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포 선라이즈>와 <한여름의 판타지아>를 보고
한 학기 동안 미국 교환학생을 지낸 적이 있다. 그곳에서 만났던 친구들은 다른 문화권에 처음 살아보는 나에게 많은 의지가 되었다. 빠르게 친해졌고,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음식을 만들어 같이 밥을 먹기도 하고 가볼만한 장소를 추천받기도 했다. 그러나 때로는 부모님이, 선생님이 되기도 해준 고마운 친구들과의 이별 시간은 빠르게 다가왔다. 나는 친구들에게 생전 처음 해보는 질문을 던졌다.
Can we hang out again?
한국에서 사람을 만나고 어쩌면 오랫동안 못 보는 상황이 오더라도 '죽을 때까지 다시는 못 보겠지'라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는데 그 이유는 같은 공간, 같은 시간대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한 번은 보겠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되니까. 그러나 그 '어쨌든 한 번'이 참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하물며 그런 사람들끼리도 다시 만나기 힘든데 다른 공간, 다른 시간대, 다른 나라에 살고 있다면 '죽을 때까지 다시는 못 보는 상황'이 될 확률이 상당히 높아지는 것이다.
미국에서의 학기가 끝난 후 학교에서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서 정말 많이 울었다. See u again이라는 말이 어찌나 슬프던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버스를 탄 사람들이 하도 울어서 한국인들 사이에서 눈물 버스라고 불린다고 했다.) 그래도 SNS를 통해 꾸준히 연락하고 있다. 사진 공유도 하고, 먼 미래에서 만나자고 기약도 했다.
<비포 선라이즈>와 <한여름의 판타지아>도 이와 비슷한 감정을 가진 영화다.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르는 상대와의 만남은 강렬하다. 뜨겁고도 매력적이다. 게다가 상대도 나를 마음에 들어한다면? 이처럼 완벽할 수는 없다.
<비포 선라이즈>는 이러한 과정과 감정 표현이 섬세하다. 이 영화의 가장 매력적인 점은 큰 사건 없이 둘의 대화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것인데, 대화의 깊이가 상당하다. 상대를 가볍게 지나가는 사람 중 하나가 아니라 특별한 사람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내일이면 가버릴 사람에게 느끼는 특별함. 특별한 사람에게 해주는 나의 특별한 이야기들과 특별한 사람에게 듣는 이야기들. 그리고 새로운 도시. 모든 것이 나와 다른 곳에서 만나는 '말이 통하는 상대'는 매력 그 자체다. 그리고 그 매력쟁이가 내일 떠난다면? 당연히 모든 걸 쏟아부어야지. 나를 잊지 못하도록.
<한여름의 판타지아>에서 미정은 관광차 갔던 고조시에서 유스케를 우연히 알게 된다. 유스케는 미정에게 호감을 가지고 이곳저곳을 구경시켜준다. 시골 청년 유스케에게 미정은 마치 선물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예쁜 데다가 일본어도 잘하며 신비롭고 금방 떠나야 한다는 특별함까지! 그러나 이 영화의 아쉬운 점은 유스케의 감정이 다소 부담스럽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사실 '특별한 감정'이 꼭 사랑일 필요는 없다. 우정도 좋고, 어떠한 감정이든 인연의 시작이라는 점이 중요한 것인데 유스케는 미정에게 이 감정을 강요한다. 강요하는 감정이 과연 좋은 것일까? 미래의 가능성까지 없앤 건 아니고?
삶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헤어짐에 익숙하지 않다. 연인이든 친구든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나를 떠나게 되면 마음 한 구석이 아프기 마련이다. 오늘 내가 살던 사람이 내일은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다. 한동안 관계에 대한 두려움에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벽을 세워놓은 적도 있었다. 웃긴 일이다. 어차피 헤어질 사람이라면 만나는 순간이라도 뜨겁게 대하면 될 일을, 잔뜩 웅크린 모습이라니. 모래알 같은 사람 관계를 뭉치거나 해질 수 있는 것은 나뿐이다. 또 만나고 싶으면 언젠가는 만난다는 생각을 가지자. 혹시 알까, 내 바람이 계획이 되고, 실천이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