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릴 적 약 7~8살쯤 되던 아주 오래전 난 집 안 골방에 한참을 숨어있던 날이 있었다. 아빠 사업이 한창 잘 되던 시기여서 큰 마당과 방 개수도 꽤 많은 집인데 건넌방 중 하나엔 짐과 책들이 많아서 잘 숨어 있을 수 있었다. 엄마가 절박하게 내 이름을 부르며 경찰서에 가서 신고하시고 실신 직전까지 갈 때까지도 난 나오지 않았다. 이유는 잘 생각나지 않지만 그날 뭔가 동생한태 질투 나고 속상했던 것 같다. 사랑받으려고 내 존재감을 확인시키려 그러지 않았을까.
온 동네를 돌아다닌 후 저녁 무렵 엄마가 울면서 현관문을 들어오시는데 내 신발을 보셨다. "애 신발이 있네! 밖에 안 나가고 집 안에 있나 봐!" 그 소리를 듣고 난 그제야 웃으며 튀어나왔다. 엄마는 안도감과 반가움에 엉엉 우시며 안아주셨고 혼내시지 않으셨다. 내 딸이 그랬으면 나는 먼저 혼냈을 텐데 울 엄마는 가만히 넘어가셨다.
가끔 엄마는 가슴 쓸어내리시던 그때 일을 말씀하시곤 한다. 너희들 어릴 때는 아무리 힘든 날도 모든 것이 추억이라고 하신다. 볕이 많이 들고 대추나무, 밤나무에서 열매를 따던 안암동 그 양옥집이 내겐 좋은 추억이 많은데 엄마께는 딸내미 사라진, 아니 숨어있느라 식겁하게 했던 집으로 한 줄을 더 써드린 셈이다. 그 이후 허름한 집들 속에서도 벌어진 많은 추억들. 공간과 시간이 중첩되고 그 안에 있던 표상이 표의가 되어 마음속에 각인된다.
추억을 되새김질하는 일은 넝쿨이 담벼락을 타고 오르듯 힘겹다가도 담장 위 햇빛을 만나면 모든 게 눈부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