곳은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보지만, 어떤 곳은 봐도 모를 만큼 잊었을 테고, 어떤 곳은 분명히 그곳인데 다른 느낌이 드는데도 있다.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 많고, 가서 먹어보고 싶은 곳도 많다. 아파트나 학교 같은 큰 건물 대부분은 그 자리에 있을 것이고, 점포들 또한 그대로인 곳이 많겠지만, 우연히 가보거나 여전히 그 동네 사는 사람들에게 소식을 들으면 없어지거나 모양이나 위치를 바꾼 곳도 있다. 그곳에 있는 건물들도, 사는 사람들도, 맛을 내는 사장님들도 나이는 똑같이 먹으니 언젠가는 큰 건물들 조차 완전히 다른 곳으로 바뀔 수도 있겠지만, 크거나 작거나 하는 그 모든 크고도 소소하지만 소중한 것들이 부디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켜주었음 하는 바람이 솟는다.

 나는 이사와 학교 다닐 땐 전학에도 익숙한 사람이었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로 인해서 당연히도 익숙하기만 했던 장소들이 반갑지만 낯설기도 한. 새삼 그렇게나 다르게 느껴지는 것들을 보면서 기분이 이상해졌다. 어지간히 지독했던 사람이 아니고서야, 사람이든 장소든 오래 했던 그것을 떠나고 나면 대부분 나는 좋은 느낌만 남는다. 그래서 좋았던 것도 힘겨웠던 것도 많았던 그곳들을 우연히든 일부러든 갈 때마다 마음이 애틋해진다. 지금 보니 그땐 아무렇지 않거나 별로였는데 떠나야지만 애틋해지는듯도 하다.

 특히 광명의 한 초등학교는 원래 이곳이 이렇게 작았었는지, 바로 옆에 살던 아파트도 그땐 그렇게 커 보였는데 이제는 15층 이상의 아파트들에 익숙해져 버린 탓인지 10층 언저리에 불과한 그 아파트 마을도 그렇게 작아 보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살았던 부천의 한 마을은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지만, 꽤 멀어져 간다. 어느 날은 여전히 그 동네에 사는 친구에게 내 옛 동네를 지날 무렵 꼭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고 했는데, 익숙했던 그 롤러 스케이트장, 어린이 공원이 어색하게, 정확히는 이젠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다가왔다.
 
 몸이 멀어지면 그곳을 바라보던 나의 시각도, 시선도 바뀌는 모양이다. 떠난 곳을 다시 찾는 것이 자주 있는 일은 아니어서 이 바뀌는 시선의 경험 또한 쉬이 접할 수는 없는 건데, 잠깐이든 오래든 우연히든 일부러든 그곳들을 갈 때마다 느끼는 이 마음이 좋은 건지, 애틋한 건지, 그리운 건지, 어색한 건지, 잘 모르겠다. 나는 이제 이곳에서는 완전한 이방인이 되었구나는 생각인 것 같기도, 그래서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지레 드는 것 같았다.

 반면 일생에 이사라고는 1번뿐이었던 남편은 언제나 가도 똑같이 우두커니 서있는 본가가 있고, 고향은 날 때부터 지금껏 청주인 사람이다. 그런 그는 자기가 다니던 고등학교나 초등학교 대학교를 가도 아무렇지도 않아 했다. 오히려 그 남자의 고향에 와서 살고 있는 내가, 그 남자가 졸업한 학교를 지나가며 문자로 "오빠(남편)가 졸업한 학교를 내가 지나가고 있다." 며 새삼스럽게 더 호들갑 떠는데, 정작 본인은 정말이지 매번 아무렇지 않아 하는 재주가 놀라울 따름이다. 그런데 내가 있던 곳이 여전히 익숙한 이 사람의 그 기분은 꽤나 안정감을 줄 것 같아서 살짝 부러워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사람도 그대로이지만 애틋한 인연의 사람인 경우 오랜 기간을 못 만나다 만나면 옛 동네를 보며 들었던 마음과 비슷한 기분이 들까. 옛 시절 중에 내게는 고등학교가 꽤나 애틋한 곳인데, 그곳에도 다시 가보고 싶단 생각을 해봤다. 마침 그 학교는 (천주교) 사립학교여서 선생님들이 꽤 고정적으로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제는 거기서 아는 선생님을 뵈면 기분이 너무 이상할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십 대 초중반 까지야 졸업을 하고도 졸업생 기도모임을 알게 되어 학교를 꽤 자주 찾아갔었는데, 일도 바빠지고 거주지가 멀어지면서, 결혼을 하고 아예 경기도를 벗어난 타지 생활인이 되면서 학교에 발길을 완전히 끊게 되었다.

 그러다 지금 보니 삼십 대 중반이 되어 있다. 아이 가진 엄마가 되었으니 제법 아줌마티가 역력할 건데 왠지 이 모습을 추억의 그 선생님들에게 보여주고 싶지가 않았다. 지금 그 학교에 가서 학교 운동장을 거닐고, 우리 학교 안에 있었던 매점 가는 길의 정원에 앉아 있다가는 완전히 혼자 청승 떠는 아줌마로 보일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하지만 내가 학창 시절 나이 많으신 졸업생 선배님들이 학교를 오시는 모습은 정말 보기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곳이, 많은 분들이 그립고 보고 싶다. 내가 변한 만큼 그들도 바뀌어 있을 모습이 왜인지 모르게 약간은 두렵기도 하다. 한편 나는 변했지만, 사람도 건물도 점포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어주길 바라는 이 마음이 내마음이지만 참도 이율배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쯤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그 옛길을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옛날 그때를 함께했던 친구를 만나서 그때 함께 기도했던 수녀님(선생님)을 만나고 같이 학교의 푸른 산책길을 거닐어 보고 싶다는 상상. 그것이 계획이 되고 실행이 되길. 혼자 가면 눈물이 날 것 같은데, 같이 가주는 사람들이 있으면 좀 들떠도 그냥 더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길과 그 사람들과의 애틋한 시간을 거닐고 나면 학교 밖을 나와 여전히 있어주었음 하는 떡볶이 집에서 떡볶이와 샛노랗고 통통하 큼지막하던 튀김을 먹어주겠다. 지금 먹어도, 살찐 고등학생 때의 그 맛진 맛이 나 줄지. 제발 나주길. 
 
 그리고 그 시간이 끝나면, 그 일대의 내가 살던 곳을 마치 여행하듯 하나하나 다녀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맑고 푸른 바다나 산 들판 하물며 해외까지. 대단한 여행지가 아니어도 이방인이 된 나 혼자만 즐기는 특별하지만 소소하고 행복하고 애틋한 여정이 될 것 같다. 그리고 편안하면서도 어색하고 참 누구나 아무나는 하지 않는 독특한 여행을 한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그래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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