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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Jun 21. 2023

우리가 아빠, 엄마로 불릴 때

육아 일기 아니고 나의 성장일기

 "아빠"
어떤 생명체가 나를 엄마라고 부르는 것도, 그 현실도 신비와 감격스러운 일이지만, 가끔은 남편이 아이에게 아빠라고 불리는 모습도 사랑스럽고 애틋하게 느껴지곤 한다. 이미 햇수로만 6년 차 엄마인데 나는 아직도 자주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엄마라니, 이 남자가 아빠라니. 그리고 그렇게 불러줄 정도로 우리 아이가 컸다니. 하면서.

서른다섯이나 먹었건만, 나는 엊그제 타령을 민망할 정도로 많이 하는. 그렇게 시간에도 상황에도 늦게 적응하는 인간이다. 얼마 전 아침에 아이를 데리고 동네 마트에 갔다가 걷는 중에 교복을 입고 학교를 가는, 아마도 여자 고등학생 한 명을 보았다. 그때 문뜩 생각했다. '나도 0교시 타령을 하며 이른 아침에 일어나는 게 일상이던 고등학생이었지.' 열아홉이라고 쳐도 16년 전이니 이제는 민망할 정도로 오래된 과거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주 고등학생인 신분인 내 모습을 꿈에서 자주 볼도로 고등학생 때의 몸짓과 생활과 기억이 익숙했다. 오히려 대학에 가고, 그나마 대'학교'라는 것도 끝내고 주로 돈을 버는 '일'을 하며 지냈던 20대는 나름 바쁘게 지냈지만, 고등학교 시절의 애틋함과는 좀 결이 다르달까. 같은 젊음에도 결이 있는 모양이다.

나는 이런 식으로 과거와 지금에 대한 감상에 자주 젖는다.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남자친구 좀 제발 사귀어 보고 싶다고 맨날 기도하던 내가, 철든 척했던 철푼이 내가, 어느덧 결혼이란 걸 하고 그 생활을 해내고, 부모생활이란 것도 해내고 있구나. 하는 것들. 당연하게 교복을 입고, 무거운 가방을 메고, 아침 일찍 움직여 '학교'란 것이 익숙한 고등학생 앞에서 나는 아이와 손을 잡고 있으니 이젠 너무 아줌마여도 아줌마였을 터였다. 그 순간 언제 세월이 이렇게 지난 거지 싶다가도 한편으론 이런 생각들이 진하게 향수를 남기며 지나갔다. 그리고 생각했다. 자화자찬이지 싶지만,
'우아, 나 대단해. 엄마 생활에 이렇게나 익숙해졌다니.'

비슷한 시선이 남편에게로 향할 때는 마음이 두배로 대견해진다. 일주일에 한 번 어디서, 무엇을 하며 데이트를 할까 하는 궁리하 최대 고민이었던 나와 너는 결국 결혼을 하고, 우리는 엄마 아빠가 되고 가족이 되었구나. 너는 여전히 외부에서 일을 하고, 나는 조금 다르게 살림과 육아란 일을 주로 하고 있구나. 자주 너도 아빠로서 애쓰긴 애쓰는구나 싶을 때가 있다. 감상에 자주 젖어대는 덜렁이 나와, 일생에 감상이 뭔지 정도까진 아니지만, 딱 누구나 할 수 있을 만큼의 인간적인 감상만 하는 현실주의자와 극 계획주의 꼼꼼 정리요정 남편이 일구어내는 우리의 일상은 좀 나로선 피로하다 못해 괴로워 피로울 때가 많지만, 나름의 중간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흐뭇할 때도, 나름 성장했구나 싶을 때도 있는 것이다.



아이가 아직 말을 못 할 땐, 우리가 엄마라고 아빠라고 불린다면 얼마나 신기할까. 싶었다. 한편 어떤 사람들은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자기를 엄마라고 먼저 호칭하며 00야 엄마가- 하는 모습에 나는 왜 엄마에 익숙지 못하는가 라며 자책감을 갖기도 했다. 다행히 그런 걱정 자연스럽게 나를 신비엄마라고 불러주는 사람들과, 이제는 그 사람이 없어도 나를 백만 번도 더 엄마라고 불렀을 아이의 음성에 내가 엄마임을 자연스럽게 받아 들일수 있게 됐다.문뜩 궁금해졌는데 진짜로 이 아이는 엄마를 몇 번이나 불렀고, 나는 엄마라고 몇 번이나 불렸까.
 
심신이 고달플 땐, 고요 속에서 엄마를 불러대는 아이의 엄마소리가 반갑지만은 않을 때도 있었지만, 뭐니 뭐니 해도 나를 엄마라고 불러주는 아이가 이 아이란 사실, 그 아이의 엄마가 나고, 아빠가 이 남자라는 사실은 이 아이가 이 아이로 우리 앞에 와준 사실만큼 경이롭고 감격스러운 일이다.

부쩍 아이가 의사소통의 내용이 구체적이 돼 가면서, 아빠를 기다리는 모습 또한 많아졌다. 당장은 주말부부를 하기로 한 우리라 아빠를 찾는 아이의 모습이 애처롭기도, 미안하기도 하다. 그래서 또 잠시 이사라던가 내 업무의 전환이라던가 하는 가능성 없는 구상을 아주 잠시만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빠랑 함께하는 순간들이 그 자체로 의미 있고 따뜻하게 다가오긴 하는구나 싶어서 잘하고 있구나 싶기도 한다. 아무리 아빠여도 좋지 않은 사람이라면 찾지 않을 게 당연하잖아 싶으면서 말이다.

이번 주는 남편이 주말 중 하루만 쉬는 날이라, 벌써부터 우리 부부는 아이가 아쉬워할 것을 아쉬워하고 있다. 그리고 매일의 전화 끝에마다 이번 주말에 뭐 할까를 덧붙인다. 실은 요즘에 내가 좋아하는 가디언즈오브갤럭시가 개봉을 해서 그나마 남자친구 같은 사람인 남편이랑 팝콘 먹으면서 여유 부리며 영화나 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하지만 애석하면서도 대견하게도 당연한 얘기지만 남편의 뭐 할까는 아이랑 뭐 할까 이다. 일주일 내내 아빠를 기다리며 자야 하는 밤을 새우고 있는 아이의 목소리에, 결국 나는 어디 떠나서 뭐를 먹고 뭐를 해야 한다는 계획 따위는 정말 질색인 나는 큰맘 먹고 그것들을 계획할 것 같다. 그리고 아이를 카시트에 앉히고, 그 아이와 그 아이의 아빠와 함께 엄마의 이름으로 그 아이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향해 함께의 무엇을 하러 떠날 것 같다.

오늘은 또 이번 주말은 또 우리는 한 생명체에게 몇 번이고 엄마라고 아빠라고 불릴까.
우리는 어떤 아빠로, 엄마로 살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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