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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Aug 18. 2023

키즈카페 아니고 키즈클럽



보통 방학 때 가족여행을 많이 가는데, 정작 우리 집 모자는 집에, 마구 겉돌며 일상을 지냈다. 내일은 어디 갈지, 무얼 할지가 최대 고민이었다. 어느 날은 어린이박물관에 가기로 했다. 재미가 크진 않더라도, 아이들이 직접 보고 움직이며 체험할 수 있는 거리들이 많아서 괜찮겠다는 판단에서였다.


육아는 계획대로 되는 법이 없다. 그전에  한번 오기도 했지만, 박물관은 박물관이었나 보다. 성인인 내가 박물관을 대하는 특유의 재미없고 시큰둥한 느낌처럼, 아이도 시시한 기세가 역력했다. 고작 20분은 있었을까. 차에 돌아와서는, 키즈카페를 가자고 했다. 찾아보니 3분 거리에 평이 좋은 곳이 있었다. 평이 안 좋아도 가깝기만 하면 갈 생각이었는데, 웬 횡재. 총 30분도 채 있지 않았거늘, 엄마의 당은 바닥치를 달리고 있었고 심지어 키즈카페에 가면 더욱 체력을 충전해놔야 하기에 키즈카페 건물에 있는 카페에서 망고파르페와 빵 한 조각을 나눠먹고 키즈카페로 향했다.

엄마경력 6년 차, 나도 이제 키즈카페 다경험자가 돼서 어떤 키즈카페가 어떤 식으로 좋은지 파악이 되곤 한다. 이곳은 프랜차이즈 점은 아니지만 대규모였다. 사장님의 자체디자인 구조였는데, 바닥과 천장에까지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 꽉꽉 차 있었고, 뽑기나 게임기 같은 기계도 있었다. 무엇보다 고장 난 게 하나도 없었다. 볼풀공도 찌그러진 거나 깨져서 너덜거리는 게 거의 없었다. 한마디로 관리가 잘되고 있다는 뜻이다. 프랜차이즈 키즈카페는 뭔가 모조리 원색이거나 통일된 듯한 기구배치에 화려해 보일 수는 있는데 점포에 따라서 관리양상은 천차만별이었다. 반면 개인 카페들은 기구들이 자체로 디자인돼서 저마다 제각각인 인상을 줄 수는 있으나 관리력에 따라 오히려 더 깔끔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곳들이 있었다. 여기는 후자에 해당하는 곳이지만, 규모가 크고 놀이기구(?)가 다양해서, 아이를 눈으로 좇기에 빠듯했지만 걱정될 정도는 아니었다.

방학이지만 평일이 사람들이 었다. 사람에 치이거나 기빨릴 걱정을 덜었다. 6살 어린이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가자마자 여기저기를 쏘다니기 시작했다. 이제 제법 커서 엄마 손을 잡지 않고도 통통하고 단단한 두 발로 너구리처럼 요리조리 발을 놀리며 뛰어다녔다. 그 발재간이 귀여움과 동시에, 조금 전 박물관에서의 모습과는 180도 다른 모습이라 어처구니없는 코웃음이 나왔다. 아이는 볼풀장, 미끄럼틀, 네모스펀지늪구간, 트램펄린, 그물망굴 등 여러 군데서 놀았다.

놀다 보니 이 키즈카페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시스템을 발견했다. 일정한 때가 되면 내부 조명이 죄다 어두워지고, 천장에 수없이 달린 노래방 미러볼들이 굴러갔다. 처음엔 조명이 바뀌는 것도 잘 몰라서 놀던 곳에서 놀고 있었는데, 우리 모자는 머지않아 그 미러볼의 진짜 구역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그곳은 마치 키즈카페가 아니라 키즈클럽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볼풀장을 넘어서 다시 우다다 다른 곳으로 뛰어가다 말고, 아이는 이곳의 대표 트램펄린 영역으로 시선을 빼앗겼다. 이 키즈카페 터줏대감들인지, 아이들은 어두운 와중에 화려한 조명과 왁자지껄한 볼륨의 아이돌 곡과 뮤직비디오에 맞춰 춤을 추거나, 그 화면을 기준으로 직선으로 쭉 뻗은 트램펄린 위에서 뛰었다. 미친 듯이, 그런데 한없이 가볍게.


