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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Sep 08. 2023

글의 지향

글을 찬양하며

내게 보이는 몇 가지 글들이 있다.  


가벼운 것을 쉽게 쓴 글. 그래서 가볍기만 한 글, 한 끗 차이로 가뿐한 글. 그 가뿐함에서, 나도 알았지만 지나쳤던 통찰이 있는 글. 그래서 별거 아닌 게 별게 되는 글. 쉬운 걸 어렵게 쓴 글. 어려운 것을 어렵게 쓴 글. 그래서 어려운 글, 그중 종처럼 울림이 있거나 내공이 있는 글. 어려운 얘기를 단순하게 쓴 글. 그래서 가벼운 글 내지는 깊이 있는 글. 서사가 있는데 감정이 묻어나다 못해 분출되는 글. 어떤 극적 서사에도 건조한 글. 그런데 읽는 나를 어떻게든 젖게 만드는 글. 최소한의 서사에도 마음을 오랫동안 묵직하게 하는 글.  

9월 초입의 어느 좋은날


이 중에 가벼운 것을 가과 통찰로 이끄는 글, 어려운 걸 단순하게 쓴 글, 어려울 수밖에 없지만 내공이 담긴 글, 서사가 있음에도 감정이 건조한 글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 글을 쓴 사람들을 작가라고 부른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나는 알지 못할 정도로 알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쩐지 쉬운 것도 어려운 것도 쉽게 쓴 글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극적인 서사가 가감 없이 드러난 글도 그렇다. 여전히 위로받으려 하고, 끊임없이 자극받으려 하는데, 정작 근본적인 무언가가 단단해지는 듯한 느낌은 없다. 나도 그런 글을 읽기도 하지만 되도록이면 멀리한다. 가벼움도 위로도 찰나적으로 쾌를 주는 듯 하지만, 그만큼 빨리 휘발되고, 때로는 오히려 지나치게 몰입되기 때문이다. 보통의 사람들처럼 그냥 현상대로 금방 헤어 나오지 못하는 나는 몰입을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좋은 집중이 아닌 이상 아예 차단해 버린다.


결국 나는 가벼운 글이 싫다. 다 아는걸 마치 그 글만이 다인 듯 쉽게 말하는 글도 싫다. 마치 글 하나로 누군가 바뀔 수 있을 거라 혼자 점치며 쓴 듯한 글도 싫다. 가끔 그런 글을 쓴 유명인사들이 이미지와 반대되는 처사로 처벌이나 화두에 오를 때, 속으로 그 책을 안 읽길 잘했군 하며, 내 촉에 자부를 느끼는 건 너무 잔인한가.   


 점점 책을 안 읽는 세상이라고는 하는데, 그 사실이 굉장히 아깝게도 사람만큼, 좋은 글도 다양하다. 대놓고 위로하고, 자극을 주지 않아도, 멋을 부리지 않음에도, 울림이 있는 글을 사랑한다. 멋을 부려도 그게 대쪽같이 어울림을 아는 글을, 그러함에도 겸허한 글을 사랑한다. 그걸 알아가는 재미와, 재미를 넘어서는 영광이 크다.


한편 내가 취미로나마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처음에나 결국이나, 불편하고 무거운 얘기를 기어코 써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쓴소리를 하는데 그게 마땅하기도 한 사람 말이다. 그러다 다양한 작가들의 글을 접하다 보니 새롭게도, 평범한 일상에서 느껴지는 별거 아닌 기쁨이나 통찰에 대해 가뿐하게 써지는 글이 더 쓰고 싶어졌다. 불편한 글을 쓰는 것이 훨씬 어려운 일임을 알아버린 것이다. 불편보단 단순을, 애씀보다는 재미를 택했다. 그렇다고 아예 안 쓰겠다는 건 아니고 중년 이후 즘으로 미뤘다.  그렇다고, 단순과 재미를 저버리지도 않을거다.


 임경선 작가 『태도에 관하여』 의 한 부분이다.


자신의 소신을 솔직하게 말한다는 것은 점점 어려운 일이 되어간다. 대다수의 의견과 일치한다면 안전하게 간과하기에 딱히 자기 생각을 의심하진 않겠지만, 소수의견을 가진 사람이면 마음 한편으로 '내 생각이 과연 맞는 생각일까'라는 자신에 대한 의심을 끊임없이 품는다. 자기 말에 책임을 지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다. 그런 번거로움과 불안함이 싫어지면, 소수의견을 내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양극단화된 목소리의 사회가 되어간다. 서로를 이해해서 접점을 찾으려고 다가가는 것조차 '타협'이라며 지탄을 받는다. 대체 타협이라는 단어가 언제부터 비겁함과 기회주의의 대명사처럼 쓰이게 되었을까.


