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skalai May 19. 2016

다신교의 매력, 바투 동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근교 힌두사원

쿠알라룸푸르 근교에 갈 만한 곳을 찾아 들여다보니 제일 많이 나오는 정보가 바투 동굴이었다. 마침 말레이시아 최대의 힌두교 사원이라고도 하고, 멀지도 않고, 동굴이라니 시원하겠지(!) 같은 속셈도 있어서 아침 일찍 출발.


동굴이라 해도 별로 시원하지는 않았지만, 알록달록 화려하고 시끄럽고 활기찬, 생생하게 살아 있는 힌두교 사원이란 즐거운 곳이었다. 어딘가 기이하고 키치한 예술 세계도 엿볼 수 있었고... 원숭이... 는 딱히 좋아하진 않지만, 돌아다니는 원숭이도 실컷 볼 수 있다. 어쩐지 나보다는 동행이 더 즐거워했던 듯.


다만 장엄하고 거대한 사원을 기대한다거나, 고요한 수도원을 생각한다면 실망할지도...?  



역을 나서자마자 이런 풍경이 보인다. 왼쪽의 퍼렁퍼렁한 신상은 아마도 하누만.



복장은 이미 어느 사원이나 들어갈 수 있는 긴치마로 준비해 입고 갔고, 예의를 갖춰서 신발 벗고 양말 벗고 맨발로 계단을 올라 잠시 신전을 기웃거렸다. 마침 토요일이라 그런지 이쪽저쪽 작은 신전들이 다 북적거린다.


그러고 보면 힌두교 신전에서 맨발이 예의인 건 어찌 된 일일까. 발원지인 인도에서 맨발이 당연했으니 그게 예의로 굳어졌을 듯도 하지만... 현재 설명은 '신발에는 흙이 묻어 있으니 깨끗하지 않다. 발만이 아니라 사람도 깨끗하게 하고 신전에 들어야 한다'인 듯. 어차피 맨발에 조리만 신고 다니는 동네에서 과연 맨발이라고 깨끗할 것인가 싶지만, 실은 그래서 이런 신전 옆에는 흔히 손발을 씻기 위한 시설이 딸려있다. 이슬람도 마찬가지.



조금 더 걸어가면 이런 연못이 나오고, 드디어 바투 동굴 앞 무르간 신상이 보인다.



무르간은 시바 신의 둘째 아들. 저 거대한 신상 왼쪽으로 272계단을 올라야 석회암 동굴로 들어갈 수 있다. 더 왼쪽에 보이는 것도 신전/사원들인데 이미 소란스럽고 북적거렸다. 내려올 때 보니 다른 신전에서는 바나나 잎에 식사도 받고 있더라. 역시 교회나 절이나 모스크나 힌두 사원이나 다 밥을 나눠주는 곳이구나. 그래 밥을 줘야지(끄덕끄덕). 예전에 터키에서 그랬던 것처럼 뻔뻔하게 줄에 껴서 받아먹을까 1초쯤 생각했지만, 줄이 길었다.  



입구, 주의사항. 여기에서도 무릎 아래를 가리고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원숭이 주의... 나올 때 더워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물고 내려왔는데 원숭이에게 빼앗길 뻔했다 크윽.



들어가서, 다시 바닥으로 내려갔다가 이런 계단을 오르면 작은 힌두 사원이 있다. 행사 중이라 동굴 전체에 요란하게 음악이 울려 퍼졌다. 위에 썼다시피 '살아 있는' 힌두 사원... 죽어 박제된 폐허는 폐허대로, 살아 움직이는 신전은 신전대로 매력이 있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종류의, 신앙심이라기보다는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건 역시 자연. 신전은 백 년이 조금 넘는 정도의 역사지만, 석회암 동굴은 4억 년 전에 만들어졌다.  



닭과 원숭이들이 자유로이 돌아다닌다.


동행이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 동안 걸어 다니며 신전 뒤쪽까지 들여다보고는, 슬그머니 신발을 벗고 올라가서 신도들 사이에 껴서 축복을 받았다. 신기한 경험이니 해보고 싶기도 했고, 축복이야 어느 종교에서든 받으면 좋지(...) 하는 전형적인 무종교인의 마음가짐.




갤러리라고 주장하는 케이브 빌라라는 동굴도 있는데 여기는 별로 들어가 보지 않아도 될 듯. 다만 이제야 (이렇게 늦게!) 알았는데 다크 케이브 투어도 있었다... 으아, 왜 이걸 놓쳤지? 이래서 벼락치기로 정보를 찾으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


그래서 주 동굴(바투 동굴)만 실컷 보고 돌아갈 뻔했다가, 5링깃 하는 라마야나 동굴은 용케 찾아 들어갔다. 힌두교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라마야나의 여러 장면을 조각해둔 동굴이다.



사실 여기 미술은... 들어가 보고 빵 터졌다. 이런 자연 동굴에 이래도 되는 건가. 좋긴 좋은데 현란하고 조잡하면서 멋있고 총체적으로 묘한 감각. 심지어 사진은 기가 막히게 잘 나왔다! 찍고 나서 "이건 사기야!" 입을 모아 외칠 정도로.


그래도 굉장히 즐거운 관람이니 기왕 바투 동굴에 가면 꼭 보시라 추천하겠다. 솔직히 주 동굴보다 더 즐겁게 돌아본 것 같기도...


특히 이 분이 최고시다! 훌륭한 모델!


이런 식이라고. 이런 동굴에 막... 마네킹을 막...



계단도 열심히 올라가서 구석구석 보고 나니 또 피곤. 오전이라도 덥다.


2016.03.05





- 가는 방법: KL 센트럴로 가서 KTM Komputer라는 열차를 타고 바투 동굴 역까지. 바로 근교라 30분 안에 도착하고, 역에서 나가면 사원과 동굴이 바로 이어진다. 공항선이나 지하철/전철과는 입구가 다르고 매표소도 다르니 역 안의 안내문을 잘 보아야.


- '바투'라는 이름을 말레이시아만이 아니라 인도네시아에서도 여러 번 맞닿뜨렸기에 궁금증이 일었는데, 찾아보니 Batu의 의미는 '돌'이었다.


- 관광객으로서는 한없이 열려 있는 다신교의 좋은 점만 보고 왔으나, 꼭 다른 면도 찾아보는 습성이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힌두교는 종교 인구 4위. (다민족 국가이므로) 인도계가 대부분이다.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이고 쿠알라룸푸르와 그 근교에서는 그 점이 명확하게 드러나지만, 힌두 인두가 훨씬 더 소수인 다른 지방에서는 이슬람교인들의 압박이나 신전 파괴 사건을 포함한 갈등도 있다고 한다. 나중에 적겠지만 인도네시아 발리의 힌두교와는 양상이 약간 다르다. 또한 말레이시아 힌두교 내부의 문제인 카스트 제도의 존속과 그로 인한 차별도 남아 있는데, 이 부분은 발리 힌두교도 마찬가지. 물론 관광객이 아니라 가서 사는 사람이라 해도 외부인이 쉽게 그런 장면을 접하는 일은 드물겠지.  


작가의 이전글 새들이 가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