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전하는 너와 내가 만나면 / 초린
두 개의 전봇대가 나란히 서있다
신참내기 것은 우뚝 솟아 변압기 여럿 달고 있는데
낡은 전등 머리에 이고 있는 오랜 것이 주위를 어루만진다
한 하늘 호박색 지는 해와 창백한 달이 서로 지켜주듯
일제 강점기 부일협력을 끝까지 거부했던 이들
그들의 뿌리는 다른 시대에 꽃으로 남았고
옛 집터에 그들의 정신과 혼이 남아있을진대
낡은 표지판만이 덩그러니 바람을 맞는다
잘못된 믿음이 우주의 신비를 깨지 않길
옛 시간의 정수를 짜면 동시대의 풍광이 아름답듯
공전하는 너와 내가 만나면
아름다운 혼란만이 수런거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