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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Aug 27. 2023

느리게 갑니다

지나고 나서야 보이는 그 세상들


느리게 가요. 자발적은 아니고요.  


매번 어쩌면 이토록 적응력이 느린 건지. 그러다가 운이 좋으면 그때에 머무 끝 무렵, 대부분은 그 자리를 떠나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그곳이 비로소 낯익은 공간이 되곤 하는 어처구니없는 경험을 아쉬울 만하면 느끼곤 한다.


그 당시는 그렇게 낯설거나, 어색하고, 마치 내가 올 곳이 아닌 것 같았거나, 혹은 다른 사람에 의해서 등 떠밀려 왔거나, 그도 아니면 엄청난 환상을 가지고 왔던 곳들. 혹은 충분히 자신도 있었고, 잘은 못하겠지만 그 마저도 받아들이며 잘해나갈 것이라는 마음가짐이 됐던 결혼 육아라는 세계도 그렇다. 마지막 현재진행형인 것만 빼고 앞의 것들을 떠올려보면, 고등학교, 대학교, 교리교사를 지냈던 성당, 유난히 힘들고 그래서 틀렸다고 생각했던 첫 직장 들이 되겠다. 분명 시작이 미약했거나, 첫인상이 최악이거나, 혹독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왜 꼭 지나고 나면 좋은 것들만 생각나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든 싫든 그저 지금을 그 자체로 인지하며 살아가는 듯하다. 충실의 여부는 별개로. 나도 그러려고 한다. 그런데 꼭 문득문득 내 영혼이 지난 한때만이 가졌던 행복감을 그리워하거나 머물러 있는 듯하다. 그게 아니면, 현실이 내 자리가 아닌 것처럼 어색하거나, 그도 아니면 내 자리가 아닌 것에 열심이고 있으므로 스스로를 격하게 기특 여기기도 한다. 육아를 하던 중에서야 비로소 발견했다. 나는 느리다고.  적응하는 데 한참이 걸린다고. 그 성질에 따르면  분 이 시기도 그리울 수 있는 한 때가 될 것이니, 최대한 그것을 상기시키며, 누려보자고. 담담하고 담대하게, 나아가서 대담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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