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Call me by your name>을 보고
연애란 참 신기한 관계 맺음이다. 다른 관계와는 다르게 상대를 둘러싼 것들을 질투하고, 상대를 내 입맛에 맞게 바꾸려고 하고, 또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기도 하고. 나의 만족을 위한 끊임없는 싸움. 나는 그게 연애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욕심의 밑바탕에는 '이 사람은 나만의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있다. 그 생각을 깨어가고 마음 아파하면서 가꿔가는 것이 노력인 것이다. 사랑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노력이 쌍방으로 이루어져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상대가 나만큼 나를 사랑하지 않거나 노력하지 않는 것이 보이면 자연스레 속이 상한다.
상대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면을 발견할 때의 배신감은 연애를 해본 누군가라면 모두 느껴보았을 것이다. 나에게 이런 것을 말하지 않은 상대의 치졸함과, 고작 그런 것에 배신감을 느끼는 자신의 치졸함이 밀려오면 연애에 대한 회의감마저 든다.
이런 것도 연애 중반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연애 전과 초에 이런 감정이 들 시간이 어디 있으랴. 충성심 높은 강아지마냥 상대를 쫓아다니고 알기에 바쁘다. 굳이 힘들게 노력하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는 시기다.
영화 <Call me by your name> 의 대부분은 이때를 다루고 있다. 엘리오와 올리버가 서로에게 가까워지고 서로를 자신의 이름으로 부를 정도로 사랑한다. 그리고 서로에게 노력할 시간도 없이 헤어진다. 각자의 자리에 돌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이별을 한 것이다. 엘리오는 잔인한 현실에 가슴 아파하며 겨우 제자리로 돌아간다.
겨울에 걸려온 올리버의 전화는 다소 충격적이다. 얼마 전까지 자신 만을 사랑할 것처럼 굴던 올리버는 어디에 가고, 약혼할 사람이 생겼다고 전한다. 엘리오는 눈물을 삼키며 올리버를 자신의 이름으로 다섯 번 부르지만 올리버는 엘리오를 단 한 번 부를 뿐이었다. 잔인한 것은 현실이 아니라 내가 목숨을 걸고 사랑했던 그 사람이었다.
누군가를 많이 그리워해 본 적이 있었다. 가슴 한 켠에 묻어두기도 힘들어 관계의 끈을 놓지 않으려 발버둥을 쳤지만 상대는 어쩔 수 없지 않냐며 어깨를 으쓱하였다. 그때 서로를 사랑했던 것은 틀림없이 진짠데, 지금은 다 거짓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더 사랑해서 아팠고 배신감을 느꼈다.
영화가 지극히 엘리오의 관점만을 담고 있기 때문에, 올리버가 이별 이후에 얼마나 마음 아파하며 지냈는지 묘사되어 있지는 않지만, 올리버도 적지 않게 가슴앓이를 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올리버가 엘리오를 향해 보내던 눈빛들과 사랑의 행동들이 단순히 엘리오를 가지고 놀기 위한 것들로는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저 조금 더 빨리 현실의 자리를 찾아간 사람이 올리버인 것이다. 그 사람도 그랬다. 나를 사랑했지만 나보다 더 빨리 현실로 돌아갔고 안정을 찾았다. 그래서 나를 잊었다.
내가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특별히 집착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엘리오의 감정이 나에게 고스란히 느껴졌고, 올리버가 미웠다. '네가 어떻게 그래?' 그 한마디를 뱉어주길 바랬지만, 엘리오는 눈물만 흘렸다.
그렇다고 올리버가 약혼을 깨고 엘리오에게 돌아오길 바라느냐? 그것도 아니다. 그럴 시점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 엘리오가 소리를 지르며 올리버를 욕하고, 시간이 얼른 지나 더 좋은 사람을 만나길 바랄 뿐이다. 지나가버린 기억들에 콧방귀를 뀌면서도 안식처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사실, 엘리오가 피해자인 것만도 아니다. 엘리오가 올리버를 만나면서 마르치아에게 했던 행동을 생각해보라. 올리버에게 정신이 팔려 마르치아는 뒷전이었다. 마르치아는 엘리오가 자신의 남자친구 인 것으로 알았고 연락이 되길 오매불망했었다. 한마디로 올리버에게 받았듯, 마르치아에게 상처를 준 것이다.
내가 매달린 남자가 있는 반면, 나에게 매달린 남자가 있었다. 당시에는 자존심도 없냐며 무시하고 횡포를 부렸지만, 직접 당해보니 그만큼 슬픈게 없었다. 나는 그 남자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력을 하면서 만나고 싶지 않았다. 비슷한 상황을 지난 지금 생각하면 미안할 따름이다. 나보다 좋은 사람에게 사랑받길, 더 좋은 앞날이 기다리고 있기를 기도해줄 뿐이다. 누군가 나에게 상처를 주었듯, 나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다.
사랑했었던 추억을 공유한 '네가 어떻게 그러냐'지만, 시간이 흐르고 안정을 찾으면 상대는 나를 잊기 마련이다. 나도 그럴 것이고.
엘리오, 그리고 이 세상의 사랑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움츠러들지 않기를 바란다. 엘리오의 아버지가 말하듯이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또 다시 사랑하고 무뎌지지 않기를. 또 한번 불같이 사랑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