여기서 나는 시원했고 뜨끔했다. 나였기때문이다. 평소 나는 사회 현상들에 관심이 많고, 분개도 잘했는데 때론 몰입이 했다. 나중엔 고달프고 귀찮아져서 아예 눈을 감아 버렸음을 고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집고 들어오는 정보와 현상들은 피할 수가 없었는데, 그 기사 댓글창에는 물론 가까운 가족과 지인에게까지 내 의견을 함구했다.


상황에 따라서 상대가 같은 의견일 때는 나도 핏대를 올렸지만, 그때뿐이었다. 항상 상대는 어떤 입장에 있는 사람인지,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라면 내 의견을 말했을 때 받아들여지는 사람일지, 혹은 파악이 안 되는 사람이라면 내가 목소리를 냈을 때 이 사이가 멀어지거나 여기의 분위기가 싸해지지는 않을지 끊임없이 저울질했다.  


의외로 남편에게는 적당한 격양톤으로 내 의견을 얘기다. 내가 보통은 대다수의 의견과 충돌할 만한 의견을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격함을 알고 있는 남편이 꼭 시댁에서는 제발 정치얘기에 내 의견을 피력하지 말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정치색이 아니고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차별적 발언 같은 게 시댁 친지분들 입에 오갈 때 나도 모르게 움찔하고 말을 보태려고 할때마다 기가 막히게 남편은, '제발 가만히 있어줘'라는 불쌍한 미소를 띠며 옆구리를 찔렀다. 나는 응당 그러고야 말지 않았던가. 이건 욕 아니라, 일종에 원만하거나 현명한 사회생활 같았다. 나도 굳이 바른말이라도 딱딱하는 '며느리'로 시댁의 분위기에 물을 끼얹긴 싫어서 비굴하더라도 듣고만 있는 며느리 길을 택했다.


친정 쪽에선 달랐다. (그렇다고 어느 집이 더낫고 아니다를 얘기하는 게 아니다.) 정치적 선택과 의견에 있어서 우리 집은 자유로웠다. 어느 날 아빠가 잘못돼 보이는 의견을 꺼냈다 하면, 나는 '그건 아니지' 라며 핏대를 올렸다. 거기에 아빠는 한결같이 웃으며 응수했다. 자기는 자기 길을 갈 테니 너는 그 길을 가라며. 내 핏대에 끄떡도 분개도 하지 않고 웃으며 말서도, 자기 길을 가는 아빠가 꼭 나쁘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도 웃으며 핏대를 올리거나, 핏대나 웃음이 없이도 아빠 앞에선 자유롭게 내 소신을 말하는 게 익숙했다. 혹은 내가 좀 어리숙하고 수지타산에 맞지 않는 선택일지라도 소신에 맞는 쪽을 선택하고 이야기했을 때 존중받는 기분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시댁은 어찌 됐건 남으로부터 이루어진 가족이라 적잖이 그들의 분위기를 맞추어 주는 게 예의라 치자. 나는 왜 인터넷에 난무하는 의견들 속에서는 왜 그토록 묵인하는가. 하고 많은 갈등과 논란 속에서 끊임없이 묵인하는가 말이다. 점점 이건 친구들이나 가까운 지인 사이에서도 피할 수가 없다. 내가 맞고 틀리고는 둘째 치고, 그냥 내 의견을 말하는 게 귀찮아졌다. 논쟁을 해보지도 않았지만 하기도 전에 귀찮고, 피하고도 싶었다.


내가 시댁이나 친구 등 다수가 모인 자리들에서 욱하고 차오르지만 결코 틀리진 않았을 그 말들을 다 해냈다면 지금쯤 나는 어떻게 되어있을까. 이미 나는 Yes가 틀린 상황에서 모두가 Yes를 하는데,  No라고는 못해도 Yes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분명히 불이익이 올 게 뻔한 상황이지만, NO는 못해도 차마 Yes는 못하는 사람. 그래서 '해연아, 너 은. 근. 고집 있어.' 이 소리를 은근히 가 아니고 아주 많이 들었다. 아니 대놓고 고집 있으면 어쩔뻔했나.  


