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다른 형제들을 평생 돌보시던 아버지는
명문고 출신이라는 자부심과
외로움이 견고한 벽이 된 채
당신의 건강만 끊임없이 말하는 노인이 되어 있었다
일하시다 청력이 떨어진 이후로는
이젠 우리들의 귀청이 떨어지곤 한다
아버지와 나 사이에는 기나긴 강물이 흐른다
내가 소리 내어 부르면
아버지는 저만큼 올라가 부르신다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니 이제 볼 날이 몇 번 없다 하시는데
나는 미래가 박제된 과거의 현재 속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용서란 미안함을 전제로 하지 않아도 되건만
나는 들리지 않을 아버지의 미안함을 기다리고 있다
빚은 빛으로도 온다고 했던가
내 안에 행복이 고통 위에 잠들어 있다
아슬아슬하게 그를 깨우고 싶지 않지만
깨어난 그를 보며 그저 안아줄 수 밖엔
스산한 바람이 여민 옷깃을 스치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