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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Sep 19. 2023

내가 만든 생일


정확히 5년 전 오늘 내가 이 아이를 낳았다. 그래서 오늘이 그 아이의 생일이 되었다.

생일과, 축하받음의 기쁨과, 선물과, 케이크의 맛을 제법 알게 된 5살 아이는 생애 역대급으로 오늘을 기다렸다. 대략 올해 봄부터 월단위로 남은 생일을 세더니, 그리 길던 시간은 미친듯이 줄어 며칠 전부터는 남은 밤을 손가락으로 셀 수 있게 됐다.


아이가 좋아하는 캐릭터 풍선을 고르고, 사고, 선물을 샀다. 나는 집에서 생일축하를 받는 것에 대해 익숙했지만, 케이크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초를 끄는 것 외로 막상 ‘파티’라고 불릴만한 꾸밈을 받는 것은 또 익숙지 않아서 처음엔 상당히 낯간지러운 행위라고 생각을 했었다. 어색하다고 그대로 안했다면, 지금 나는 얼마나 재미가 없는 엄마가 되어있을까. 어색해도 한 해 한 해 아이가 좋아하는 걸 골라하다 보니 이제는 안 하면 안 되는 기쁜 형식이고 우리끼리만 대단한 집안행사가 되었다.     


한편 모든 파티와 축하는 태어난 아이를 위하여 준비하지만, 나는 말 그대로 그 아이를 낳은 사람이니 감회가 새롭다. 아이를 가졌다고 산부인과로부터 연락을 받던 날의 앉은 자세, 그로부터 9개월 정도가 지난 후 그 아이를 낳던 날의 호들갑과 출산의 고통과 모든 지나감을 '안다'.  영원히 모를 것 같은 시간이고 순간이며 경험이었다. 잊었다고는 해도 결코 잊히지 않는 그날들. 세상의 모든 인간들이 저마다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만큼 어머니의 숫자도 많겠지만, 많다고 해서 그들의 수고가 아무렇지 않아 지는 것은 아니다. 복되고 헌신적이고도 고귀하다고도 하지만 현실은 솔직히 ** 무시무시한 일임이 분명하니 나는 대단하다고 하고 싶은 것이다.   

  

실제로 저렇게 남편 손을잡고 힘을 주면 안된다. 다른데 줘야할 힘이 손으로 분산되서. 나는 이걸 다 낳고나서 알았다.



내가 미래에 결혼을 할지, 아이를 낳을지 말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지만 여자라면 한 번쯤은 아이를 낳을지도 모른다는, 그리고 그 고통이 어마무시하단 것 쯤은 상상해 보지 않는가. 하물며 그 고통을 알면서도 임신을 감행하고 끝내는 그 모르지만 언젠가는 끝날 그 고통을 마주하는 날이 있었고, 나도 그것을 견뎌냈다. 나는 고상하리라고, 막상 하면 해볼 만한 고통일 거라고 이상한 암시 같은 걸 갖고 갔지만, 보기 좋게 나는 한 마리 괴수가 되었던 그날의 내 목소리를 기억한다. 괴수의 모습을 눈으로 보는 건 나말고 남편이 보았겠다. 나도 몰랐던 내 안의 괴수를 다 보였으고, 그걸 옆에서 함께해 주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우리는 가족이 된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의 아이' 로 나와 남편은 진짜 삼인체제 가족이 되었음을 실감했다.     


마냥 기쁘다기보단, 뭉클하도록 눈물겹고 복된 날이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생일을 기념하지 않는가. 나는 5년전 이 날을 탄생시켰고, 오늘은 이날을 짓는다. 졸린 눈을 비비며 만든 파티풍선과, 일어나자마자 확인하고 놀라며 기뻐하는 아이, 파티와 선물과 케이크를 준비하며 (제법 귀찮지만) 기뻐할 아이 모습에 설레는 엄마, 아이의 생일을 기억해 평일에도 함께해 준(2주 만에 왔지만) 아빠 가 있으니 나는 좋았다.

그거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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