여전히 나는 은근한 고집만 유지한 채로 이런저런 삶을 살아가는 중, 유독 소신과 관련된 글을 읽은것이다. 전혀 의도한 것 아니었다. 누전돼서 촛불로 근근이 살아가던 마음에 전깃불 밝아온 듯 시야가 환해졌다. 비겁과 불편인 줄도 르고 어두우면 어두운 대로 살았지만, 막상 누군가 불을 켜주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환하게 보이고, 번거로움과 불안으로 일관했던 내 비겁에도 불이 켜졌다.  


불편한 글을 쓰는 것을 미룬것은 기약을 알 수 없는 뒤다. 중년 정도 되면 나도 그런 의견을 차분하게 피력하는 여유가 생기겠지. 그런 혜안이 생기겠지 하면서. 당장부터 잘은 어렵겠지만 그 미룸을 앞당기고 싶어졌다. 나는 아직까지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고, 여전히 내가 바라는 격조나 교양스러움의 여유는 없는 인간이다. 감정이 아닌 의견을 울지도 화내지도 않고, 쓰고, 내려면 내 삶 또한 얼마나 떳떳해지고 발라져야 하는 지를 안다. 하지만, 글에서 내는 마음가짐으로 삶에도 은근한 힘과 용기를 덧붙여볼 수 있을 것 같다.    


불협화음 유튜브 캡쳐본, '이찬혁 힙합은 안멋져' 로 검색함.

Show me the money라는 힙합방송에서 가수 이찬혁은 이런 가사를 내보였다.  

"어-느새부터 힙. 합. 은. 안 멋져. 이-건 하나의 유. 행. 혹은 TV show."  

실제 힙합가수들이 여기에 어떻게 대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잘은 몰라도 획기적인 그 발언이 굉장히 신선하고 시원했음이 분명했다. (그 와중에 힙합가수 박재범은 Blue Check라는 곡에서, "찬혁아 형은 계속 멋있었어."라고 했고 그쪽 문화는 본인이 지키겠다 답했다. 그리고 본인이 엠씨로 선 박재범의 드라이브에서 둘은 역사적인 힙합사과를 나눴다.) 나는 이찬혁의 가사가 귀에 때려 박혀서, 아예 그 곡이 한동안 이찬혁 단독 노래인 줄 알고 있었을 정도다. 알고 보니 Mudd the student라는 힙합가수가 쇼미더에서 부른 불협화음 이란곡이었다. 거기에 가수 악동뮤지션이 피처링으로 참가한 것 뿐이었다.


그의 존재감과 근거 있는 자신감과 언어와 태도를 사랑한다. 거기에 존중을 표하면서도 또 다른 소신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사랑한다. 갈등까지 가지 않고도, 존중과 표현을 잘 만지는 그 사람들의 능력과 센스에 웃고 희열을 느낀다.  


결국 나는 일단 사건과 감정을 따라가는 쉬운 글을 택했다. 이제 둘 다의 길을 걷고 싶다. 거기서 나는 지지보다도, 지탄과 외면의 시선을 받을 수도, 그래서 미움을 받고 외로워질 수도 있다. 이어 불편한 글을 쓰려함이 나를 좀 더 정직하고 바르게 살도록 고무시키며, 떳떳한 자세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상기시킬 것이다. 또한 불편한 글에 눈과 마음을 뜨고 있면, 그동안 번거로움과 불안이란 이유로 가까이했던 편함과 멀어질 수도 있다. 그 편함이 근본적인 편함이 아님에도, 옳은 길을 가는 게 기쁘기만 한 일이 아니란 뜻이다. 어쩌면 나는 글의 실력보다도, 그런 삶의 안일한 자세 때문에 힘든 글을 쓰는 것을 멀리 한 걸지도 모다.  


결국, 글도 곧 사람인 것 같다. 어떻게 보이게 쓰도록 애를 썼건 간에, 결국 글에는 그 사람의 성정과 품격과 인격, 매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나도 마찬가지다. 글을 쓰면서 좋을 때도 있지만, 고작 이 정도 인간이었나 싶은 순간과 끊임없다. 좋은 글이 쓰는 게 어렵지만, 그래도 자주 소신을 살려 마디를 써내는 사람이고 싶고 그 말이 좋은 것이기도 바라며, 어울리기도 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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