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안똔체홉극장 여름체홉축전 개막작인 <인디언 포커>를 관람했다. 작년 말 그 극장에서 <잉여인간 이바노프>를 재밌게 본 터라 <인디언 포커>도 큰 기대를 안고 갔다.
박장용 작/연출의 <인디언 포커>는 우리 속담 "자기 눈의 대들보는 못 보면서 남의 눈의 티끌을 본다"를 무대 위에 생생하게 시각화한 작품이다. 타인의 약점을 꿰뚫어 보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나평범'이라는 캐릭터 설정 자체가 이미 인간 존재의 근본적 아이러니를 담고 있다. 남의 마음속 어두운 구석은 훤히 들여다보면서도 정작 자신의 내면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모순. ‘인디언 포커’라는 게임의 룰처럼 우리는 상대방의 카드(결점)는 선명하게 보면서도, 정작 자신의 이마에 붙은 카드(문제점)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인간의 이중성을 잘 보여준다. 타인을 향해서는 예리한 관찰자가 되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무지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작가가 장애인 인권운동 활동가 출신이라는 이력도 작품에 깊이를 더한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며 타인의 아픔을 민감하게 포착해 온 그의 시선이, 이번에는 우리 모두의 내재된 위선과 편견을 유쾌하게 폭로한다. 진정한 소통과 이해가 "피상적인 모습이 아닌 내면의 깊이를 들여다보는 데서 시작된다"는 작가의 메시지는 곧 자기 성찰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연극에서 관객이 작품에 감정적으로 몰입하는 것을 방지하고 비판적인 태도를 유지하도록 만드는 연극 기법인 브레히트의 이화작용과 같이 주인공 ‘나평범’은 극 속에서 연기하다 빠져나와 중간중간 계속 관객들에게 이 상황을 설명해 준다. 작품 속 인물과 동일시되거나 극에 몰입했다가도 사회 전반적인 시선으로 나 자신과 현실을 수시로 돌아보게 만든다. 한 순간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극의 흐름은 매우 빠르게 진행되며 이 이상한 상황이 마치 현실인 듯 웃음 반, 불안 반으로 관객을 무대 안팎으로 질주하게 한다.
극 후반부에 죽음에 대한 성찰 씬도 나온다. ‘나평범’은 동아리 사람들에게 그들 얼굴에 보이던 피노키오 코가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면 일주일 뒤에 다 저세상으로 가더라는 말을 한다. 그 이후부터 싸우던 사람들도 사과를 하고 두려움 속에서 그들은 갑자기 다른 행태를 보인다. 내가 언제 죽을지를 안다면 화낼 일도 줄어들고 서로 다름을 이해하는 관용의 폭이 넓어짐을 되새기게도 하는 것이다.
결국 ‘나 자신도 모르는 나’인 존재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재단을 쉽게 하는 부조리, 주인공 ‘나평범’이 다른 사람들의 단점을 말하며 화내는 것을 막기 위해 쓰는 장치인 모자를 8시간 이상 쓰게 되면 결국 웃음을 멈출 수 없게 되는 몸 상태가 되는 부조리, 죽음이라는 유한성 앞에서 영원한 존재처럼 사는 인간들의 부조리들. 코믹하지만 씁쓸하고, 가볍지만 묵직하다.
경쟁과 불신이 극대화된 이 시대에 정작 가장 큰 승리는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용기’라는 깨달음이 아닐까. AI를 보면서 인간을 다른 측면에서 보게 되는 것 같이 결국 우리 모두의 이마에 붙은 보이지 않는 카드를 비추는 거울 한 조각을 이 작품은 우리에게 건네준다.
2025 여름체홉축전은 총 8개 공연 외에도 연기워크숍, 문화예술특강, 팝업스토어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8.31.(일)까지 안똔체홉극장(성균관로3길 23)에서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 7. 3.~13. : 개막작 <인디언 포커> 애플씨어터컴퍼니 / 박장용 작 & 연출
- 7.16.~19. : <곰+청혼> 창작집단 유희자, A.체홉 작 / 이신영 연출
- 7.26.~27. : <굿닥터> 극단 성난발평가들, 닐 사이먼 작 / 김시번 연출
- 8. 7.~10. : <모나미 별자리> 바나나팩토리, 김재준 작 / 김진근 연출
- 8.15.~17. : <백조의 노래> 개인 출품작, A.체홉 작 / 유태균 모노드라마
- 8.21.~24. : <체홉단편열전> 극단 어느날, 체홉 단편소설 / 김세환 각색, 연출
- 8.29.~31. : 애플씨어터컴퍼니, S.베케트 작 / 전훈 연출
- 8.29.~31. : 폐막작 <한여름밤의 꿈>, W.셰익스피어 작 / 우명호 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