키즈카페 아니고 키즈클럽


정작 키즈클럽을 알게 된 건 아이돌곡이 끝나고 나서였다. 일정분량의 곡이 끝나자, 화면은 그것을 끄려는 컴퓨터 배경화면으로 바뀌었고, 마치 새벽을 이기고 나오는 아침의 햇살을 알리는 듯한 환하지만 비로소 평범하고 단조로운 조명이 키즈카페 전체에 냉정하게 켜졌다. 더 냉정한 건 클럽에서 놀던 아이들이었다. 그렇게 신나게 뛰고 춤을 추던 아이들은, 음악이 멈추고 조명이 켜지자 기가 막히게 우르르 그 트램펄린 존을 떠나는 것이 아닌가.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때 알았다. 이 시간은 클럽시간이고, 여기는 키즈카페가 아니라 키즈클럽이란 것을.


클럽타임 두 번째 만에 이 시스템을 확실히 알아버린 여섯 살 꼬맹이는 거기 끼기엔 꽤 작은 사이즈임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다른 영역에 있다가도 조명이 꺼지는 순간 귀를 쫑긋 하는 너구리처럼 털을 세우고, 미친 듯이 발을 놀려 키즈클럽 구간으로 달려갔다. 춤을 따라 할 만큼 끼가 많진 않지만, 흥은 아는지 형 누나들 사이에 끼어서 계속 뛰고 다니는 모습이란 정말 가관이었다. 아니, 키즈클럽을 누리고 있는 거기 모든 아이들이 가관이었다. 음악이 끝나고 나는 생각했다. 여기 사장님은 특별히 아이들이 즐거이 노는 것을 좋아하시는 게 틀림없다고. 혹은 그게 돈벌이의 수단이라고 해도, 엄청난 수완과 눈썰미였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키즈클럽 공휴일에는 기빨림주의


즐기는 아이들만큼 보는 나도 이상하게 재미를 동반한 감동이 몰려와서 클럽구간을 좀 더 묘사하고 싶다. 음악은 기본적으로 최신 유행하고 사랑받는 아이돌 곡이었다. 그중에 오프닝은 늘 Toca Toca였다.(너무 궁금해서 대표가사만 기억해 뒀다 유튜브로 또까 또카라까라까 라고 치니 나왔다.) 약간 병맛 같은 영상이 나오는데, 그렇다고 나쁜 건 아니고, 확실히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유행인 곡이구나 싶은 감성이 마구 솟구치는 노래와 영상이었다. 이게 끝나면 꼭 아이브의 I AM이, 그게 끝나면  블랙핑크 지수의 꽃, 아이들의 퀸카를 비롯한 아이돌 노래들이 이어졌다. 화면 앞쪽에서 주로 춤을 추는 아이들의 몸짓에 따라, 그리고 그 뒤에서도 묵묵히 안무를 따라 추는 아이들의 움직임이 많아질수록 인기가 많은 곡임을 알 수 있었다. 대중가요와 아이돌의 영향력이 생각보다 더 어마무시하다는 걸 본의 아니게 느끼기도 했다.

아이브 뮤직비디오 일부


처음 오는 키즈카페였는데, 하물며 계획적으로 온 것도 아니었는데 엄청난 곳을 알아버렸다. 키즈카페엔 딱히 유목민이랄께 없었는데 몸과 마음이 착 감기는 정착할 곳을 찾은 느낌이랄까. 보는 나도 이렇게 좋은데, 아이들은 얼마나 좋을까 싶다. 아마 자주올 것 같다. 이 키즈클럽에.


네모스펀지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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