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해연 Jun 07. 2023

내일은 알짬뽕

근성돼지 이야기


"누나, 그거 알아?

자기 전에 다음 날 먹고 싶은 걸 생각하고 자면 돼지래."


응?.. 알고는 있었지만, 굳이 살이 빠지는 상황에서도 근성자체가 돼지인 것을 알고 나니 웃음이 나왔다. 평생을 통통이로 살았던 나는 뚱뚱 직전의 놀리기 딱 좋은 몸매였는지, 세상의 온갖 곰들, 두꺼운 것들은 죄다 듣고 살았다. 이를테면 곰돌이 푸우, 곰탱이, 우루사, 하마(탱), 무다리, 돼지.. 그놈의 우루사, 개싫어.  

우루사는 대표적 놀림용 곰의 대명사이다.


다이어트는 인생의 최대 난제 중 하나였다. 지금은 엄청난 강박에서는  헤어 나온 상태지만, 한 때 다이어트는 나를 해치는 일상이었다. 19세 끝자락부터 23세 끝물까지 나는 다이어트와 유혹의 번복과 강박과 죄책의 꼬리물기로 스스로를 몰아붙이다 끝내는 내 자신을 타인의 잣대에서 필요할 정도로만 놔버렸다. (그런 계기가 있었다.)  이제는 먹고 싶은 것을 딱 배고픔을 없앨 만큼만, 배를 채울 만큼만 먹는다. 어쩌다 2주 내지 한 달 정도의 다이어트를 하게 되더라도 어렸을 때 느끼던 다이어트의 스트레스는 없다. 이 마음으로 이십 대 초반도 지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항상 살 빼야 해, 난 돼지야, 못생겼는데 살쪄서 더 못생겼어, 이러니 연애를 못하는 게 당연하지. 이런 마음을 달고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살을 빼는 것에 대한 인식과, 잣대를 바로 잡고 나니 매일에 있는 오늘의 내가 가장 나은 나인 것 같았다. 무려 지금도 나는 사회적 미와는 거리가 먼 외모지만, 이런 마음이다.  못생겨도 괜찮아. 그런대로 만족스러움. 좀 꾸미면 괜찮음, 심지어 못생김에서 꾸미면 나아지는 거 보는 거 즐거워버림. 이런 식.


 그러다가 어느새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 그럭저럭 너무 무겁게만 느껴지지 않을 정도, 160에 60 언저리의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다 육아생활에 감정이 너무 민감해진 나머지 밥을 먹지 못해 살이 볼품없이 빠졌다가, 다시 조금 쪘다가를 반복하며 그렇게 보기 힘들었던 앞자리 5 짜가 익숙해졌다. 엄마민감정서에, 아이가 아프면 나도 식을 거부했다. 이십 대 때는 속이 좀 아파도 약을 한 봉지만 먹으면 싹 낫던 증상이 더뎌지는 삼십 대였다. 어느 날은 먹고 싶어도 역류성 식도염 재발이 두려워 저녁을 아예 먹지 않기도 했다. 커피는 이미 끊은 지 오래요, 저녁을 먹게 되더라도 유독 속에서 오래 남는 듯한 돼지고기, 고등어, 튀김류는 피한다.



그러다가 그 식도염이 잠잠해질 때면 스멀스멀 근본적인 식욕이 올라온다. 그러다 결혼 전 동생이 나를 보고 놀리듯 던진 돼지근성을 판별할 수 있는 질문이 생각난 것이다. 자기 전에 먹는 초코칩 몇 봉지, 입가심용 아이스크림 한 개 또는 맥주 반잔. 정도는 나의 하루에 사사롭지만 달콤한  낙이 되어 온다. 어제도 어쩌다 보니 저녁을 거른 하루였는데, 아이랑 있으면 긴장감 때문에 배가 고프지 않다가도, 기가 막히게 아이가 잠에 든 걸 알자마자 배가 고프다고 울어대기 시작했다. 내 위장아 제발.

그날 밤 먹고 싶었던 건 쫀득한 블루베리 베이글이었다. 아침식사용으로 냉동실에 쌓아 주고 먹는 빵이었는데, 저녁을 거른 탓인지 거의 매일 먹다 시피하는 뻔한 맛이 그렇게 당겼다.  삼십 중반밖에 안 됐는데도, 늙어버렸는지 나의 위장은 받아들이는 양이 철저하게 적어졌을 뿐만 아니라, 나 또한 그 이상을 하고 싶지 않은 반 자발적인 것들이 한밤의 야식을 마다한다. 먹고 싶어도 먹기 싫은. 그래서 그 밤에 베이글을 참고 쏟아지는 잠을 참고 일어나지도 않고 그냥 잠에 든다.  


그렇게 일어나서 먹은 아침에 베이글은, 지난밤에 내가 먹고 싶었던 그 베이글의 짜릿한 감정의 소스는 느껴지지 않았다. 편해질 때 이런 식으로 꼭 돼지 근성이 고개를 내민다.   

아쉬운 식사, 야식 없는 재미없는 밤이 이어지다 보니, 소싯적 먹는 족족 살이 찌더라도 밤늦게까지 메뉴 하나는 집중해서 먹을 수 있던 때가 그립기도 하다. 때로 동아리나 모임에서 단체 엠티나 거나한 회포자리에서는 어땠는가.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안주를 먹고, 놀다가 또 술을 마시고 놀다가 새벽에 동이 트는 때 해장국으로 아침을 맞이하곤 했다. 하여간 그때는 살이 찔 수밖에 없었다.  


비로소 마음이 편해지고 배가 고파지는 시간에도 식음을 하기가 두렵고 비교적 자제하는 자세도 익숙해진 요즘, 부쩍 그때의 내 위장이 부러워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삼십오 세를 기준으로 인간은 노화의 속도가 확연해진다는데, 얼굴뿐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내 장기들도 나이가 들어가나 보다. 즐기고 싶은 맛이 여전한데, 어르신을 공경해 드려야지 어쩌겠나.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아이 덕에 평소 칼칼한 맛은 먹을 수 없는 내가, 주기적으로 매운 게 당겨버린다. 참고 참아온 그날이 오늘이다. 집 주변에 알짬뽕 맛집이 있다던데, 먹어보지도 않은 그 알짬뽕이 먹고 싶어졌다. 면은 꼬들보다는 푹 익히고도 탱글함을 유지한 질감이길, 국물은 뻔한 잣대지만 신라면 정도의 맵기이길. 오늘도 돼지는 한밤의 치킨과 맥주와 베이글을 참고, 다음날 먹을 알짬뽕을 떠올리며 배고픈 잠을 청한다.   


한편 근성이 돼지인 것을 또 한 번 확인하는 지금의 내 모습이 썩 나쁘지 않다. 여전히 맛있는 것에 대한 유혹은 잊을만하면 나를 끌어당기지만, 그 돼지스러움이 때로 살아있는 것 같아 유쾌하기까지 하다. 오늘도 내일도 이렇게 유쾌한 돼지이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책』을 읽으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